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기자수첩] 서울의 당신에게 내일부터 경주로 출근하라고 한다면

얼마 전 우리매체 필진이기도 한 교수님을 만났을 때 분개하시던 것이 생각난다. ‘불법파견’은 이름에도 딱 써 있듯이 명백한 불법이고, 남의 노동을 나아가 인생을 훔친 범죄인데 회사는 늘 너무 뻔뻔하다는 것이다. 불법파견은 회사가 직접고용해야 하는 일에 파견업체를 경유해 노동자를 고용한 행위이다. 대부분 외양만 파견업체를 끼고 있을 뿐, 하는 일도 정규직과 같고 업무지휘도 원청 즉 원래 사용자가 한다. 누가 봐도 뻔히 그 회사 노동자이지만 이를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회사가 버티면 변호사 구해서 법원에 소송을 내야 하고, 대법원에서 확정되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 내 회사를 회사라 하지 못하고, 사장을 사장이라 하지 못하는 홍길동 신세다.

10일 출근투쟁 시작한 현대위아 사내하청노동자들<br
10일 출근투쟁 시작한 현대위아 사내하청노동자들ⓒ현대위아 비정규직평택지회 관계자 제공

노동자가 판결에 이겼으나 회사측이 직접고용을 거부하는 경우도 흔하다. 노동자와의 다툼에서 밀릴 수 없다며, 차라리 돈을 내더라도 버티는 회사도 많다. 직접고용을 할 수 없으니 위로금을 받고 회사를 정리하거나 자회사나 타공장으로 옮기라는 회유책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수년간 범법행위를 하고도 (임금 갈취하고, 사용자 의무도 회피한) 미안함이나 부끄러움은 찾아보기 힘들다. 불법파견이라는 판결 나왔다고 피해 노동자에게 정중히 사과한 회사는 개인적으로 아직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럴 회사였으면 애초 불법파견도 안 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중소기업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그룹 계열사에서 지금도 벌어진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현대위아가 그렇다. 현대위아는 현대기아차에 엔진 등을 공급하는 핵심 계열사로 지난해 연매출이 7조원을 넘는다. 평택공장에서 파견업체 소속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이 2014년(지금은 2020년이다!) 현대위아 노동자가 맞는지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냈고 1심과 2심에서 승소했다. 조만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예정이다.

그런데 현대위아는 최고 3천만원의 ‘위로금, 격려금’을 내걸고 노동자들에게 자회사 소속으로 옮기라고 회유했다. 6년동안 자기 회사 노동자가 아니라고 싸우더니 도장 찍으라는 합의서의 상대방, 즉 격려금과 위로금을 주는 사람은 현대위아 사장이다. 회사는 자동차산업이 변화할 것이라 직접고용하기 부담스럽다고 말한다. 이는 자회사 소속이면 필요에 따라 언제든 해고할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자회사로 옮기기를 거부한 노동자들에게는 울산공장으로 출근하라고 압박했다. 기존 공장은 자회사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으로 바꿔 평택엔 일할 곳이 없으니 울산에 가서 일하는 우격다짐이다. 현대위아 평택공장에서 울산공장까지 거리를 찾아보니 336km, 차량으로 평일 3시간 30분이 찍힌다. 알기 쉽게 서울을 기준으로 하면 경주 정도의 거리다. 서울시청에서 대구시청보다 멀고 무안의 전남도청과 거의 비슷하다. 도대체 불법은 회사가 했는데 왜 노동자가 집도 절도 없는 낯선 도시에 가서 죄인처럼 일해야 하나. 대한민국을 대표하고 글로벌 자동차산업을 선도하는 현대기아차라는데, 염치(廉恥)는 후진국에도 못 미친다.

현대위아 평택공장에서 울산공장까지의 길찾기
현대위아 평택공장에서 울산공장까지의 길찾기ⓒ카카오 길찾기 캡처

묻고 싶다. 부친을 대신해 그룹을 총괄하는 정의선 부회장은 자기 자식이나 형제가 이런 일을 당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돈이 많다 보니 어쩌면 다른 동네 좋은 저택 사서 출근하면 되지 않냐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비정규직 살림에 결코 적지 않은 3천만원을 거부한 채 어쩌면 이대로 회사에서 잘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딛고 싸우는 현대위아 ‘곧 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한다. 여러분은 일하던 평택공장에서 계속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희철 기자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진실을 열심히 전하겠습니다.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