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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같은 일 벌어지면 어떻게 할래?” 국회 여성 보좌진들 ‘사상검증’까지 들었다
일터로서 성평등한 국회 만들기 캠페인③  포스터
일터로서 성평등한 국회 만들기 캠페인③ 포스터ⓒ국회페미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위력 성추행 의혹 이후 국회에서 ‘이래서 여비서는 뽑으면 안 된다’, ‘성폭력이 아니라 불륜이다’라는 등 펜스 룰과 2차 가해를 경험했다는 여성 보좌진들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 여성 근로자 기반 페미니스트 그룹인 ‘국회페미’는 지난달 31일 박 전 시장 사건이 밝혀진 직후 여성 보좌진 35명을 대상으로 벌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 실태’ 자체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페미에 따르면, 다수의 응답자가 ‘이래서 여비서는 뽑으면 안 된다’, ‘성폭력이 아니라 불륜이다’, ‘정치를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라며 사건의 책임을 가해자가 아닌 여성 비서의 탓으로 돌리는 공공연한 2차 가해와 펜스 룰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면접에서 ‘박원순·안희정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대처하겠냐고 물으며 ‘사상검증’을 한다는 제보도 있었다. 보좌진 또는 당원 단톡방에서 피해자의 신상을 캐내는 시도를 목격했다는 응답도 다수였다.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근본 원인으로 응답자들은 “인맥으로 이뤄지는 성차별적이고 불투명한 인사 시스템”을 꼽았다. 남성 보좌진이 친한 남성 비서를 데려와 빨리 승진시켜주고 ‘인사 권력’을 대물림하기 때문에 여성 보좌진은 불합리한 상황이 닥쳐도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게 국회페미 설명이다.

한 응답자는 “서울시 등 지자체의 인사 시스템이 국회와 다르긴 하지만 비서실은 대부분이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인사권을 남성 권력이 쥐고 있는 상황은 비슷하다”라며 “정치권에서는 남성과 남성이 서로를 끌어주고 보호하는 잘못된 문화가 있어서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아무리 발생해도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여성 보좌진은 “채용 시에 상대적으로 여성 지원자의 경력과 자질이 더 뛰어난 경우였음에도 보좌관이 남자를 뽑으라고 해서 이력서를 추린 적 있다”라고 폭로했다. 또 다른 응답자는 “우리 의원실은 관례로 여성은 인턴과 9급만 뽑아 허드렛일을 시키고 4급부터 8급까지는 남성만 뽑는다”라고 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채용 및 승진 과정의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국회페미 활동가는 “국회가 성별에 기반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 채용하고, 직무를 맡아 평가하는 구조였다면 훨씬 더 많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해 보좌관까지 올랐을 것”이라며 “여성의 역량과 발언권을 제한해 의도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가두는 조직문화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회 게시판에 부착된 캠페인 포스터
국회 게시판에 부착된 캠페인 포스터ⓒ국회페미

국회페미는 이날 더불어민주당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국회페미는 “박원순 서울시장 등 최근 유력 정치인들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연달아 폭로되며 정치권의 저속한 성인지 감수성 수준과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조직 문화가 드러났다”라며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 서울·부산 시장 자리가 위력에 의한 성폭력 사건으로 공석이 돼 시정에 차질을 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정·청이 문제의 근본을 성찰하기는커녕 면피 수준의 대응조차 제대로 안 하고 있어 국민에게 실망과 좌절을 안기고 있다”라고 질타했다.

이어 “피해자의 인권과 명예 대신 타락한 위력의 편을 들어 ‘피해호소인’이라는 말로 진상을 모함했으며, 이 사건을 조직 전체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피해 사실, 복지적 관점에서 풀어야 할 ‘여성의 일’ 정도로 축소하고 여성 의원들에게 책임과 해결을 떠넘기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국회페미는 “민주당 여성 의원 일동으로 뒤늦게 성명을 발표하고 젠더특위를 발동해 합당한 조처를 하겠다고 했지만, 특위는 2년 전 안희정 성폭력 사건 때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라며 “민주당은 당 지도부의 심기보다 피해자의 인권과 국민의 대표로서의 책무를 우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회페미는 8월 한 달간 ‘위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 캠페인을 펼친다. 이는 국회페미가 연속으로 진행하는 ‘일터로서 성 평등한 국회 만들기’ 세 번째 캠페인이다. 국회 게시판 곳곳에 ‘위력에 의한 성폭력, 가해자가 없으면 성폭력도 없습니다’ 포스터가 붙은 상황이다.

2018년 8월 결성된 국회페미는 앞서 여성에게 사무실 허드렛일을 강요하는 전근대적 관행을 지적한 ‘커피는 여자가 타야 제맛입니까?’ 캠페인, 극심한 유리천장 실태를 고발한 ‘여자는 보좌관 하면 안 되나요?’ 캠페인을 벌이며 정치권 성 평등 이슈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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