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해 8월 14일을 ‘택배 없는 날’로 정했다. 택배노동자들이 주말을 붙여 그나마 쉴 수 있도록 해주자는 사회적 요구가 택배업체들을 움직인 결과였다. 안타깝게도 이 소중한 휴식기간에 한 택배노동자가 숨졌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에 따르면 경북 예천지역에서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 이모씨가 16일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이씨는 이날 택배업무가 없는 일요일이었는데도 출근해 터미널 주변 잡초 제거 작업을 하다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일이어서 터미널에 사람이 거의 없었고, 이씨는 쓰러진 채로 한참 동안 방치돼 있다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사망원인은 과로사로 추정되고 있다. 평소에 큰 지병이 없이 4년간 택배일을 해 온 이씨는 한 달에 무려 1만개를 배달했다고 한다. 밀집된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 한 달에 1만개 배송은 상당히 드문 일이다. 주변 동료들에 따르면 이 씨는 거의 매일 밤 10시, 11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새벽부터 자정에 이르는 시간까지 쉽없이 일하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오래 버티기 힘들다. 노조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 택배노동자들에게 한 달 7천~8천개의 물량이면 이미 많은 수준이라고 한다. 1만개가 넘어가는 물량을 소화하는 노동자는 터미널에 한 두 명 있을까 말까한 수준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씨가 맡고 있던 구역은 주택 밀집지역이 아니고 넓은 지역이어서 이씨는 늘 밤늦게까지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료들은 이씨가 그토록 살인적 노동에 시달린 이유로 턱없이 낮은 배달 수수료를 꼽았다. 이씨가 받았던 배송수수료는 건당 600원이었다. 배송수수료는 보통 주택이 밀집된 도시가 낮고 시골로 가면 높아지는 편인데, 도시에서도 600원은 찾아보기 힘든 수준이라고 노조는 밝혔다. 노조는 대리점 소장이 수수료 일부를 가로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CJ대한통운은 수수료가 단가표로 정해져 있지만 대리점에서 택배기사들에게 물량을 나눠줄 때 대리점 소장이 수수료를 떼고 주는 경우가 현장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이씨의 경우에도 이럴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씨는 CJ대한통운 이외의 다른 회사 물량도 배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택배회사 규정상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터미널 소장들이 영업을 통해 다른 회사 물량을 가져와 택배기사에게 배송을 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씨가 사망한 이후 CJ대한통운 측은 “대리점에서 고인에게 수수료를 정상적으로 지급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조사했는지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대리점에서 수수료 떼먹기와 타업체 배송지시가 일어났고 감추려 마음먹는다면 하루이틀 만에 사측이 진상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노동부와 수사기관이 개입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노동자들은 수수료 떼먹기와 타업체 물량 배송이 대리점의 대표적 불법행위라고 한다. 이 행위는 원청의 묵인 속에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게다가 이씨의 경우 업무가 없는 일요일에 출근해 제초작업을 했다.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진만큼 적극적인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불법이 있다면 벌해야 한다. 암묵적 불법행위는 적극적 처벌없이는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원청의 암묵’ 과정에는 불법이 없는지 밝혀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이씨를 포함해 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했는데, 그 중 4명이 CJ대한통운 소속이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한 회사에서 4명의 노동자가 죽어나간다면 ‘살인현장’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닌가.
택배노동자의 죽음을 손놓고 지켜봐선 안 된다. 코로나19가 계속되고 있고, 갈수록 늘어가는 택배물량을 생각한다면 택배노동자들은 ‘예정된 죽음’의 공포 속에 일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대처가 필요하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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