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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다시 사려 깊은 옥상달빛의 응원가

여성 팝 듀엣 옥상달빛의 대표곡은 ‘수고했어 오늘도’ 이다. 2011년에 발표한 음반 [28]의 수록곡인 이 곡은 다른 드라마 수록곡들과 함께 옥상달빛의 인기를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2010년의 데뷔 EP [옥탑라됴]에서 형상화한 보편적 젊음의 서사를 옥상달빛의 트레이드 마크로 만들었다.

실제로 옥상달빛은 2013년의 정규 2집 [Where]와 2015년의 EP [희한한 시대], 그 후 꾸준히 발표한 싱글에서 한결같이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과 고통을 노래하면서, 힘겨워하는 젊음을 응원하는 노래를 불러왔다. 자존감, 힐링, 위로 같은 담론들이 대세가 되고, 정신과 상담을 받는 이들이 흔해질 만큼 존재하는 일만으로 버거운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옥상달빛의 노래는 많은 이들을 다독여 주었다.

여성 팝 듀엣 옥상달빛 EP 앨범 ‘Still a Child’ 커버 이미지
여성 팝 듀엣 옥상달빛 EP 앨범 ‘Still a Child’ 커버 이미지ⓒ사진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7월 24일 발표한 EP [Still a Child] 역시 옥상달빛이 취해왔던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너스 트랙까지 여섯 곡의 노래를 담은 이 음반의 주된 메시지는 위로와 응원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옥상달빛이 인기를 끌었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재생하면서 인기를 얻는 팀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옥상달빛의 노래는 그렇게 안일하지 않다. 옥상달빛은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뛰어난 입담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에 사랑받는 게 아니다. 옥상달빛의 노래는 많은 이들이 느끼는 낙담과 답답함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보편성이 있고, 비관에 끌려가지 않는 자기 긍정이 있으며, 함부로 개입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 존중과 배려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태도를 음악으로 표현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미학적 깊이가 있다. 옥상달빛의 노래는 바로 이 태도와 음악이 만나 만들어낸 앙상블이다.

EP [Still a Child]에서도 옥상달빛은 비트를 조율하고 악기를 고르면서 보편적이고, 긍정적이며, 배려 넘치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첫 곡부터 끝 곡까지 사운드는 대체로 어쿠스틱하다. 일렉트릭 기타가 들려주는 강렬한 사운드 대신 김윤주와 박세진의 보컬을 따라가며 감싸는 악기는 소박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옥상달빛은 이 소박하고 편안한 사운드의 흐름 안에 자연스러운 멜로디와 소리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연출을 더한다.

첫 곡 ‘산책의 미학’의 경쾌한 리듬 아래 은근하게 깔아놓은 관악기 소리는 음악을 더 따뜻하게 감쌀 뿐 아니라 옥상달빛의 음악에 더 귀 기울여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두 번째 곡 ‘잘 지내, 어디서든’에서도 슬로우 템포의 평이한 곡처럼 들리는 스트링 연주가 곡의 흐름을 따라 확장하고, 클라리넷 연주가 짧게 덧칠을 하고 사라지는 순간 노래가 아득하고 영롱해진다. 노래의 매끄럽고 섬세하며 개성 어린 울림은 옥상달빛이 노랫말만으로 승부를 거는 팀이 아님을 입증할 뿐 아니라, 노랫말로 들려주려는 마음의 진정성을 소리로 충만하게 대변해 음악을 음악답게 완성한다. 음악은 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예술이고, 소리는 멜로디와 비트라는 소리의 뼈대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소리의 뼈대를 감싸는 다른 소리들이 얼마나 잘 조응하면서 어우러지는 지가 음악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잘 지내, 어디서든’은 중심을 담당하는 악기와 이따금 개입하는 악기들을 효과적으로 연결해 가사에 담은 마음을 가사 밖에서도 공감하고 감동하게 한다.

옥상달빛은 ‘어른처럼 생겼네’에서도 이 같은 조합과 연출의 매력을 이어간다. 이 곡에서는 건반과 신시사이저, 스트링 연주와 드럼의 오밀조밀한 드라마에 정점을 찍는 관악기 연주 연출로 노랫말 속 고민이 결국은 풀리고 말 것이라고 응원한다. 그러니 너무 절망하지 말라고 힘을 불어넣는다. 이래서 옥상달빛의 노래를 완전히 흡수하려면 노랫말을 읽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이들은 ‘산책의 미학’부터 ‘비밀얘기’까지 여섯 곡의 노래에서 절망하되 절망으로 빠져들지 않는 자존감으로 삶의 중심을 잡는다. 첫 곡 ‘산책의 미학’에서 “오늘 참 되는 일 없다”고 푸념하던 이는 산책하며 바람과 하늘을 만나곤 “괜찮은 하루였다”고 삶의 무게를 덜어낸다. ‘잘 지내, 어디서든’에서처럼 헤어진 사람에게 잘 지내라고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장 소중했던 관계가 일순에 날아가고 영원히 단절되는 경우가 얼마나 흔한가. 하지만 옥상달빛은 간절하게 너를 그리워한다고 노래하지 않는다.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호소하지 않는다. 노래가 애절하지 않고 간절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감정 앞에 정직하되 억지로 상대와의 간격을 넘어서거나 좁히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토스(pathos·충동,정열) 발산에 집중하는 대개의 대중음악에 비해, 에토스(ethos·이성,도덕)가 작동하는 옥상달빛의 노래는 절제하는 태도로 담담함을 잃지 않는다. 끝난 사랑을 돌이킬 수 없고, 사랑을 실패했더라도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만큼 상대를 배려할 줄 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렇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알아가고, 조금이라도 덜 실패하는 자신이 되는 일이다.

여성 팝 듀엣 옥상달빛
여성 팝 듀엣 옥상달빛ⓒ사진 = 매직 스트로베리 사운드

음반 타이틀처럼 여전히 어린이 같지만, 오늘의 나에게 또 하루를 포기하지 말라달라고 부탁하는 태도는 이미 자신의 삶을 함부로 여기지 않는 태도라서 전혀 어리지 않다. “이제 너는 내 곁에 없구나” 라고 노래하는 ‘니가 없구나’에서도 옥상달빛은 부재를 곱씹을 뿐 상처를 과장하지 않고 상처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변화를 시도하거나 상대를 탓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을 원망하지도 않는 노래는 실패와 상실 앞에서 자신을 비하하지 않고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 태도를 드러냄으로써 누구든 믿고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된다.

‘누구도 괜찮지 않은 밤’이라고 노래하는 옥상달빛이 “아마 우린 또 슬픔을 감추며 살겠지”라고 노래할 뿐, 어떤 조언도 일러주지 않는데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은 그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어깨이기 때문이다. 괜찮아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괜찮지 않다는 것을 외면하지 않고 노래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노래는 모든 사람의 삶을 대신해줄 수 없고, 모든 사람의 싸움을 대신 이겨줄 수 없다. 다만 노래는 곁에 있어줄 수 있다. 옥상달빛의 노래는 ‘곁에 함께 있는 노래’이다. 누구나 감추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비밀 얘기를 누군가 알게 되더라도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힘을 주는 노래이다.

사실 뭐가 얼마나 달라지고 좋아질지 모르더라도,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 아닌가. 한 사람의 가치와 능력이 자꾸 작아지는 시대, 희망보다 절망이 가까워 보이는 시대, 자존과 윤리를 모두 지키는 허세 없이 사려 깊은 노래가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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