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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만난 하나님] 성경 속 반짝반짝 빛나는 여성을 만날 때!

러브스토리 영화 속 주인공은 누구?

얼마 전, ‘플립’(FLIPPED)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10대 소녀, 소년의 로맨스 이야기다. 7살 ‘줄리’는 당차고 모험심이 많은 소녀다. 그녀는 6년 동안 소년 브라이스를 줄기차게 좋아하며 따라다닌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정반대다. 외할아버지를 통해 줄리의 매력을 깨달은 브라이스가 오히려 애타게 구애하게 되고, 결국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이 영화는 브라이스와 줄리의 입장과 관점을 교차로 보여줌으로써, 여자 주인공의 생각과 남자 주인공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떠해야 하는지, 그리고 남녀의 조화 속에서 인생의 아름다운 전체를 바라보도록 유도하려는 듯 보였다.

영화 ‘플립’(FLIPPED)은 10대 소녀, 소년의 로맨스 이야기다. 이 영화는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을 지나쳐버린다면, 인생의 아름다운 전체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다.
영화 ‘플립’(FLIPPED)은 10대 소녀, 소년의 로맨스 이야기다. 이 영화는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을 지나쳐버린다면, 인생의 아름다운 전체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다.ⓒ스틸컷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는 브라이스의 외할아버지의 “사람은 밋밋한 사람, 반짝이는 사람, 빛나는 사람, 그리고 아주 가끔은 오색찬란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데 그건 행운이지”라는 말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한 사람을 위해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을 지나쳐버린다면, 인생의 아름다운 전체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준다.

조연이나 들러리로 해석된 성경 속 여성들

그렇다면 한국교회는 성경 속 여성 인물을 ‘주인공’으로 읽어 왔을까? 아니면 ‘조연’으로 읽어 왔을까? 이 질문을 꼭 던져봐야 하는 이유는 성경은 남성과 여성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창 1:27).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었다는 의미는 ‘인간을 재는 잣대가 자그마치 신(神)’이라는 뜻이다. 즉, 인간은 절대적 자아를 지닌 개별 인격체로서 타인과 인격적 관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남성과 여성 각자는 자기 삶에 주인이 될 때,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의 주체적인 성경 읽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교회는 성경 속 남성인물을 주인공으로만 읽으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여성의 주체성과 인격성을 훼손하였다. 이는 반쪽짜리요, ‘만인제사장설’을 외친 종교개혁의 정신에도 맞지 않는 성경 읽기다. 백번 양보해서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엔 ‘만인’ 안에 ‘여성’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성(sexuality)에 대해선 닫힌 시대였다손 치더라도, 성 평등과 여성의 인권이 부상하는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성인물 중심의 구속사만 강조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지는 일이다.

성경 속 여성들을 조연이나 들러리로 해석한 예들은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열국의 어미’인 사라를 단지 족장 아브라함에게 순종한 아내로, ‘천만인의 어미’인 리브가를 이삭의 아내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세운 레아와 라헬을 아들을 낳기 위해 경쟁하는 자매로 해석하였다. 이 외에도 한나는 사무엘의 엄마로, 기생 라합과 룻은 다윗의 계보를 잇는데 일조한 여성으로, 드보라는 ‘남성을 부끄럽게 하기위해 임시방편으로 세운 여성 사사’로, 마리아는 성탄절에 ‘예수를 낳은 어미’로서만 설교되어 왔다.

지오바니 무찌올리(Giovanni Muzzioli,1854–1894)가 그린 파라오 궁정의 아브라함과 사라, c. 1875, Oil on canvas ,167 x 115.5
지오바니 무찌올리(Giovanni Muzzioli,1854–1894)가 그린 파라오 궁정의 아브라함과 사라, c. 1875, Oil on canvas ,167 x 115.5ⓒMuseo Civico, Modena, Italy

하지만 성경은 남성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만 보여주는 책이 아니라, 여성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도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더욱이, 성경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선언하지 않던가!(창 2:24) 창세기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천지창조에 대해선 겨우 1~2장이고, 나머지는 아담과 하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와 라헬, 요셉과 같은 인물들의 삶을 길게 서술하면서, 부부관계의 갈등과 삶의 애환, 후손과 관련된 계시와 신앙, 차별과 소외가운데 있었던 여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의 뜻과 신앙을 드러내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구속사에서 하와 없는 아담을, 사라 없는 아브라함을, 리브가 없는 이삭을, 레아와 라헬 없는 야곱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들 모두 언약의 당사자들이요 하나님의 구속사의 주역들이니까 말이다.

성경 속 반짝반짝 빛나는 여성을 만날 때

성경 속 반짝반짝 빛나는 여성들은 누구일까? 성경 66권은 전부 남성들에 의해 기록되었기에 여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를 담은 내용은 희소하다. 그래서일까. 성경을 읽다 보면, 남성들 대부분은 하나님의 계시나 명령에 의해 행동하는 반면에, 성경 속 여성들은 하나님의 계시나 명령 없이도 직관과 민첩함, 모험심과 따뜻한 성품을 갖고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주체적으로 동참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살려낸 어머니 요게벳, 누이 미리암, 히브리 산파들, 그리고 바로의 공주를 보더라도, 여기서 한 여성이라도 역할을 이어가지 않았다면 과연 모세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애굽 왕 바로의 명령을 듣고서도 모세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건 어머니 요게벳, 누이 미리암,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 그리고 아버지 바로 왕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히브리 아기를 살려 아들로 키운 바로의 딸 공주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의 신앙적 영민함과 민첩함, 측은지심은 마치 ‘바턴 터치’하는 것처럼 박진감 있게 펼쳐지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러 골고다로 향할 때, 남성 제자들은 모두 도망하였어도, 여성들은 로마군대의 삼엄함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를 따라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첫 증인이 된 것을 연상시킨다. 만약에 여성 증인마저 없었더라면, 과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들을 수 있었을까? 유감스럽게도 남성의 성경 읽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라 하여 남성 인물에만 몰두한 나머지, 정작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생명 걸고 예수의 잉태와 출산, 양육을 통해 예수의 인간성을 증언한 어머니 마리아와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이 된 여성들의 중요한 역할을 부각시키지 못했다.

리브가와 엘리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7세기)
리브가와 엘리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7세기)ⓒ기타

성경 속 반짝반짝 빛나는 여성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리브가를 소개하고 싶다. 얼핏 ‘플립’(FLIPPED) 영화 속 줄리와 리브가는 닮아 보이기도 한다. 나는 리브가를 보면서, 하나님은 100세에 얻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주실 때, 종전처럼 아브라함에게 직접 계시를 통해 알려주면 좋았을 걸, 왜 노종에게 맡기는 방식을 택했을까를 질문해보았다. 왜냐면 사라의 대를 잇는 ‘천만인의 어미’를 찾는 방식이 불안하다고나 할까!

아브라함의 노종으로부터 펼쳐지는 ‘신부감 찾기’ 이야기는 이렇다. 노종은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의 성에 이르렀지만, 막상 그곳에 아는 사람 하나 없어 막막함을 느끼게 되었고, 이에 자신뿐만 아니라 낙타에게 스스로 알아서 물을 먹이는 여자가 이삭의 아내가 될 줄로 알겠다는 매우 자의적이지만 절박한 기도를 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 노종의 기도가 끝나자마자, 리브가를 단 번에 만나게 해주신다. 나는 이 노종의 기도에서 ‘천만인의 어미’가 될 수 있는 자격과 신부감을 찾아내는 하나님의 또 다른 섭리의 방식을 읽어낼 수 있었다.

즉 하나님은 종전처럼 아브라함에게 후손과 땅에 대해 계시하셨던 방식과 달리, 평소 이웃에게 친절을 베풀며 생명체까지 돌보는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리브가의 모습에서 인자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엿보게 하려는 건 아니었을까! 그리고 주목해 보아야 하는 건 바로 리브가의 주체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이다. 리브가는 부모나 가족의 의견에 고분고분 순응하는 그저 그런 밋밋한 여성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는 생면부지인 노종의 얘기만 듣고서 가족과의 이별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결혼에 대해 주도적으로 결단하는 당찬 여성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따뜻한 성품을 지니면서도 줏대가 있는 리브가야말로 이스라엘의 ‘천만인의 어미’가 될 자격이 있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건 아닐까라고 말이다.

리브가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자신의 신부를 위해 묵상하고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남자로 비쳐지고 있다. 이로 볼 때, 리브가는 ‘이삭의 아내’라는 조연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모험을 감행하면서 이삭을 선택한 멋진 주인공인 셈이다! 리브가는 결혼 후, 쌍태를 임신했을 때도 이를 위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정도로 호기심 많고 열정적이었으며, 이런 리브가에게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라는 놀라운 계시를 주신다. 이 계시 때문에서인지 리브가는 남편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려 할 때, 차남 야곱을 에서로 분장시켜 축복 받게 하려는 주도성과 민첩성을 보이기도 한다. 리브가가 남편 이삭을 속인 행동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여기선 노코멘트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천만인의 어미’가 된 리브가는 남편 이삭을 빛나게 해주기 위해 들러리 서는 주체성 없는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어 당당히 헤쳐 나가는 멋진 여성이라는 것이다.

모든 결정권과 리더십이 남성에게 있었던 가부장 이스라엘 문화에서, 리브가가 보여준 결혼과 미래에 대한 주도성과 열정, 따뜻한 성품과 결단력을 알아차린 순간, 마치 먼 곳 밤하늘에 숨겨져 있다가 ‘지금 여기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경이로움과 도전을 선사 받은 느낌이다. 성경 속 반짝반짝 빛나는 여성들을 만날 때, 각 사람 속에 충만히 거하시는 하나님의 신비와 오색찬란한 지혜의 빛을 마주하게 될지 누가 알랴!

강호숙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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