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신미영의 마음산책] 연애, 하자니 상처받을까 겁나고 안 하자니 외롭고!

박봉이지만 무기계약직 직장이 있는 34세 여성입니다. 야망이 뭐죠? 야망이란 건 지금껏 가져본 적 없습니다. 그야말로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소확행’을 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비교적 가정이 화목하고 부모님 집에 살아 숙식 및 빨래까지 수월하게 해결되다 보니 독립은 마음뿐, 의지가 별로 생기지 않습니다. 결혼은 말할 것도 없고요. 주변에 결혼한 사람들 사는 걸 보면 부럽기는커녕 힘들어보여서 왜 굳이 저러고 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가족이나 친지들로는 메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외로움이 있다 보니 연인을 만들어 이를 채우려 하게 되네요. 대학 2학년 때 첫 연애를 시작으로 대여섯 명의 남친과 교제해 봤습니다. 고민은 연애를 시작하면 잠깐 좋다가 여지없이 성관계와 피임, 연락 문제, 데이트 비용, 서로에 대한 구속, 관계의 비전 등의 주제로 싸우게 되는데 이런 문제들이 대상이 바뀌어도 반복되면서 제 관계능력에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비가 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 화단에 핀 꽃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비가 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 화단에 핀 꽃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김슬찬 인턴기자

다른 사람들이 만나 서로에게 적응하는 과정이다 보니 크고 작은 갈등은 그러려니 하지만 몇 가지는 늘상 반복되네요. 남자친구와 성관계가 시작되면 임신에 대한 불안과 책임은 나만의 몫이 되는 것 같고, 다른 면에서는 잘 배려하던 사람이 성적인 부분에서는 이기적인 태도를 드러내 실망스럽다 못해 화가 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가장 마지막 사귄 남친은 어디선가 일종의 성병 바이러스를 옮겨오는 ‘만행’을 저질러 크게 싸우고 헤어졌지요. 외로워서 연애를 하는데 더 외로워지기도 하고, 성의 있는 연락을 요구하는 나를 ‘집착녀’ 취급할 때는 이정도도 못하려면 왜 연애를 하나싶고. 비교적 쿨한 세 번째 남친과는 데이트 비용문제로 신경전을 벌이다가 끝내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언감생심 영화처럼 달콤하길 바라지는 않지만, 제 연애는 왜 이리 찌질한 걸까요. 제가 관계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요? 늘상 시작은 화려하나 이내 초라해지고, 안 하자니 외롭고 하자니 번번이 상처받는 연애, 꼭 해야 하나요?

개인의 심리적 성숙도나 관계 역량을 잘 드러내주는
측정기 같은 역할 하는 연애관계

자웅이체로 태어난 사람이 가르치지 않아도 연인을 찾아나서는 건 본능입니다. 자기만의 주관적 느낌으로 좋다고 느껴지는 대상을 만나면 심리적, 생물학적으로 불이 붙어 빠져들게 되는데 문제는 이런 이끌림은 관계 역량이나 개인의 성숙 정도와는 아무 상관없이 일어난다는 거지요. 그래서 분명 자기의 빈 구석을 채우기 위해 찾아 나섰고 상대가 좋아서 시작했는데 채워지는 느낌 이상으로 소진되고, 좋은 느낌 이상으로 고통스러워지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게 되지요.

연인관계는 어떤 관계보다 각 개인의 심리적 성숙도나 관계 역량을 잘 드러내주는 측정기 같은 역할을 합니다. 마치 중독 물질에 취하면 잠시 황홀하다가 효과가 떨어지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갖듯 연애도 일종의 환각 상태이기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 좋아 보이다가 열정이 식으면서 못 보던 부족함에 주목하게 되고 통제되지 않는 상황에 괴로워지는 거지요. 이럴 때 자신과 상대를 수용하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역량의 밑천이 드러나고 평상시 이런 역량을 키워오는데 무관심했거나 이런 과정에 의미를 두지 않고 단세포적으로 욕구 채우는 것에만 급급하다면 결과는 당연히 갈등과 고통이겠지요.

그래서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수용, 비폭력적인 의사소통 능력, 자비심 계발 등의 심리적 성숙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서는 단순히 연애 대상자 수가 많고, 연애기간이 길다고 나아지는 건 아닙니다. 연애는 아무리 아름답게 시작해도 본질적으로 자기를 채우고자 하는 이기적 속성을 갖기에 서로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갈등이나 단절이라는 파국을 향할 확률이 높아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겁니다. 그래서 그런 특수한 관계경험을 성장과 학습의 기회로 보고 자신과 관계를 성숙시키는 것에 마음을 두는 것이 한결 유익할 겁니다.

연애와 사랑
연애와 사랑ⓒpixabay

지극히 개인적 연애도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깊이 연관
가해 피해, 도구화 아닌 존중의 관계,
서로의 성장을 돕는 좋은 이웃이자 도반의 관계로

그런데 지극히 개인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연애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도 깊숙이 연관되어 있고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사회 인권 수준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 또한 놓치기 쉽습니다. 즉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연인간 상호작용이 사실은 우리 사회 문화의 영향을 치명적으로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

얼마 전 어느 성교육 강사가 청소년 대상 교육시간에 ‘성관계로 인해 여성들의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에 대해 얘기하는데 한 남학생이 “솔직히 여자들 몸에 어떤 일이 생기는지 관심 없다. 나만 좋으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며 걱정하는 칼럼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자신의 만족 외에 의미 있는 타인의 안전조차 관심 없는 문화, 자기 욕구충족을 위해 타인을 도구화하는 것에 무감각한 문화가 개인들의 관계에도 침투되어 있음은 단지 이 사례만은 아닐 겁니다.

특히 성이라는 내밀한 영역에서 일어나는 타인의 몸에 대한 착취는 흔히 사랑으로 포장되어 자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근래 범죄시되는 ‘데이트 성폭력’이 오랫동안 사랑으로, 개인 간의 문제로 덮어져온 것도 이런 맥락이지요. 평등한 사람간의 관계가 가해와 피해의 구도로 바뀌어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몸과 마음을 이용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의 대상으로 보려는 원칙이 개인적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굳건히 세워질 필요가 있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랑이라는 허울 속에서 돈, 외모, 인기, 직업, 기타 등에서 자신이 우위일 때, 이를 권력으로 사용하여 상대를 통제하거나 도구화하는 은밀한 시도 역시 사람 경시의 폐단이 관계로 침투된 경우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상대에게 매우 치명적 상처를 남길 뿐 아니라 자신도 황폐해지는 지름길임을 자각하면서 강박적으로 찾아 나설 필요는 없지만 이래저래 하게 될 연애라면 서로의 성장을 돕는 좋은 이웃이자 도반의 관계로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을 배우는 학습의 기회로 가꿔나가시길 바랍니다.

신미영 열린학교상담아카데미 상담실장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