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엄은희의 내가 만난 동남아_10] 코로나 시대, 국경 넘기

올해는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던 해외 현지조사를 다녀왔다. 목적지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 이런 시기에 꼭 나가야하느냐, 겁 없다, 걱정과 만류도 적잖이 접했다. 사실 개인 연구자에게는 주어지지 않을 기회인데, 규모 있는 ODA 사업에 관여하고 있어서 기관 관계자와 팀을 꾸려 그 특별한 기회를 누릴 수 있었다. 귀국 후 출장 소식을 페친들에게 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지역연구나 개발협력 분야 동료들은 부럽다고 아우성이다. 다들 현장을 어찌나 고파들 하시는지. 현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다른 성향이든 기질이 있다.

총 4차례, 출국용 비자신청을 위해, 프놈펜 도착 직후, 프놈펜 도착 2주되던 날, 본국 귀환 후 자가격리지 보건소에서 PCR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을 받았다. 코를 깊숙히 찔리는 일은, 알고서 당해야 하는 두 번째 이후로는 정말 아팠다. 낯선 절차지만 상당기간 유지될 필수적인 절차들이겠지. 아직은 장담하면 안 되지만, 네 번이나 안전을 검증받았다는 사실에 현재는 크게 안도하고 있다.

자가격리자 안전보호앱(안전하고 성실하게 자가격리 중입니다!)
자가격리자 안전보호앱(안전하고 성실하게 자가격리 중입니다!)ⓒ필자 휴대폰 캡처

오늘은 ‘코로나 시대, 국경 넘기’의 경험 자체 그리고 그 안에서 생각해본 현장과 현지조사의 의미에 대해 적어보려한다.

한산해진 공항 풍경

운 좋게 해외지역연구를 밥벌이로 삼다보니 공항은 나에게 매우 익숙한 공간이다. 나에게만 그러할까. 2,871만 명. 작년 한 해 한국인의 해외출국 횟수다. 직업상 출입국이 잦은 사람들이나 승무원들의 반복 출국이 포함된 수치라지만, 평균적인 한국인에게 해외여행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시즌마다 “사상최대 출국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클리셰처럼 봐 왔지 않은가.

공항은 코로나 이후 가장 크게 변화된 공간일 것이다. 코로나 전 인천공항의 하루 이용객의 수는 평균 30만 명(승객 20만, 상주인원 7만, 단순방문객 3만)에 하루 이착륙 비행기가 1100편에 달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정부의 관광통계를 확인하니 출입국자 수는 2월부터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가장 최근인 6월의 내국인 출국자 4만8천여 명, 입국자 3만6천여 명이다. 하루 아니라 한달 통계이고, 전년대비 마이너스(-) 97~98% 수준이다. 그나마 강도 높은 초기 방역성공으로 많은 국가에서 여행안전국으로 꼽히는 한국이 이 정도이니, 예전처럼 보통사람이 해외여행 가는 시대는 한참동안 재개되기 어렵겠다.

한산해진 공항에는 전신방호복을 입은 사람들, 입국장엔 군인에서 경찰까지 동원되어 입국자의 동선을 꼼꼼히 규율하려는 모습이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승객은 확연히 줄었어도 공항의 시스템은 돌아간다. 달라진 점이라면 지금은 검역과 더 엄격해진 목적지국가의 입국자 관리규정 점검절차가 늘어나 시간도 제법 소요된다는 것. 항공사는 몇 번에 걸쳐 국가별 입국규정을 잘 따랐는지, 다량의 마스크를 반출하는 것은 아닌지, 만약의 경우 승객 전원의 강제격리 조처도 감당할 지를 거듭거듭 확인한다.

현재 인천공항은 세계와 아시아의 여러 국가를 연결하는 통로다. 많은 나라의 항공편 운항이 중단되었지만 ‘상대적으로 안전한’ 한국은 항공 연결망이 살아있는 국가다. 이게 소문이 났는지 인천을 경유해 최종 목적지로 이동하려는 환승객들이 크게 늘었다. 우리 국적기에 탑승하는 승객의 인종도 국적도 훨씬 다양해졌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런데 이런 환승객 혹은 목적지국가 국적자들 중에서 확진자가 나오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인천-프놈펜 노선의 경우 7월에만 4회, 현재시점 8월 중순에만도 3회 확진자가 나와 승객 전원이 강제격리에 들어갔다. 그래서 국적기를 이용하는 내국인 승객들의 불만이 쌓여간다. 전세기가 아닌 이상 모든 티켓은 오픈마켓에서 비용지불 가능한 전세계인 대상 판매되는 상황이라 점은 이해하지만, 나조차도 타자에 대한 불안을 지울 수는 없었다. 복도 건너편 백인 꼬마가 비행시간 내내 마른기침을 해대는 통에, 20년 냉담자도 “아이고, 주여!”를 속으로 계속 외쳤더랬다. 동승객 중 확진자의 불운이 나를 빗겨가기를 함께 빌면서.

캄보디아의 코로나19 관리

동아시아 국가들은 세계의 다른 대륙에 비해 ‘상대적으로’ 코로나 대응을 하는 편이다. 국가별로 의외의 결과들도 드러났다. 기이할 정도로 검진율부터 낮은 이웃나라 일본의 상황이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동남아 국가들의 경우도 경제력을 포함하는 국가역량을 고려한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를 보여준다. 동남아의 인구대국 1, 2위인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심각한 악순환의 덫에 갇힌 모양새다. 안타깝지만 백신 개발 전까지 완화의 기회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 최대선진국 싱가포르가 동남아 확진자 수 3위다. 인구 대비 발병율은 가장 심각하다. 현재도 일일 신규확진자가 세자리수인데, 진원지가 외국인노동자 집단거주시설이라는 점에서 사회경제적 이중사회의 어두운 면을 확연히 드러냈다.

상대적으로 메콩국가들은 확진자수도, 발병율도 낮다. 바이러스를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고 군-정부-시민의 총동원체제를 만들어낸 베트남의 방역성공은 세계적으로도 인상적인 수준이고, 현재의 정치리더십과 무관하게 국가보건의료체제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문화’가 있는 태국도 방역에 성공적이라 평가받는다.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역시 심각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낮은 도시화율도 인구밀집도가 높지 않고, 초기 국경 및 도시 간 강력봉쇄로 감염확산을 어느 정도 제어한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캄보디아의 코로나 상황은 8월 14일 현재 감염자수는 272명(치료중 환자 49명)이다. 코로나 관련 흥미로운 표현이 눈에 띈다. imported. 이 나라 입장에서 코로나는 수입된, 우리식 표현으로는 해외유입이 절대다수다. 국내 발병 혹은 지역사회 감염을 의미하는 로컬은 소수도 존재하나 이들도 모두 수입된 케이스에서 감염(가이드, 카지노 스탭, 외국인의 친구 등)된 경우로 한정된다.

캄보디아 공항의 입국장과 출국장

프놈펜공항 입국장 검진대(왼쪽)와 프놈펜공항 출국장(청도행 승객 관리)
프놈펜공항 입국장 검진대(왼쪽)와 프놈펜공항 출국장(청도행 승객 관리)ⓒ필자 제공

그래서 캄보디아의 코로나19 관리는 입국자관리가 거의 전부다. 입국을 원하는 외국인들은 a)72시간 이내의 음성확인서, b)5만불 이상을 보장하는 보험증서 원본, c) 3천 불의 현금(검사, 유사시 치료비 등)를 준비해야 한다. 앞의 두 가지를 갖추어야 주한캄보디아 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고, 3천 불은 입국심사 과정에서 예치금으로 현지 은행에 맡겨야 한다. (이 지점에서 뒷담화 추가. 대학의 행정시스템은 어쩌면 그리 변화 없이 완고한가? 규정에 없고,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예치금 책정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그래서 3천 불의 현금은 오롯이 개인주머니에서 먼저 나왔다. 다행히 초진비용과 각종수수료를 제하고 95%를 돌려받았지만.)

도착 후 절차도 복잡하다. 서류를 확인받고, 입국 스탬프를 받은 후 모든 입국자가 공항에서 검진을 받아야한다. 검진 후에는 당국이 정한 장소로 무조건 가서 검진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격리(1~2일)에 들어간다. 불행히도 동승객 확진자가 나오면 해당 호텔에서 2주간 꼼짝없이 강제격리된다. 전원 음성판정을 받은 후 주거지나 예약한 호텔로 갈 수 있지만 2주간의 자가격리가 권고된다. 2주가 지난 후에는 다시 한 번 현지보건소나 지정병원에서 재검을 받아야 하고 여기서 음성결과를 받아야 비로소 캄보디아에서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다.

위기에 뭉치는 한국인?!

이번 출장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현지 한인회의 헌신적인 봉사의 혜택을 입은 일이다. 공항 입국장에서부터 안내지를 배포하고, 오픈채팅방 가입을 유도하고, 2주간에 겪어야 하는 일들을 상세히 안내한다. 호텔에 격리된 한국인 입국자가 억울한 일 당하지 않도록 보건당국, 은행, 호텔과 협상도 하고, 심지어 현지음식 입에 안 맞을까 격리 1일차 점심도 한식으로 준비해 호텔방으로 넣어준다. 세상에나, 고맙기 그지없어라!

캄보디아 한인회의 입국자 안내지
캄보디아 한인회의 입국자 안내지ⓒ필자 제공

귀국 후에도 한참 동안 이 오픈채팅방에 머물며 관찰해 보았다. 아무리 해외여행 능력자여도, 이 시절 국경 넘는 일은 모르는 일, 새로운 일투성이다. 캄보디아 입국에 관한 A부터 Z까지 상상가능한 모든 것이 다 질문거리다. 이 오픈채팅방에서는 하루에도 2천 건 가까이 반복되는 질문이 올라오고, 2주간의 입국관리 과정을 안내하고 다독여주고,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가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매일매일 반복된다. 캄보디아 정부의 입국자관리가 강화된 5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근 4개월을 한결같이.

카톡방 자체가 하나의 세계다. 권리의식과 주장에 익숙한 일부에 의해 얼굴 붉힐 일도 발생했지만, 입국자 입장에서는 그저 한인회의 봉사에 감사할 일이 가득하다. 자녀 둘을 데리고 입국한 한 교민이 창문도 없는 호텔방에서 2주간 강제격리를 당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끈질긴 협상 끝에 방을 옮기게 만드는 과정은 거의 한 편의 드라마였다. 카톡방의 가장 큰 경사는 동시입국자 전원음성판정 소식. 마음 졸이며 할당받은 호텔에서 하루 혹은 이틀을 보낸 입국자와 한인회 관계자들이 서로 축하하고 감사의 인사를 나눈다.

수년 전부터 나에게는 교민사회 자체도 하나의 연구주제다. 궁금해졌다. 왜 나오셨을까? 어떤 사업을 하고 있나? 현지사람들과는 어떻게 지내나? 교민사회의 특성은 무엇일까? 2, 3세대의 삶은 어떠한가? 등등. 아직까지는 개인적 가설인데, 동남아에서 해외교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공통된 특성도 관찰된다. 어느 정도 모험을 감수하는 선택에서 망설임이 없는 편이고, 제도화가 덜 되어 있는, 다시 말해 개인이나 조직의 재량에 따라 운신이 폭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조건에서 한인들은 더 높은 활동력과 성취도를 보여준다.

식민의 역사 혹은 원조로 얽힌 유럽인들, 토착화된 화교네트워크나 최근 중국의 대규모 물량공세로 뒷받침되는 중국인사회, 1910년대 남양경영에서 2차세계대전 대동아공영권을 짧게나마 실현하고 1960년대 이후 투자와 원조로 다져진 일본인사회의 틈바구니 속에서 재외국민이나 동포사회가 자리잡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연구주제다.

코로나 시대의 현지조사와 현장의 의미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해외지역연구자들도 타격을 입었다. 필수적이라 분류되는 공무(公務)와 경제활동에는 국경이 선택적으로 열린다. 외교관은 가야겠고, 상품도 가고, 자본도 가고, 자본가(기업활동은 필수 활동으로 인정받음)도 갈 수 있는데, 연구자는 갈 수가 없다. ‘연구활동이 필수적이진 않지만 중요하잖아요!’ 기회 될 때마다 항변해보지만 아직까지 연구를 위한 현지조사는 일반인의 해외여행에 더 가깝게 취급된다.

막다른 길목에서 마주한 박노해 시인의 시구처럼,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야 할 때도 있다.” 이번 현지조사는 개인적으로도 절실했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개인의 역마살, 배속의 나비가 든 것처럼 다른 세계를 떠돌고 싶은 마음. 그런 것이 없다고 말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그것을 넘어 현장연구에는 온라인으로 대체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현지조사가 계획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두 번이나 음성판정은 받았지만 권고된 자가격리 기간 중엔 공식적인 면담이나 현장방문은 불허되었다. 공공기관과는 화상회의를 해야했고, 계획했던 지방 방문도 취소되었다. 지방은 외국인을 훨씬 꺼려하니까. 그나마 상대국에서도 긴요했던 사업인 까닭에 제3의 장소에서 식사를 앞세운 사적인 형태의 회의가 요령껏 이루어졌다. 체류 2주를 꽉 채운 후 귀국일까지 짧은 그 며칠 동안 몇 건의 대면 회의와 기관 방문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 그래도 논의의 진전이 있었다.

현장에 가야, 면대면으로 현지인들을 만나야 해결되는 것들이 여전히 있다. 위험을 무릅쓰고 시간과 돈을 들여 현장에 온 것 자체가 ‘정성’으로 이해되어 상호 간에 신뢰를 쌓는데 도움이 되었다. 면대면 대화로 오해는 줄이고 실용적인 대화로 직진하기 좋았다. 현지 출장은 온라인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현장의 분위기, 계획이 아닌 실행의 구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가치가 있음을 확인하는 수확을 얻었다. 자가격리를 하며 홀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혼잣말이 늘었다. 글을 마치며 나에게 묻고 스스로 답한다.

묻는 나:
기어이 나가보니 좋았냐? 코로나 시대, 현장연구는 계속되겠니?

답하는 나:
나는 역시 현장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 절절하게 나가고 싶었고, 직접 다녀온 덕분에 현장에 대해 구체적인 감각을 얻게 되었지. 정보와 데이터가 아무리 넘쳐흘러도, 훈련된 지역연구자의 시선으로 포착할 수 있는 앎의 단초, 네트워크의 확장이 분명 있었어. 현장에서 길어 올린 구체적이고 유용한 지식. 그런 게 있다는 걸 확인해서 나는 지금 너무 기쁘다!

엄은희 서울대 사회과학원·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지리학 박사)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