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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혼자보다 함께 있을 때 더 멀리, 더 오래 전진한다

“학계에서 전문가들의 논쟁은 최악의 상황을 불러온다. 나는 이런 의견 교환이 낭비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특히 첫 비판의 논조가 날카로우면 답변과 재답변은 비꼬기의 경연장이 되기 일쑤다.

답변은 신랄한 비판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처음에 비판했던 사람은 그 비판에 실수나 잘못이 있었다고 시인하는 법이 없다. 나도 크게 잘못됐다고 생각한 비판에 몇 번 대답한 적이 있다. 대답하지 않으면 오류를 시인하는 꼴이 될 수 있어서였다. 하지만 악의적인 의견 교환이 유익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이 저서 『생각에 관한 생각』에 남긴 말이다. 나 역시 카너먼의 이런 혜안에 깊이 동의한다.

나는 악의적인 의견 교환이나 비꼬기의 향연이 진보진영의 발전에 1도 도움이 안 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런 기술은 상대와 싸울 때 쓰는 것이지, 우리끼리 서로를 베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아군과 대화를 할 때에는 ‘말의 예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뜻이다.

부끄럽지만 나도 20대 때에는 같은 진보진영 내에서라도 동의할 수 없는 의견이 보이면 독설을 퍼붓는 것이 옳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되돌아보면 그 독설들이 단 한 번도 피차에게 유익한 전진을 만든 적이 없었다. 전진은커녕, 한번 상한 감정은 우리를 동지라고 부르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아넣곤 했다. 그게 역사의 진보에 도움이 될 리가 없음은 너무도 자명하다.

슈날의 경사도 실험

2008년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에 실린 케임브리지 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 사이먼 슈날(Simone Schnall)의 경사도 실험을 살펴보자. 슈날 교수는 논문 서두에서 “사회적 지원과 협동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국민들의 삶이 나아진다”는 기존의 여러 연구를 언급한다.

슈날에 따르면 협동이 발달한 사회일수록 심장병과 암 발생률이 낮아진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훨씬 덜하다. 심지어 이런 사회에 속한 구성원들은 감기에도 덜 걸린다.

그렇다면 사회적 협동이, 더 구체적으로 말해 마음에 맞는 벗과 동지의 존재가 우리 시각(視覺)에도 영향을 미칠까? 슈날 교수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버지니아 대학교 34명의 학생들을 모아 실험에 나섰다.

슈날 교수는 학생들을 언덕 앞에 서게 한 뒤 체중에 따라서 각기 다른, 꽤 무거운 배낭을 메게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들이 배낭을 메고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라고 알려줬다. 맨 몸으로 올라가도 힘들 판에 배낭을 메고 언덕을 올라가라니!

이후 슈날 교수는 학생들에게 “당신 앞에 놓인 언덕의 경사도를 어림짐작해보세요”라고 요구한다. 학생들은 자신이 짐작한 경사도를 말로, 혹은 각도기를 벌려서, 혹은 그림으로 각도를 표현하는 과제를 받았다.

실험 결과 참가자의 성별과 건강상태는 그들의 어림짐작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건강하다고 경사를 만만하게 보거나, 특정성별이라고 경사를 특별히 가파르게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낸 결정적 요인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옆에 친한 벗이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차이였다. 동료와 함께 어림짐작에 나선 이들은 혼자서 각도를 짐작한 이들보다 평균 10∼15% 언덕의 경사를 낮게 평가했다.

게다가 옆에 있는 벗과 더 친할수록, 그 관계가 오래되고 더 따뜻한 사이일수록 두 사람은 언덕의 경사도를 더 완만하게 추정했다. 이는 자신의 짐작을 말로 표현하건, 그림으로 표현하건, 각도기로 표현하건, 모든 측정 방식에서 똑같이 나타난 일관된 현상이었다.

사진저자 Rennett Stowe
사진저자 Rennett Stoweⓒ기타

또 한 가지, 혼자 측정을 하더라도 머릿속에서 벗이나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거나 혹은 싫어하는 사람을 떠올린 경우보다 언덕의 경사도를 20%나 완만하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게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곁에 동지들이 있을 때 앞에 닥친 난관을 훨씬 쉽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차피 저 가파른 언덕을 배낭 메고 올라가야 한다. 그때 나의 옆에 믿음직한 동지가 있으면 그 언덕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반면 홀로 있으면 그 언덕은 실재보다 훨씬 가팔라 보인다.

그래서 슈날 교수는 “동료가 있고 사회적 지원이 있으면 사람들은 자신을 향한 도전에 훨씬 부담을 덜 가지고 스트레스도 덜 받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반대로 그러한 지원이 부족한 사람들은 언덕이 더 가파르고, 거리가 더 멀고, 더 깊고, 다른 종류의 물리적 도전들이 더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지적한다.

서로를 벗이라고 생각하는 신뢰

나는 진보가 거대한 이념에 따라 좌우되는 낭만적인 역사의 흐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는 현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말과 행동이라고 굳게 믿는다.

나는 진보진영에서 의견 충돌을 거치면서 동지들에 대한 심각한 배신감을 느낀 사람들을 여럿 만난 경험이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 사람들은 상대를 끔찍이 미워하게 된다. 심지어 “박근혜보다도 저 자식들이 더 용서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봤다. 내 경험상 의견 충돌이 치열할수록 이런 증오는 더 심해진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진실이 아니다. 아무리 의견이 갈렸더라도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연대해야 한다. 그 사람들이 박근혜보다도 밉다고? 절대 그럴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고 험하다. 그리고 그 길은 절대 혼자서 갈 수 없다.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 한다. 너무 어려운 길이기에 때로는 중도에 포기하는 동료들도 나온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벗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하다. 혼자 쳐다보면 그 언덕은 절벽과도 같지만, 벗이 옆에 있으면 그 언덕은 아주 완만해 보인다.

우리 모두 다 감정을 지닌 인간이기에 마음이 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분노는 아주 잠깐으로 충분하다.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의 저자 찰스 아이젠스타인(Charles Eisenstein)은 “‘나는 네가 필요치 않다’는 느낌은 환상에서 비롯된 착각이며, 사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고 역설했다.

당장은 ‘저런 XX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모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리는 사실 모두를 진정으로 필요로 한다.

이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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