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준의 경제비평] 제대로 된 전 국민 고용보험, 적어도 이것만은

지난 6월 어느 날, 필자가 사는 대구에서는 전국 최초로 택배 노동자, 대리운전 노동자, 방과후 강사, 학습지 교사들이 모여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을 위한 입법 운동을 선언한 일이 있었다. 코로나19 감염의 상흔이 깊은 도시에서 실업과 소득 감소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당시 지역 일간지에 소개되는 정도로 그쳤다.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이 투박하게 직접 던진 우리 시대의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넘어서야 할 전속성의 문턱

예상되던 바였다. 문재인 정부는 여러 경제사회정책에서 대개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진에 그쳐왔다. 7월에 입법예고된 정부의 고용보험법 개정안도 그랬다. 정부는 여전히 산업재해보상보험(이하 ‘산재보험’) 특례적용과 동일한 방식으로 전속성(노동을 한 사업주에게 제공하는 정도)이 높은 일부 특고 직종에 고용보험을 우선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이번엔 더 나아가 노무제공계약의 체결을 입증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였다. 이들 9개 특고 직종의 실제 산재보험 적용률이 평균 10%를 겨우 넘는 수준에 그치는 점은 이와 같은 정부 방침에 대해 우려하게 하는 요인이다.

전속성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성이 부인될 수는 없다. 전속성이 약한 특고 노동자에 대해서도 산재보험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이미 2014년 일이다. 복수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도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이며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에 직장가입자가 된다.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은 문턱이 높다. 노동일 수나 노동시간이 특정되지 않고 취업과 실업 상태의 명확한 구분조차 어려운 새로운 고용 형태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전속성의 문턱을 제거하지 않은 이번 개정안을, 전 국민 고용보험을 위한 제대로 된 첫 걸음으로 보기는 어렵다.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의 고용보험법 개정안 입법예고에 대한 7개 단체 공동의견제출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제대로된 전국민고용보험 도입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2020.07.28ⓒ김철수 기자

노동기본권 사각지대가 곧 고용보험 사각지대

정부는 전 국민 고용안전망 확충을 한국판 뉴딜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런데 막상 약 380만 명의 노동자가 법적으로 고용보험 당연가입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의 미신고 등 사유로 가입하지 못하는 현실(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이 380만 명은 주로 일용직 노동자, 영세사업장 노동자, 사내하청 노동자인 것으로 파악된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불러온 고용 위기는, 현행의 고용보험이 특고와 플랫폼 노동자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의 고용안전망은 고용 지위가 가장 열악한 계층부터 배제시킨다. 현실은 더 차갑다. 경제위기의 한복판에서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내몰리고 있는데도 다시 재정 건전성이 ‘규율’과 ‘준칙’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당장 8월이 지나면 그간에 유급휴직을 가능케 했던 고용유지지원금마저 지급이 중단되는 사업장이 속출할 텐데 말이다. 고용보험이 제도로서 존재하는 이유를 잊었거나 잊고 싶은 것이다.

사용자가 비용 절감을 위해 피보험자격 취득을 신고하지 않아 발생하는 고용보험 사각지대는, 신고 의무 불이행을 제재하는 제도의 집행 수준을 끌어올리면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법적 강제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더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이 사용자 미신고 문제는 사업주와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사이의 기울어진 역관계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오직 노동조합만이 취약 노동자들을 보호한다. 노동기본권 사각지대가 고용보험 사각지대로 이어진다.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특고와 비정규직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단결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옳다. 노동조합법 제2조를 개정해 특고의 노동자성과 원청의 사용자성을 확립하고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도록 해야 하는 이유이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의 조건

자영업자를 포함한 모든 취업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려면 고용 형태와 무관하게 기여와 혜택을 통일시켜 보편적인 제도로 운영하는 편이 바람직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보험을 개인별로 합산된 국세청 과세소득 기반의 체계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단, 이 소득 기반 고용보험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국세청이 근로복지공단을 대신해 개인별 피보험자격을 관리하면서 건강보험공단을 대신해 고용보험료를 소득세와 함께 징수하는 편이 낫고 또 모든 취업자에 대해 월별 소득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월별 소득 확인은 실업급여가 제때에 지급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소득 감소를 보전하는 부분실업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실업급여 수급기간 중 소득활동을 허용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재 소득세법에 따른 약 30개 직종의 인적 용역형 특고 노동자의 경우 상용직 노동자처럼 매월 국세청에 소득이 신고되므로 월별 소득 확인이 가능하다. 건설기계종사자처럼 사업자등록을 하는 특고 노동자는 종합소득세 납부 시점에 1년에 한 번만 소득이 확인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만약 노동을 제공받는 사업주로 하여금 매월 소득을 신고하도록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면 월별 소득 파악이 불가능하지 않다.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사용자가 일용근로소득을 국세청에 신고하는 주기를 분기에서 매월로 단축하면 된다. 플랫폼 노동자는 노무중개플랫폼사업자에게 신고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다만 자영업자는 월별 소득 확인을 위해 자진 신고에 의지해야 하며 이로 인해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소지는 있다.

소득 기반 고용보험에서는 사용자가 보험료를 얼마나 기여해야 하는지도 문제가 된다. 하나의 유력한 제안은 사용자의 보험료 부담을 이윤에 비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방식은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그러나 고용 관계를 맺는 사용자가 급여에 비례하는 보험료를 기여하는 현행 제도와는 차이가 커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한다.

비정규직과 특고 중심의 적용 범위 확대가
전 국민 고용보험의 시작

그렇다면 전 국민 고용보험의 출발점에서는 소득 기반 고용보험을 위한 제도가 완전히 갖추어질 때까지 기다릴 것 없이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이행을 준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배제되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도로 끌어들이고 최대한 여러 특고 직종으로 적용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지체할 이유가 없다. 예를 들어 특고의 경우 노무를 제공받는 복수의 사업주가 모두 피보험자격 취득 신고를 하도록 의무를 지우고 특고 노동자의 노동자 자격 확인을 위한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면 된다. 피보험자격 다중 취득이 허용된다면 가능한 접근법이다. 국민연금이 시간제 노동자의 시간합산으로 직장가입을 허용하는 것처럼, 사업자등록형 특고와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노동일 수 및 노동시간 신고 내용을 합산해 개인별 피보험자격을 관리할 수 있는지도 따져볼 법하다.

아울러 코로나19 경제위기 기간에 대한 별도의 특례 조항을 두어 이 기간 중 고용보험에 신규 가입하는 것만으로도 보험료 기여의 최소 조건이 충족된 것으로 간주하고 즉시 지원과 보호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당장 생존의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 수 없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더 나아간다면 사회적 연대의 실천으로 공무원, 교사를 비롯한 특수 직역 노동자의 고용보험 당연 가입을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이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원들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지방노동청 앞에서 '특수고용 노동기본권 쟁취, 대리운전노동자 생존권 사수 농성 투쟁 선포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07.20ⓒ김철수 기자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에 기반한 전 국민 고용보험

역사는 후퇴와 전진을 반복시키는 우발적인 요소들로 넘쳐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할 수 있다. 또 뉴딜 이야기인가 할 수 있지만, 대공황시기 미국 민주당의 뉴딜이 그랬다. 훗날 뉴딜 노동개혁의 상징이 된 와그너 법은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명시하고 어용노조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용자들의 협조를 기대하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프랜시스 퍼킨스 노동부 장관이 처음에는 이 법안을 환영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실제로 1934년 3월에 입법이 좌절되기도 했다. 그런데 1934년 가을 노동쟁의가 고조되고 노동자들이 그해 11월 선거에서 민주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면서 상황이 변했다. 때마침 뉴딜 초기 노동관계를 규율하던 연방산업부흥법의 이른바 ‘7a 조항’이 1935년 5월에 위헌 판결되면서 법체계에 공백이 생겼다. 7월 들어 루즈벨트가 와그너 법에 서명한 배경이다. 와그너 법이 열어놓은 공간은 이후 산별노조회의(CIO)가 주도한 노동운동에 의해 더욱 확장되었다. 뉴딜 노동개혁은 관료나 전문가의 지혜로 주어진 선물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이 번번이 좌절을 겪으면서 이끌고 뒷받침한 역사에 가까웠다. 오늘 한국의 전 국민 고용보험 계획도 우리 노동운동의 실천에 따라 그 미래 모습이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지난 6월 노동자들의 전 국민 고용보험 입법 운동을, 이제 진보정치가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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