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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용환의 역사로 생각하기] 전염병의 평행이론, 역사는 이미 여러 가지를 말했다
없음

방랑하는 가축,
조선인들을 병균으로 몰아 추방하다

“토지가 없는 이 지역의 한인들에게는 법이 있으나 마나였으며, 그들의 생명은 그때그때의 고용주나 경찰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러시아인에게 달려 있었다. 토지가 없는 한인이 이해 당사자로 나서는 법률적 처리나 재판의 사례에 대하여 들어 본 적이 없다. 공정한 입장에서 본다면 토지 없는 한인들은 ‘방랑하는 가축’과 같아서, 고용주만 바뀔 뿐 일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러시아 작가 페소츠키(V. D. Pesotsky)가 1913년에 쓴 [아무르 지역의 한인 문제]에 나오는 내용이다. 방랑하는 가축.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제정 러시아가 2차 아편전쟁을 중재하는 대가로 연해주와 블라디보스토크 일대를 확보했지만, 그곳에서 사람 구경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들은 이주하는 조선인들에게 땅을 주었고 귀화할 경우 더욱 많은 정치경제적 권리를 선사하였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만주 일대는 콜레라를 비롯한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였다. 문제를 막을 방도가 없자 러시아 당국은 한인들을 전염병의 원인으로 몰았다. 실제로 296명의 한인을 원산으로 추방했던 적도 있었고 1902년이 되면 황인종이 러시아인 거주 지역에 사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전염병이라는 자연적 현상을 인종 혐오라는 정치적 아젠다로 처리한 것이다.

비단 러시아와 조선인들의 문제만은 아니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 당시 미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19세기 초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독일인들의 미국 이민은 무척이나 활발했고 60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독일군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전파시켰을 것
독일군 병영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가) 먼저 발생

모두 [뉴욕타임스]에 실렸던 내용이다. 뉴욕주 보건국장 로열 코플랜드(Royal S. Copeland)는 뉴욕 시민들의 근거 없는 추측을 굳이 언급하였고 언론은 이를 정확히 받아썼다. 이후 의심은 확신이 되었고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잡지에서는 독일 바이엘사가 제조한 ‘아스피린’에 스페인독감 병균이 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덕택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고 시약 검시청이 조사를 했으나 사실무근이었다. 세계 대전을 일으킨 독일인에 대한 반감, 무엇보다 막대한 숫자의 독일계 이민자들, 그들의 사회적 성공과 주류 사회의 진출이 못마땅했기 때문에 나타났던 현상이다.

백백교 사건,
교주의 명령으로 346명을 죽이다

판사:왜 죽였느냐
피고:전용해의 명령에 복종하였습니다
판사:살해한 이유는?
피고:모릅니다.
판사:노끈으로 목을 졸라 죽였는가
피고:네, 그렇습니다.
판사:살해 방법은 전용해가 가르쳐주던가
피고:네, 전부 교주의 명령에 의하였습니다.

1940년 3월 16일 [동아일보]에 나온 백백교 공판 내용 중 일부이다. 1937년 신흥종교 백백교는 교주 전용해의 주도하에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했음은 물론이고 여러 여성을 첩으로 삼기까지 했다. 이를 문제 삼고 저항하는 신도들을 죽이기 시작했는데 근거지였던 양평에서만 157명, 이후 추가로 발견된 시신까지 포함하여 무려 346구가 발굴되었다. 교주는 도주 중 자살했고 부하 30여 명이 잡혔다. 이미 교주가 죽었고, 교주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증언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감안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사실은 종교 지도자가 연쇄 살해를 명령했고 수하들은 이를 실천에 옮겼다는 점이다.

백백교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호외
백백교 사건을 보도한 조선일보 호외ⓒ자료사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19 사태가 반년을 넘어가고 있다. 해결 기미가 보일쯤이면 보란 듯이 ‘종교집단’의 폭주가 벌어진다. 신흥종파 신천지와 교주 이만희, 기성종파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와 대신교단 총회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회장을 역임한 목사 전광훈. 이들의 독특한 종교 활동 혹은 이들의 정치사회적 의지는 코로나19 사태의 사회적 위험을 증폭시켰다.

세상에는 매번 여러 가지 어울리지 않는 조각들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의외의 시간에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합쳐져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전염병, 종교, 혐오, 정치적 의지, 신흥 종파의 독특한 종교 양식, 기성 종파의 누적된 문제 등등. 오히려 전염병은 상수이다. 인류 역사에서 늘 있었고 삼국사기, 난중일지,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사료에서 쉽사리 구경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신종플루, 사스, 메르스 등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것이 파괴적이든 아니든, 때가 되면 종식되고 다시 때가 되면 기승을 부린다는 점이다.

문제는 사람과 사회. 이것은 이단 종파의 일이니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일부 기독교인들의 행태이지 기독교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일부 극우파의 정치적 행태이지 한국 정치의 문제가 아니다? 아니다. 한국 기독교의 누적된 문제이고, 한국 정치 문화의 근본적인 한계이다. 변화를 꿈꾼다면 이 지점을 눙치기보단 집요하게 성찰하고 바꾸어 나아가야만 한다. 전염병의 시대, 결국 의미를 찾고 만드는 것 또한 사람과 사회이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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