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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처해달라고 매매혼까지? “부양책임 감형 없어져야”

“2019년 4월 17일 혼인신고서를 접수해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 등은 손정우에게 유리한 정상이다” (2019년 5월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1부 재판장 이성복)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 사이트 운영자 손정우(24)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2심 재판부는 감경요소로 ‘부양책임’을 고려했다. 그러나 최근 손 씨가 감형을 위해 결혼했다가 석방된 뒤 이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손 씨 가족이 사법제도를 기만하는 동안 사법부는 수수방관했다는 것이다. 혼인신고가 무효인 만큼 다시 양형 판단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6일 오후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0.07.06.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6일 오후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20.07.06.ⓒ뉴시스

지난 4일 MBC ‘PD수첩’에 따르면, 손 씨는 최근 상대의 혼인무효 소송으로 결혼생활을 마쳤다. 손 씨는 2심 변론이 종결된 다음 날 혼인신고를 접수한 뒤 부양가족이 생겼다며 선처를 호소했고, 보름 뒤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여 선고를 내렸다. 손 씨 지인들은 손 씨 아버지가 국제결혼중개업체를 운영한 이력을 언급하며 매매혼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손 씨 아버지는 ‘중개업은 옛날이야기다. 상대 부모에서 소송을 제기했다’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성범죄 양형기준에 ‘부양책임’은 없다. 성범죄 양형기준으로 행위자가 농아자 또는 심신미약이거나 자수한 경우,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하거나 타인의 강압으로 가담한 경우, 상당 금액을 공탁하거나 진지한 반성을 한 경우,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 등이 있다. 다만 손 씨 혐의인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에 대한 양형기준은 현재 없다.

대신 부양책임은 모든 범죄에서 집행유예에 대한 긍정 요소 중 하나다. 피고인의 구금으로 교정·교화되는 효과가 큰지, 부양가족에게 과도한 곤경을 수반하는 효과가 큰지 비교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가족의 존재는 사회적 유대감으로 연결돼, 피고인이 사회 내 처우를 통해 재범을 저지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근거로 판단된다.

그러나 성범죄 사건에서 실형을 선고하며 부양책임을 유리한 사정으로 언급하는 사건이 많아, 사실상 감경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손 씨의 사건도 이 같은 경우다. 이에 혐의, 재범 여부와 상관이 없고, 악용 여지까지 있는 부양책임 부분을 감경요소로 고려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수천여개를 배포한 혐의를 받는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부친이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1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0.07.17.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수천여개를 배포한 혐의를 받는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의 부친이 고발인 조사를 받기 위해 17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0.07.17.ⓒ뉴시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부양책임은 가난의 문제를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던 시절에 생긴 요소”라며 “(남은 가족에 대한 부양 문제는) 사회복지가 해결해야 할 영역이다. 범죄자의 형량을 깎아줘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러한 감경요인 뒤에 판사의 온정주의적 관점이 숨어있다. 형량을 깎아주고 싶으니 이런 요소를 나열하는 게 아닌가 의심된다”라고 꼬집었다.

여성 폭력 사건에서 부양책임 부분은 문제로 지적돼왔다. 특히 친족 성폭력,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피해자를 부양해야 한다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사례가 있다. 김 부연구위원은 “결국 피해자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교화됐는지 알 수 없는 가해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국가가 피해자를 돌볼 수 없으니 사적 돌봄의 영역에 놔두는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부양책임의 감형을 노리고 판사 앞에서 연기하는 사례들도 있다. 일부 피고인은 노모를 재판정에 앉혀놓고 울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럼 판결문에 ‘부양해야 할 노모가 있다’라고 적시된다. 범죄, 재범 여부와 상관없는 부분이다. 악용의 여지가 있다”라고 말했다.

부양책임이 양형인자로 판단되려면 면밀한 양형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장임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양가족이 정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라며 “양형 조사관이 있지만, 인력의 한계로 보안처분 등이 아닌 경우 피고인 측에서 주장하는 양형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양형에 대해서는 특별히 공방하지 않기 때문에 양형 조사 분야가 훨씬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양형 판단에 사실관계 조사와 면담 등이 이뤄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손 씨 사건의 경우 부양책임 등 양형인자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장임 연구위원은 “어떤 양형인자가 있느냐보다 그동안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에 대한 범죄를 중하게 취급하지 않은 법원의 태도가 문제”라며 “양형인자를 비교할 때 이 범죄가 얼마나 중한지, 재범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함께 고려했어야 한다. 그러나 해당 재판부는 이 부분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손 씨는 지난달 6일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판사 강영수 정문경 이재찬)의 미국 송환 거절 결정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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