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여전히 기세등등하자 여름철 휴가지로 산과 들을 택해 비대면 캠핑을 즐기는 분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좀처럼 꺾이지 않는 역병을 견디기엔 풀 냄새, 나무 냄새, 바다 냄새를 잠시 코 안에 담고 오는 것으로는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함께 오늘은 ‘방구석에서’ 당분간은 어려워진 남의 나라 저 멀리로 떠나는 여행을 하며 부족감을 채워 볼까 합니다.
첫 여행지는 저 멀리 서쪽 대서양에 면한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가장 마이너하고 무심코 지나치기 쉬우나 잊기엔 존재감이 큰 그런 기억의 대상을 찾아 선택과 집중을 해보겠습니다. 그렇더라도 유명세 있는 관광지와 볼거리를 다 비껴가기엔 뭔가 아쉬움이 남으니 몇 곳 둘러봅니다.

유럽 최서단의 나라인 포르투갈, 그곳에도 대서양 연안의 땅끝마을이 있습니다. 카부 다 호카는 거센 대서양의 해풍과 깎아지른 절벽, 덩실거리는 언덕이 있는 풍광이 근사한 곳입니다. 이곳에 선 십자가탑에는 16세기 포르투갈의 시인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Luís Vaz de Camões, 1524~1580)의 서사시 ‘우스 루지아다스’(Os Lusíadas, 1572)의 구절 “여기......땅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Aqui......Onde a terra acaba e o mar começa......”)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음으로 포르투갈의 명물 아줄레주(azulejo·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에 주목합니다. 시각적으로 압도하는 아줄레주는 놓치기에 아까울 정도입니다. 도시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되는 이 아줄레주 장식은 조선시대 청화백자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도자기 타일은 궁, 저택, 성당, 역, 학교 등의 내외부 벽을 장식하는데, 타일 각각은 기하학적인 패턴이지만 이를 조합한 한 면 전체는 식물의 덩굴, 도시, 역사적인 사건 등을 그려 넣은 벽화의 부분을 담고 있습니다. 리스보아(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의 포르투갈어 이름) 파두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줄레주 박물관이 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포르투(Porto)에서 북쪽으로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브라가(Braga)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의 봉 제수스 두 몽테 성소(Sanctuary of Bom Jesus do Monte,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계단 앞에 서면 이탈리아인지 헛갈릴 정도의 아름다운 스타일의 장식을 마주하게 됩니다. 옛 것과 새 것의 혼합미를 발견하는 재미는 덤입니다.


잠시 생뚱맞은 곳으로 시선을 옮겨봅니다. 포르투갈의 어느 도시든 꼭 있는 정어리 통조림 가게는 고적한 도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느낌의 만화 가게 같은 곳입니다. 지나던 사람들은 비릿한 정어리의 내음을 달콤하게 바꿔버리는 듯한 시각효과에 취한 듯 어느 새 가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이 때 정신줄을 놓으면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종업원에게서 헤어 나오기 힘들어집니다. 100년이 넘은 것에서 최근 만들어진 것에 이르기까지, 연도별로 화려하게 디자인된 통조림은 가히 일품입니다.

벨렝탑(Torre de Belém)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로, 여행자라면 반드시 들러 감탄사를 남발하게 되는 곳입니다. 이곳은 16세기 초 리스보아의 관문을 지키는 요새였고, 대항해시대 포르투갈 탐험가들의 출항을 기념하는 탑이기도 합니다. 벨렝탑에서 시작하면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벨렝 등대, 발견기념탑, 코메르시우 광장 등 해안가 주요 관광명소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습니다.

해변을 따라가다 다음의 조형물을 발견한다면 운이 좋은 여행입니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포르투갈의 화가 호세 드 알마다 네그리로스(Jose de Almada-Negreiros, 1893-1970)를 기념하는 조형물입니다. 그는 20세기 포르투갈의 가장 위대한 시인 중 한 명인 페르난도 페소아(Fernando Pessoa, 1888-1935)의 초상화를 사후(1954년과 1964년)에 그리기도 했습니다.


둘의 모습이 습작처럼 캔버스에 그려진 것으로 보아 꽤 친한 친구인 것 같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함께 시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5분 거리에 위치한 Cafe A Brasileira에는 페소아의 동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식당에서, 시공간 바깥에서, 나에게 사랑을, 식은 내장 요리처럼 가져다 주었어”(포르투풍 내장요리 중 일부)라는 페소아의 시가 몇 해 전 민음사에서 『초콜릿 이상의 형이상학은 없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지요.


다시 알마다 네그리로스에게로 돌아오면, 앞서 조형물은 그가 그린 위의 그림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우리는 네그리로스의 그림에 익숙하지 않지만 자화상과 기념물에 있는 특유의 눈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는 끊임없이 자화상에 대해 탐구하면서 눈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 같습니다. “내 눈은 무한한 것을 밝히는 스포트라이트입니다”, “내 눈에 주목해주세요, 이 눈은 제 눈이 아닙니다. 이 눈은 시대의 눈입니다. 모든 것을 꿰뚫는 눈입니다”
많은 화가가 그렇지만 그 역시 다양한 화풍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어떤 것은 피카소가 생각이 나기도 하고, 어떤 것은 마티스, 또 어떤 것은 보테로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인터넷의 세계에서 물리적 거리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은 시대의 눈으로 포르투갈 이곳저곳을 다녀봤습니다. 피로해진 눈의 마지막 걸음을 오프라인의 갤러리를 대신하여 온라인의 굴벤키안(Gulbenkian) 미술관으로 옮겨보면 어떨까요. 페소아와 네그리로스가 나눴을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가 강조했던 전통과 역사를 박차며 앞으로 나아갈 시대의 눈을 생각하면서, 한여름 방구석의 포르투갈 여행을 마무리해 봅니다.


김명식 건축가·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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