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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천의 일과 법] 장래희망은 근로자, 우리의 소원은 정규직

“교수님, 이번 학기에 노동법 강의를 들으면서 근로자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취업준비 열심히 해서 꼭 근로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몇 년 전 필자의 학부생 대상 노동법 강의에 대한 학기말 강의평가에 어느 학생이 썼던 말이다. 강의 시간에 노동법상 법률용어인 ‘근로자’의 개념, 사업주들이 필요한 인력을 자영업자 형식으로 사용하여 노동법의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점 등을 설명했더니 학생에게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나 보다. 학생이 쓴 말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아 기특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근로자가 되는 것이 청년들의 장래희망이 된 현실이 씁쓸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동법상 ‘근로자’라고 해도 현실에서는 다 같은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더욱 불편한 진실, 아마도 저 학생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안정된 직장의 정규직 근로자가 되어야 온전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현실도 곧 알게 될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심란했다.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 800만 시대.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되었다.” (2013년 KBS 드라마 “직장의 신” 중 내레이션)

2013년 KBS로 방영된 드라마 ‘직장의 신’. 계약직 근로자의 애환을 코믹하게 다룬 내용으로, 일본의 니혼TV 드라마 《파견의 품격》(ハケンの品格)을 리메이크 한 작품.
2013년 KBS로 방영된 드라마 ‘직장의 신’. 계약직 근로자의 애환을 코믹하게 다룬 내용으로, 일본의 니혼TV 드라마 《파견의 품격》(ハケンの品格)을 리메이크 한 작품.ⓒ드라마 홍보 포스터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불안, 정규직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일을 하면서도 임금 등 근로조건에서 받는 불합리한 차별은 새삼스럽게 다시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더욱 문제는 비정규직이 단지 근로조건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직, 결혼 등 삶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비정규직 상태를 벗어나기 힘든 일종의 ‘신분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비정규직이 사회적 신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법원은 비정규직(무기계약직)임을 이유로 호봉에 차이를 두는 것은 근로기준법상 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라 판단한 사례도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6. 14. 선고 2017가합507736 판결).

정규직 근로자가 되는 것이 장래희망인 청년들, 정규직 전환 되는 것이 소원인 비정규직 근로자들, 이들의 절망과 눈물이 최근 인국공 논란이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폭발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린다. 적어도 1990년대 중반까지는 유명 대기업이나 금융권 취업이 더 선호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IMF 당시 대기업이나 금융권 정규직원들이 하루아침에 집단적으로 실직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자녀의 돌반지까지 내놓으면서 양보하고 희생하면 경제상황이 나아져 다시 일터로 돌아갈 것이라 꿈 꿨지만 당시 일터에서 쫓겨난 사람들은 다시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로 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민간기업에서의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의 위협은 상시화해 실직 위험이 적은 공무원이나 공기업은 꿈의 직업, 신의 직장이 되어갔다.

공무원 전형방식, 공공부문 공채방식 등에 대한 법적, 제도적 규제가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도 IMF 이후인 2000년대 초중반 이후이다. 참고로, 1980년대에 처음 도입된 우리나라의 대규모 공채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문 제도로서 우리나라 이외에 대규모 공채를 통하여 대졸 신입직원을 채용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업무상 필요와 무관하게 지원자 모두에게 영어 능력을 요구하고 필기시험을 실시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고 한다.


IMF에 무너진 대기업·금융권 신화
꿈의 직업, 신의 직장이 된 공공부문
정의(正義)의 문제가 된 좋은 일자리의 공정한 분배


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진정사건 조사를 통해 9개 공공기관에서 연령 및 학력 제한을 폐지하도록 권고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부터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에서 학력을 기재하지 않는 블라인드 제도가 도입됐고, 2015년에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기반 채용제도가 도입되어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능력중심 채용제도가 실시되기 시작했다. 이후 역시 능력중심 채용제도의 일종인 블라인드 채용제도가 2017년부터 공공부문에 전면적으로 도입됐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이 높아지면서 고용상 차별금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측면도 있지만, 공공부문의 채용과정을 법적, 제도적으로 엄격하게 통제하게 된 것은 그만큼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얻을 수 없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일반 시민들 뿐 만 아니라 법학자들에게조차도 생소한 법률인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이 있다. 2014년에 이 법이 처음 제정되던 당시에는 주로 구직자에게 채용심사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을 금지하고 채용서류를 반환하도록 하며 합격 여부를 명확히 고지하도록 하는 등 채용의 절차적 측면을 규율하고자 하는 것이 주된 취지였다. 이후 공기업과 금융권의 채용비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 법이 주목받게 되었고, 2019년 법 개정을 통해 “채용에 관한 부당한 청탁, 압력, 강요 등의 행위와 채용과 관련하여 금전, 물품 등을 제공하거나 수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3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하는 한편, 구직자 본인의 용모ㆍ키 등의 신체적 조건, 출신지역, 혼인 여부, 직계존비속의 학력ㆍ직업 등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아니한 정보를 기초심사자료에 기재하도록 요구하거나 입증자료로 수집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현재 이 법은 근로자 30명 이상을 고용하는 민간기업 및 공기업에 모두 적용된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천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서비스노조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부당해고 집회’를 열고 삭발을 단행했다. 이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직접고용 전환 과정에서 공개채용에 탈락해 실직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철회와 고용 안정을 요구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천 예금보험공사 앞에서 인천국제공항 보안검색서비스노조는 ‘인천공항 비정규직 부당해고 집회’를 열고 삭발을 단행했다. 이들은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직접고용 전환 과정에서 공개채용에 탈락해 실직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 철회와 고용 안정을 요구했다.ⓒ뉴시스

오랫동안 사업주의 자유가 상당히 넓게 인정되었던 채용 절차에 법이 이 정도로 개입하게 되었다는 것은 좋은 일자리가 공정한 분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법적 정의(正義) 실현의 문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법은 대개 이미 발생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한다는 속성을 고려할 때 현실의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심각할 것임은 자명하다.

우리 사회가 지난 20여년간 공공부문, 민간부문을 가리지 않는 과도한 비정규직 사용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고용불안, 정규직과의 격차를 방치하는 동안 청년 구직자들은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 또는 공기업의 정규직이 되는 것만이 인간답게 살 길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분별한 비정규직 사용과 정규직과의 심각한 격차 등 그간 누적돼온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법적, 제도적 개선 필요성을 외면한 채 지금의 이 복잡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말로 글을 맺고자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은 우리가 그 문제를 만들어냈을 때와 같은 수준의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The significant problems we have cannot be solved at the same level of thinking with which we created them.).”

박귀천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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