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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보] 평범한 워킹맘이 아동학대 막는 ‘투사’가 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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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은 누가 대변해줄까? 투표권이 없는 이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 줄 정치인도 드물다. 최근 여행용 가방에 갇혀 사망한 아홉 살 어린이와 온몸이 멍든 채 지붕을 넘어 탈출한 경남 창녕의 초등학생 아이를 위해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사람이 있다. 평범한 워킹맘에서 아동학대 ‘투사’로 변신한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대아협) 대표(52)다. 그 사연을 듣기 위해 지난 27일 경남 창원 대아협 사무실에서 공 대표를 만났다.

“탄원서를 좀 써 줄 수 있어요?”

공 대표가 아동학대 문제에 뛰어들게 된 건 지인이 ‘탄원서를 써 달라’고 부탁하면서부터다. 지난 2013년 10월 지인은 자신이 울산에서 의붓엄마에게 맞아 숨진 8살 서현이의 친엄마라며, 기자들이 자신의 집에 들이닥치고 경찰에서 조사받으러 오라고 한다며 공 대표에게 같이 가달라고 했다. 아이가 둘인 공 대표는 “죄책감에 시달릴 친엄마의 마음에 빙의가 됐다”며 지인과 동행하기 시작했다.

공혜정 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지난 27일 경남 창원 대아협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공혜정 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지난 27일 경남 창원 대아협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아동학대로 숨졌는데 징역 5년이라고?”

그를 분노하게 한 건 어린아이를 주먹과 발로 무자비하게 구타해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린 의붓엄마의 반인륜적 범행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숨지게 한 아동학대 가해 부모에 징역 5년 정도의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 치사죄’를 적용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애 키우는 엄마인데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고 회상했다. 공 대표는 서현이 사건으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생계를 제쳐두고 가해자 처벌 강화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무식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단순하게 이런 몰상식한 법을 알리려고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글을 올렸어요.”

서현이 친엄마에게 서현이 본명과 사진을 카페에 올리자고 제안했다. 공 대표는 ‘너의 아이가 갈비뼈 부러져 죽은 아이로 기억되기보다, 아이의 예쁜 모습이 기억되게 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친엄마가 동의해 서현이의 사진을 공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렇게 예쁜 아이가’ ‘우리 주변에 있을 만한 평범한 아이가 피해자야?’ 그는 “아동학대가 특별하게 먼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추상적인 인식을 구체화했다”고 회상했다. 카페 회원들은 사진을 맘카페 등으로 퍼 날랐다.

공 대표는 카페 회원들과 본격적으로 오프라인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의붓엄마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 울산지방법원 앞에서 카페 회원들이 돌아가며 피켓 시위를 했다. 담당 재판부에 몇천 장의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재판이 열리는 날에는 법원 앞에서 “사형, 사형”을 쩌렁쩌렁 외쳤다. 2014년 3월 검찰은 살인죄를 적용하고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가 없다며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이전까지의 형량에 비해선 높은 형량이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난 2014년 4월 11일 ‘서현이 사건’의 선고 공판이 열린 울산지방법원 앞에서 공혜정 대표와 인터넷 카페 ‘하늘로 소풍간 아이들을 위한 모임’(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징역 15년형을 선고한 판결에 분노하며 법정 최고형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14년 4월 11일 ‘서현이 사건’의 선고 공판이 열린 울산지방법원 앞에서 공혜정 대표와 인터넷 카페 ‘하늘로 소풍간 아이들을 위한 모임’(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징역 15년형을 선고한 판결에 분노하며 법정 최고형을 촉구하고 있다.ⓒ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지난 2014년 ‘서현이 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리는 날,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공혜정 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지난 2014년 ‘서현이 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리는 날,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와 인터넷 카페 ‘하늘로 소풍 간 아이를 위한 모임’(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서현이 사건’ 재판이 열리는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가해자인 의붓엄마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고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고 있다.(사진=인터넷 카페 캡쳐)
공혜정 대표와 인터넷 카페 ‘하늘로 소풍 간 아이를 위한 모임’(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이 ‘서현이 사건’ 재판이 열리는 부산고등법원 앞에서 가해자인 의붓엄마에게 살인죄를 적용하고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고 있다.(사진=인터넷 카페 캡쳐)ⓒ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인터넷 카페

같은 해 10월 항소심을 맡은 부산고등법원 재판부는 1심과 달리 살인죄를 적용하고 양형기준에서 최고 범위인 징역 18년을 선고했다. 보호자가 어린이를 폭행해 숨지게 한 사건에서 처음으로 살인죄가 인정된 판결이었다. 당시 뉴스 보도엔 선고 이후 법정 밖에서 공 대표와 대아협 회원들이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담겼다. 의붓엄마는 상고를 포기했다.

‘호통 판사’ 천종호 판사와의 인연

사실 공 대표는 서현이 사건을 책임지고 맡기 전에는 아동학대 사건 뉴스를 보면 ‘정말 나쁜 사람들’하고 잊어버리는 평범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교육학과를 전공한 그는 진로·취업 캠프를 만들어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지원해주는 교육 사업을 했다.

2011년 우연히 지인이 창원지법 소년재판부에 있는 천종호 판사를 소개해줬다. ‘호통 판사’로 알려진 천 판사의 소년 재판과 천 판사가 운영하는 사법형 그룹홈인 ‘청소년 회복센터’를 몇 차례 보러 갔다. 당시 그는 ‘이 아이들 문제가 곧 부모로부터 시작되는구나’라고 깨달았지만 ‘사고 안 치고 잘 자라준 내 아이들이 고맙다’는 개인적 생각에 머물렀다. 그러다 서현이 사건을 접한 이후에야 소년 재판과 회복센터에서 느낀 점들이 연결됐다.

“‘죽지 않고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다 보면 결국 가정을 탈출할 수밖에 없겠구나’, ‘수없이 많은 아동학대 문제가 있겠구나’라고 느끼게 됐죠.”

낙선운동으로 부결된 법 통과시키다

공 대표는 사건의 한 가운데 서면서 아동학대 문제를 이슈화할 방법을 찾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특례법이 뭔지, 아동복지법이 뭔지도 몰랐다고 고백했다. 그랬던 그는 법을 바꿔야 한다는 지인의 말에 공감한 이후 아동학대 관련 법 제·개정에 앞장서기 시작했다. 2013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2015년 어린이집 CCTV 설치 의무화 조항이 담긴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공 대표는 서현이 사건에 뛰어든 지 얼마 안 됐을 때 국회에 계류 중인 아동학대 처벌 특례법이 사장될 것 같다는 상황을 알게 됐다. 공 대표는 법사위 의원 명단과 사무실 번호를 카페에 올렸다. 회원들은 해당 번호로 전화를 해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한 달도 안 돼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법안이 통과됐다. 법 제정을 지켜보면서 공 대표는 ‘그동안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통과가 안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결된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2015년 3월 3일 본회의에서 부결되자 공 대표는 다시 낙선운동을 제안했다. 반대하거나 기권한 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 전화번호를 정리해 회원들에게 전화를 독촉했다. 이후 열린 임시국회에서 재심의를 거쳐 같은 해 4월 30일 본회의에서 찬성 184명, 반대 0명, 기권 6명으로 통과됐다.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은 2005년부터 4차례에 걸쳐 입법이 추진됐지만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다가 10년 만에 통과된 것이다.

공 대표는 이처럼 아동학대 관련 법과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고 부모들이 하소연할 수 있는 공간을 위해 대아협을 지속시킬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인터넷 카페에서 주먹구구식으로 활동하기보다 단체가 공신력을 갖춰 아동학대 예방 교육도 하고자 했다. 특히,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이 활동을 맡아서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사단법인화를 추진했다. 2015년부터 오랜 준비 끝에 지난 2018년 12월 승인을 받았다.

사단법인화 이후 대아협은 부모와 아동학대 관련 상담사, 신고의무자 등을 대상으로 예방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집합 교육이 어려워져 유튜브에 채널을 만들어 교육 영상을 만들어 올리고 있다. 공 대표는 앞으로 가족복지와 아동발달, 아동 성 학대 등 관련 전문가를 초청해 영상을 찍어 업로드 할 계획이다.

공혜정 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지난 27일 경남 창원 대아협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공혜정 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가 지난 27일 경남 창원 대아협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대학아동학대방지협회

“사명감이 아니고 화가 나서 하는 거예요”

공 대표는 서현이 사건 재판이 끝나면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가려 했다. 학대받는 아동들 얘기를 듣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을 정도였다. 그런데 여러 곳에서 아동학대 사건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물밀 듯 들어왔다. 끊이지 않고 터지는 아동학대 문제에 대책 없이 도무지 발을 뺄 수 없었다.

대아협은 현재 회원과 후원자 100여 명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공 대표는 본인은 ‘무급’으로 일하고, 몇 안 되는 직원들은 최저시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매달 적자가 나고 있다고 전했다.

“하다못해 사람들이 무급으로 몇 년씩 하는 거 딴 이유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아니에요. 제 개인적 목표는 빨리 그만두는 거예요. 훌륭한 분이 나타나면 얼마든지 맡기고 저는 자연인으로 돌아가서 개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대아협을 운영할 사람을 구하러 돌아다녔지만 모두 거절당했어요.”

공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훌륭하게 써주지 마라. 사명감이 아니고 화가 나서다”라고 거듭 말했다. 그는 정부와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미흡한 태도, ‘가정’에 집중돼 있는 아동복지법 등에 분노와 답답함을 쏟아냈다.

“지금 애들이 계속 죽어가고 있고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는데 왜 개선이 안 되나요. 수없이 많은 법이 발의되고 시스템 고친다고 정치권에서 이야기하지만 왜 아이들이 죽어가는 건 더 늘어나고 있나요. 왜 학대받은 아이를 자꾸 집으로 돌려보내나요. 왜 국가는 아이를 계속 낳으라고 하면서 자기 책임을 못 하고 있나요. 그런 부분이 화가 납니다.”

김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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