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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위험을 내부화하라

‘위험의 외주화’의 가장 큰 문제는 위험을 위험하다고 여기지 않게 하는데 있다. 그래서 기업 내부에서는 결코 통용되지 않을 용어가 위험의 외주화다. 그래서 위험의 외주화는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사회에 제기되기 시작했다. 현장에서 죽은 이들이 혹은 죽을 뻔한 당사자들이 ‘아웃소싱’이란 경영 전략이 위험을 해결하지 않고 내다버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증언해왔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소재인 ‘맥팔랜드 사건’은 2000년 미군들이 포르말린 475㎖ 480병(20상자)을 한강으로 방류한 사건이다. 당시 미군부대 영안실의 부책임자였던 앨버트 맥팔랜드가 방류를 지시했다. 한국인 군무원이 이러한 지시를 거부하자 맥팔랜드와 미군 측은 ‘물에 희석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한강은 크고 넓다’며 명령 이행을 강제했다. 미군들이 이렇게 했던 데에는 ‘식수원 오염 위험은 다른 나라 문제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깔려있다. 이렇게 안전과 평화에 대한 감각은 다른 감각들과 마찬가지로 편파적일 뿐 무한하지 않다. 다른 이의 죽음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다.

기업의 바깥으로 위험을 털어버릴 때, 기업은 더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것은 더 저렴한 상품으로 소비자에게 그 혜택을 돌릴 수 있다는 식으로 정당화된다. 하지만 크고 넓은 한강에 방류된 포르말린처럼, 기업의 바깥에서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쌓인다. 위험은 괴물처럼 변형되면서 새로운 위험으로 진화한다.

2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108배 및 천도재에서 참석자들이 108배를 하고 있다. 2020.5.28
2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108배 및 천도재에서 참석자들이 108배를 하고 있다. 2020.5.28ⓒ김철수 기자

위험한 업무를 전문적이고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해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가령 건설현장이나 산업현장에서 가설 발판을 설치하기 위해 비계를 쌓는 행위는 비계공이 해야 한다. 전문 비계공이 해당 기업에 없을 경우 그 일은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하지만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비계공보다 일반 건설일용직 노동자의 인건비가 더 싸다는 이유로, ‘안전을 위한 외주화’가 ‘위험의 외주화’로 손쉽게 변질된다. 그래서 외주화는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고 관리되어야 한다.

우리는 통상 위험의 외주화를 원청업체와 하청업체, 하청노동자 간의 권력화된 불공정 계약상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지만 기업의 바깥엔 크고 넓은 한강같은 ‘사회’가 자리한다. 하청노동자의 죽음을 보며, ‘공부 열심히 해서 정규직 되어야지’ 하고 맘먹는다고 위험이 회피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울리히 벡이 저서 [위험사회]에서 경고했듯이 위험은 지연될 뿐이며,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한강에 방류된 포르말린, 가습기 살균제에 섞여있던 독성물질은 위험의 평등한 속성을 보여준다. 다만, 위험의 평등은 무차별적이되 그만큼 비가시적이다.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사고나 재난은 국소적이고 일시적이기 때문에, 위험은 과소평가되고 곧 잊힌다.

물론 오염되지 않은 좋은 물을 사먹고, 비싼 만큼 안전한 상품을 사들이는 것도 위험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위험의 회피’가 상품화되는 것은, 위험을 개별적으로 회피할 수 있게 해주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위험을 해결하는 일도 회피하게 한다. 상품화 될 때조차 위험은 ‘위험하다’고 인식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회피된 위험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급기야 위험은 없다고 오인하게 만든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의 낭만이 미세먼지의 공포로 전환되기까지 얼마만큼의 세월이 걸렸는지 생각해보자.

위험을 위험하다고 인식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내부화해야 한다. 위험을 넓은 하늘과 강물에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리 옆’에 두어야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인식과 의지가 지속될 수 있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자료사진)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자료사진)ⓒ정의철 기자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위험을 위험한 상태로 외부화하지 말라는 뜻이다. 기업이 생산공정의 화학물질을 그대로 배출하면 안 되듯, 생산과정의 위험 업무를 위험한 채로 바깥으로 내놓지 말라는 것이다. 위험한 작업을 곁에 두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방법을 모색하라는 것이며, 도저히 안전해질 수 없는 일은 위험이 해결될 때까지 중단해야 한다는 뜻도 포함한다.

청년노동자 김용균의 사망 이후 공공기관에 수없이 생겨난 안전지침, 안전등급제, 안전평가들 보다, 제조업, 건설업 현장 등의 위험한 업무의 도급을 금지하는 매우 간단한 법 조항 한 줄이 더 효과적이다. 노동자가 외주화된 사업장에서 일하다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야한다는 정부 방침이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이 간결하고 명료한 길을 피하느라 기획재정부는 수많은 안전지침과 안전평가제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면 최근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발전소, 제철소, 조선소 등의 제조업 현장과 건설공사현장에서 이뤄지는 위험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기획재정부 엘리트관료들의 정교한 안전대책보다 도급 금지 범위 확대를 내건 여당 14명 의원들의 산안법 개정안 발의가 더 반갑다. 위험을 회피할 것인지,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방향에서 다른 입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은 법 개정 근거로 국가인권위와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조사위원회, 故김용균씨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의 원인 규명 및 ‘위험의 외주화 금지’ 권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법안이 앞으로 어떻게 처리되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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