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건강한 노동이야기] 의암호 선박 사고로 숨진 노동자들에게 필요했던 것
'#이_비의_이름은_장마가_아니라_기후위기' 해시태그 운동
'#이_비의_이름은_장마가_아니라_기후위기' 해시태그 운동ⓒ사진 출처 = 전북녹색연합 SNS

‘#이_비의_이름은_장마가_아니라_기후위기입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붙은 사진이 유행이다. 기후 위기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격주마다 피켓팅을 해 오던 활동가들이, 집중호우와 침수로 피켓팅이 어려워지자 온라인에서의 행동으로 해시태그와 사진 공유를 제안한 것이다.

평소 기후 위기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더라도, 전세계적인 감염병 유행과 함께 찾아온 유례없이 긴 장마는 뭔가 지구가 처한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는 것 같다. 전문가들도, 기록적인 폭우 자체가 기후 위기는 아니지만, 호우, 폭염 등 극단적인 날씨 변화나 예측하지 못한 기상 이변이 잦아지는 것은 기후 위기의 전조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게다가 올해는 ‘국지성 집중호우’가 심하고, 침수와 산사태 피해도 많다. 이번 주에도 비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니, 우려가 크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비 피해 주민들이 건강하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후위기는 노동자 건강의 문제이기도 하다. 2019년 온열질환자 1829명 중 529명이 야외 노동자였다. 폭염에 찜통 휴게실에서 잠시 쉬던 서울대 청소노동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1주기에 찾아간 휴게실은 넓어지고, 냉난방기도 들어왔지만, 이미 사망한 노동자의 삶을 돌이킬 수는 없다. 2018년 폭염 당시 드라마 촬영에 참여했던 한 스태프는, 일하다 한 사람이 일사병으로 쓰러졌는데도 환자와 그를 병원에 데려간 사람 1명 빼고는 모두 촬영을 계속했다는 아찔한 기억을 털어놓기도 했다.

7일 강원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 경강대교 상류 1.6km 지점에서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경찰정이 발견돼 소방당국이 수색을 하고 있다.
7일 강원 춘천시 남산면 서천리 경강대교 상류 1.6km 지점에서 의암호 선박 전복 사고 경찰정이 발견돼 소방당국이 수색을 하고 있다.ⓒnews1

올해는 폭우로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경기도의 수재 이재민 중 다수는 이주노동자인데, 침수된 ‘비닐하우스’에서 거주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양강 댐이 방류 중인 상황에서 의암댐 상류의 인공 수초섬을 고정하려다 주무관인 공무원을 포함해 여러 노동자들이 사망, 실종됐다. 소관 지자체인 춘천시는 사망한 주무관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위험한 작업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최근 방송에선 물이 허리까지 찼는데 힘겹게 오토바이를 밀며 배달을 계속하는 라이더의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폭우 등으로 가시거리가 100m 이내인 경우엔 배달 지역을 1.5km로, 호우주의보 발령 시에는 배달 지역을 1km 이내로 제한한다는 고용노동부의 「이륜차 음식배달 종사자 보호를 위한 안전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폭염 때는 폭염 대책, 비가 오면 호우 대책을 내놓는 것으론 부족하다. 다양한 양태로 갑작스레 찾아올 기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무기가 필요하다. 폭염이나 미세먼지, 장마나 태풍, 감염병 등, 앞으로도 기후위기의 직·간접적인 영향은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작업 조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이더라도 일하는 과정에서 본인과 동료의 안전·건강에 악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면 거부할 수 있는 힘을 당사자들에게 부여해야 한다.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주최로 열린 ‘폭염에 폭우까지, 라이더가 위험하다’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7.25
25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배달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주최로 열린 ‘폭염에 폭우까지, 라이더가 위험하다’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7.25ⓒ김철수 기자

‘위험할 때 작업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과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도 법과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위험한 상황에서 이를 어기고 작업을 지시하는 관리자나 사업주에게 적절한 제재와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 노동자들도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기 전, 예방적으로 ‘작업 중지권’을 사용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한다.

‘안전하지 않아도, 위험하고 불안해도, 생산과 이윤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 현실이라면, ‘노동자가 안전하지 않은 상황은 생산이 잠시 멈춰야 하는 시점’이라는 게 작업중지권의 근본 철학이다. 이제 ‘작업중지권’은 사고를 예방하고 노동자의 생명권을 보장하는 차원을 넘어, 화석연료를 근간으로 한 자본주의 생산 체제 때문에 빚어진 기후 위기 시대의 노동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기본 개념이 아닐까?

기후위기를 연구하는 어느 지구물리학자는 만신창이가 된 지구에서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자본주의 문화와 부합하지 않는 역학을 채택한 사람 혹은 집단들의 운동”, 즉 ‘저항’이라고 말했다. ‘생산과 이윤보다, 일하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중시한 작업중지권의 구호가 만신창이가 된 지구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주는 요소 중 하나이리라 믿는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