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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숙 칼럼] 또 다른 최숙현이 없게 하려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으론 부족하다

우리나라엔 죽은 이의 이름을 단 법이 많다. 이른바 민식이법, 김용균법...등등. 그 법을 제·개정해 더 이상은 법적 공백으로 사람이 죽게 하지는 말자는 취지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취지에 미치지 못하는 사례가 차고 넘친다. 대표적인 것이 ‘김용균법’이다. 김용균 님의 사망으로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정작 고인이 적용대상이 되지 않아 허탈했던 경험이 있다. 물론 개정된 법에는 적용대상을 확대하고 원청의 책임을 묻는 등 이전보다는 개선된 조항이 많다. 하지만 위험업무의 도급(외주화)를 금지한 업무나 업종이 협소해, 고인이 일했던 발전소는 제외됐다. 이후에 산안법 시행령을 개악할 때는, 도급을 주기 전 노동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대상에서까지 발전소를 뺐다.

지난 4일 국회는 본회의에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일부 정치인과 언론에서는 통과된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을 얼마 전 생을 마감한 철인3종 선수 고(故) 최숙현 씨의 이름을 따서 ‘최숙현법’으로 칭한다. 과연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은 죽은 이의 이름을 달기에 충분한 법일까?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4인 중 찬성 270인, 반대 0인, 기권 4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0.08.04
4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체육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274인 중 찬성 270인, 반대 0인, 기권 4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0.08.04ⓒ정의철 기자

‘국위 선양’은 삭제됐지만, 엘리트스포츠 패러다임은?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은 “체육계 성폭력 등 폭력에 대한 예방조치 및 가해자에 대한 강화된 제재 근거의 마련, 신고자·피해자에 대한 보호 강화, 스포츠윤리센터의 기능과 권한 강화 등 체육인의 인권보호 시책” 마련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번 개정법에서는 제1조(목적)에 들어있던 ‘국위 선양’이란 내용이 삭제됐다. 그동안 ‘나라의 권위나 위세를 널리 떨친다’는 말뜻처럼, 올림픽 등 각종 체육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 ‘국민체육’이며 ‘체육진흥’이 목표인 것처럼 인식됐다. 감독이 선수들을 때렸더라도 메달만 따면 자기 의무를 다한 것으로 합리화할 수 있었다. 또 ‘국위 선양’은 국민체육이 모든 국민들이 스포츠를 즐기는데 방점을 두는 게 아니라 몇몇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오게 하는데 힘을 기울이는 ‘엘리트 스포츠’ 패러다임의 근거가 되었다. 그래서 ‘국위 선양’ 삭제는 메달보다 인권을 생각하게 할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민체육진흥법에 ‘국위 선양’이 들어간 것은 지난 1982년 개정 때다. 1970년대 말부터 엘리트스포츠 정책이 시작됐다. 당시 정권은 선수들을 육성해 국제대회 메달을 많이 따게 하고 국제사회에서 군사독재국가 이미지를 상쇄할 생각이었다.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법안에 ‘국위 선양’을 넣은 것은 전두환 군사정권이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은 3S(screen, sport, sex·영화, 체육, 성 산업) 정책에 힘을 쏟았다.

그런데 이들이 물러난 뒤에도 엘리트 스포츠 정책은 폐기되지 않았다. ‘생활체육과 엘리트스포츠의 균형적 육성’으로 변화했을 뿐이었다. 선수들은 계속 국가의 이름을 날리는데 동원됐다. 이 같은 국가주의, 성적지상주의 스포츠정책은 선수들을 메달 획득의 수단으로 볼 뿐, 인권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니 얼마 전 열린 국회청문회에서 한 선수가 중학교 때 담배를 피운 사실이 드러나 야구방망이로 100대를 맞았다는 경험이 나오는 것이다.

최숙현 선수를 때리고 괴롭힌 사건이 발생한 것은 몇몇 지도자나 선수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들 뒤에 폭력을 양산한 구조와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맞지 않고 죽지 않으려면, 선수들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메달’과 ‘순위’ 중심의 스포츠정책을 바꿔야만 한다. 모든 사람이 스포츠를 즐기고 참여할 수 있도록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려면 선수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스포츠를 할 때 보장받아야 할 권리를 담은 ‘스포츠기본법’이 필요하다. 그래야 폭력을 중단할 수 있고, 선수들의 인간다운 삶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다.

대한체육회 이사회가 열릴 예정인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체육계 시민단체 회원이 대한체육회장 사퇴 및 체육계 성폭력 사건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대한체육회 이사회가 열릴 예정인 15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체육계 시민단체 회원이 대한체육회장 사퇴 및 체육계 성폭력 사건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김슬찬 기자

폭력 예방 및 조사를 어렵게 하는 스포츠 카르텔

개정 국민체육진흥법에는 ‘성폭력 등 폭력 체육지도자의 자격정지기간 5년으로 확대’, ‘체육계 관계자 인권침해 관련 위법·부당 사실 인지 시 신고 의무 부과 및 불이익 금지’, ‘인권침해 우려 지점 CCTV 설치’, ‘선수와 소속기관 간 표준계약서 개발·보급’, ‘스포츠윤리센터의 기능 강화’가 포함됐다. 모두 필요한 조항들이지만 처벌이나 예방에 있어 실효성이 부족하다. 이것만으로 선수들에 대한 폭력이 줄어들지, 감독이나 코치, 선배들의 폭력이 중단될 지 확신하기 어렵다. 예산 지원과 지도자 등에 대한 평가가 여전히 ‘메달 몇개 땄냐’로 정해지는 상황에서는 계속 ‘때려서라도 메달’을 강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신고 의무를 부과한다 하더라도 가해자가 자격정지 몇 년 후 돌아와 원상복귀 할 수 있게 된다면, 체육인들은 감독 등 지도자의 눈치를 보며 신고하지 못하게 된다. 고 최숙현 선수 장례식장에서도 동료 선수들의 입단속이 이루어졌던 일을 상기해보자.

스포츠윤리센터의 기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역부족일 것으로 생각된다. 윤리센터 강화와 관련된 개정 법 내용은 ‘직권조사권 및 수사기관에의 신고권, 고발 및 징계요구권, 공무원 파견 요청권, 임시보호시설 설치 등’이 핵심이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윤리센터는 독립성이 부족하고, 활동 지향이 불분명하다. 또징계가 계속 대한체육회 등의 소관인 상황에서, 징계 요구나 신고가 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따라야 한다’는 단서조항으로는 징계 요구가 실제 징계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목격자든 당사자든 신고를 하기 어렵다. 계속 운동을 하고 싶은 선수들은 신고를 꺼릴 수밖에 없다.

생전 최숙현 선수의 모습(오른쪽)과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내용
생전 최숙현 선수의 모습(오른쪽)과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주고받은 메신저 대화 내용ⓒ자료사진

고안이 된 최숙현 선수가 여러 국가기관에 신고했으나 입증과 처벌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고 절망했던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 국가기관이 수사와 조사를 꺼리는 이유는 전문성이 낮고 스포츠 인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철인3종협회는 폭력 피해 사실이 고스란히 담긴 녹취록을 피해자가 갖고 있음에도 가해자 말만 듣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는 최 선수의 신고를 받고도 두 달 넘게 가해자 조사도 하지 않은 채, 피해자에게 입증 요구를 했다,

해당 단체들이 이랬던 이유는 대한체육회의 영향력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엘리트 스포츠 마인드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시청에서조차 조사를 꺼려할 정도로 대한체육회 등 스포츠지도자들의 영향력이 컸다. 이 때문에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사퇴 등 스포츠계 내부의 인적 청산 없이는 폭력의 사슬을 끊어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

안타깝게 세상을 뜬 최 선수의 유언을 지키려면 국민체육진흥법 개정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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