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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기억과 공간] 한여름 방구석 여행기② : 독일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를 건너 1년에 한 번 만났다는 칠석날이 지난주였습니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시작돼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캠핑장이 인기였지만 이마저도 폐쇄되어, 칠석날 맑은 밤하늘에서 은하수를 볼 기회를 놓치게 되었습니다. 역시 이럴 때일수록 위험이 도사리고 습하기까지 한 바깥 세상 대신, 구들장과 한 몸이 되어 여름휴가를 보내는 게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달 방구석 여행기는 ‘독일’ 이야기 입니다.

1990년 동·서독이 베를린 장벽을 넘었습니다. 장벽 사이로 나눠져 지내던 가족들이 만났습니다. 우리도 어여 만났으면 하고 바랍니다. 분단의 역사를 겪은 점은 비슷하지만, 독일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독일의 현대사를 잠시 돌아봅니다.

독일은 20세기 초 어려운 시절, 이웃나라들에게 노략질을 일삼습니다. 잠시 반성하나 싶더니 다시 잔학한 노략질을 합니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짓을 일삼는 나라가 됩니다. 우리 정서에선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 일본의 끊임없는 노략질도 여기에 비할 바가 못 될 것 같습니다. 물론 피해당사자에겐 경중이 무의미하겠지요.

만행을 일삼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1945년부터 1990년까지 동쪽과 서쪽 두 부분으로 나눠집니다. 이후 본격적으로 피해보상에 나서고 자숙·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희생자를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베를린 시내 많은 기념물들은 가해자인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를 위로하며, 국제 사회에 독일 역사의 과오를 드러내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이 반성과 사죄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의 여정은 베를린 심장부에서 시작합니다. 보통 건축물이 서게 될 대지가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여기에 더해 그것이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때, ‘장소’는 더욱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등장하게 됩니다.

베를린의 명소인 브란덴부르크문(Brandenburg Gate), 파리저 광장(Pariser Platz),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Reichstag), 티어가르텐(Tiergarten) 등으로 둘러싸인 곳에 ‘학살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가 있습니다. 티어가르텐 내에 자리한 ‘박해받은 동성애자 기념비’, ‘분서 기념도서관’, ‘신위병소’,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을 돌아본 후 ‘그루네발트역’에서 마무리합시다. 주요한 여섯 곳의 기념물이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광기가 만든 죽음의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여 우리에게 전달하는지 둘러보겠습니다.

학살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학살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사진 = Alexander Blum

먼저 ‘학살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입니다. 1988년 독일 시민사회가 기념비 건립에 대한 제안을 합니다. 그와 동시에 반대 여론이 시민사회 일각과 정치계에서 일어 건립이 무산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듬해 통일이 되면서 다시 논의가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긴 시간의 과정을 거쳐 2005년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기념비가 자리잡은 대지는 평평하지 않고 물결치는 듯한 경사로 이루어져, 지상 4m 높이의 기념비와 함께 불안전한 공간감을 만드는 효과를 냅니다. 주변 거리의 높이와 비교하면 2.4 m 깊이까지 낮습니다. 지상엔 망자의 관을 연상케 하는 무명의 묘비가 가득합니다. 제주 4.3평화공원의 행방불명인 표석이 추상화된 것처럼, 넓은 대지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조각공원 같기도 한 이곳은 베를린 도심 한가운데서 전 세계에서 오는 여행객을 맞이할 뿐만 아니라, 베를린 시민들이 이용하는 도시의 광장이자 공원으로써 역할을 합니다.

이 기념비의 함의는 독일이 학살한 유대인을 추모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또 국제사회에 반성과 사죄의 뜻을 전하는 명징한 시각적 상징이고, 다시는 극악무도한 패악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며, 전쟁의 끔찍함에 대한 경각심을 후대에게 전하기 위한 건축물입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이 공간이 죽음을 기억하는 공간 ‘공동묘지’라기보다는, 이 곳을 방문하는 전 세계 사람과 함께 베를린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도시의 일상적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모두의 일상과 삶의 궤적에 있는 휴식의 공간이고 일종의 조각공원이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곳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나 반대하는 허울뿐인 명분의 혐오시설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가면 기피시설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지상이 이름 없이 죽어간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한 공간이라면, 지하는 홀로코스트의 상세한 이야기들을 전시한 곳입니다. 『이것이 인간인가』의 저자 프리모 레비(Primo Levi)의 육성, “이것은 일어났고, 또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말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이다”를 들으며 시작되는 전시공간은, 전쟁과 죽음의 모든 것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전시된 내용 중, 뼈 때리는 가장 아픈 사실 하나를 꼽으라면, 희생된 자들의 정보를 수집해 보니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출생과 사망을 언급하는 데에 걸리는 시간이 무려 6년 7개월 27일이나 된다는 점입니다. 실로 어마무시한 규모의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방문하고 나면 독일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며 반성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실로 대단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박해받은 동성애자 기념비
박해받은 동성애자 기념비ⓒ사진= 위키피디아

다음은 ‘박해받은 동성애자 기념비’입니다. 이곳은 조금 전에 봤던 ‘학살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에서 길을 하나 건너면 있는 티어가르텐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으로 가기 전, 인근에 산재한 히틀러가 사용했던 지하 벙커들을 보셔도 좋겠습니다.

티어가르텐은 일종의 금원(禁苑, 궁궐 내의 동산 또는 정원)으로, 우리로 치자면 창덕궁 뒤편 후원 같은 곳입니다.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가 19세기 중엽에 개방해, 현재는 베를린 시민의 휴식처와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박해받은 동성애자 기념비’는 박해받다 학살된 동성애자들을 위로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든 기념비로, 그 안엔 두 남자 동성애자가 키스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공원 산책로에 살짝 비껴 서 있습니다. 공원을 걷던 이들은 산책을 하다 의도치 않게 이곳을 마주치게 됩니다. 일상의 궤적 속으로 불쑥 들어오는 의도적 개입이 여기에 있습니다. 서울역 광장의 강우규 동상, 옛 일본대사관터 맞은편의 평화의 소녀상은 그러고 보면 훨씬 더 강력한 개입입니다.

히틀러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소수민족, 집시, 동성애자 등 많은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이 하나의 기념물은 유대인 홀로코스트로 대표되는 ‘희생’에 묻혀 있지 않고, “여기 우리도 있습니다”라며 당당히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분명한 시각적 형태, 명징한 상징물로 그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존재의 증명이지요.

베를린 시민들이 티어가르텐을 거닐며 만나게 될 이 기념물은, 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괴테 기념 동상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습니다. 한국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4.16 추모공원을 만들자고 하니 집값 떨어진다며 “혐오시설 건립 반대”를 외치던 이들이 생각납니다. 우리 사회의 동성애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생각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던지는 함의는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을 떠나기 전, ‘나치에 희생된 집시를 위한 기념비’(Memorial to the Sinti and Roma Victims of National Socialism)를 둘러보면 독일이 소수자들의 희생도 가벼이 다루지 않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기념비 지척엔 명소인 브란덴부르크문, 파리저 광장,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이 있습니다.

베벨광장의 분서기념도서관
베벨광장의 분서기념도서관ⓒ사진 = Stefan Kemmerling

자리를 옮겨 베벨 광장(Bebelplatz)으로 가면, 1933년 나치의 분서 사건을 고발하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1.1 m 크기의 육면체가 땅밑으로 들어가 사면이 빈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텅 빈 서가입니다. 그곳에는 분서의 대상이 된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의 희곡 ‘알만조르’(Almansor,1820)의 대사 한 대목이 새겨져 있습니다.

“단지 그것은 서곡일 뿐이다. 책을 불태우는 자가 마지막엔 사람까지 태울 것이다.”

“분서 사건에 대한 놀라운 건축물, 작은 공간이 그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기억에 대한 테러를 기억하기 위한 공간 말이지요”(『건축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하는가』, 중에서, 2017)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동쪽으로 쭉 뻗은 운터 덴 린덴 대로에 훔볼트 대학이 있습니다. 이쪽 주변엔 박물관, 갤러리, 공원 등 중요한 시설물들이 꽤 많이 자리해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가 잊지 않고 봐야 할 두 곳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훔볼트 대학 맞은 편 베벨광장의 ‘분서기념도서관’, 두 번째는 훔볼트 대학 바로 옆 ‘신 위병소’로 알려진 노이에 바헤(Neue Wache)입니다.

뢰머베르크 광장의 분서 기념 동판
뢰머베르크 광장의 분서 기념 동판ⓒ사진 = 위키피디아

전자는 위의 기념물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건축물은 히틀러를 추종하는 많은 청년들이 저지른 분서(焚書), 곧 책을 불태운 것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도서관입니다. 유대인, 외국인, 공산주의자 등의 작품을 불태운 광기는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나타났습니다.

책들의 화형식, 이것은 서막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책을 불태운 자가 결국 인간을 불태우게 될 것”이란 하이네 작품 구절을 그대로 이행한 듯, 분인(焚人)은 아우슈비츠에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술가 미하 울만(Micha Ullman)이 지하에 만든 도서관은 화형당한 책들의 무덤이기도 하고, 이제는 더 이상 태울 수 없는 서고이기도 합니다. 히틀러와 나치즘을 추종하며 보였던 젊은이들의 추악함은 영원히 이곳에 묻혀버렸습니다. 책을 불태운 후엔 인간마저 불태웠던 그들과 그들의 이념이 더 이상 활개치지 못하게, 영원히 이곳에 묻혀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도서관인 것 같습니다.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사진 = 위키피디아

후자는 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이 지은 군 위병소입니다. 현재는 하인리히 테세노프(Heinrich Tessenow)가 새롭게 단장한 ‘신 위병소’로서 반전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4.3을 기억하며 썼던 지난 4월 칼럼(비설, 4·3의 기억)에서 이곳을 잠깐 언급한 바 있습니다.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Mutter mit totem Sohn)’가 둥근 천창 아래 앉아 있습니다. ‘학살된 유럽의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나 ‘박해받은 동생애자를 위한 기념비’가 전쟁의 참상을 제3자의 시선으로 관조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면,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자신의 처지를 비통해하며 그 아픔을 표현해 내는듯한 모습입니다. 그를 통해 자식을 잃은 모든 어미의 애통함을 대변하고, 전쟁의 참상을 보여주는듯 싶습니다.

반전과 평화의 의미를 콜비츠의 피에타만큼 피부에 닿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암흑의 대지에서 짐승의 시간을 지나, 숙고와 묵상의 공간 속에서 인간이 길어 올려야 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고, 발견해 내도록 등을 떠미는 것만 같습니다.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사진 = Günter Schneider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의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Jewish Museum Berlin)은 붉은 지붕의 ㄷ자 건물인 기존의 베를린 박물관 옆에 예각으로 꺾인 선형 건물이 덧붙어 있습니다. 두 건물의 시각적 차이만큼이나 이질적인 공간입니다. 이 박물관은 몇 가지 주요한 디자인 요소(추방된 문화 예술 관련 인명록, 그들의 집 주소,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의 미완성 오페라 ‘모세와 아론’,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에 기초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은 ‘선들 사이에서’(between the lines)입니다. 조각난 듯한 직선과 꺾인 예각의 선들이 중첩되면서 같은 방향을 향해 증식해가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과 유대인의 단절된 관계, 그러나 은연중에 지속되며 증식하는 상호 관계, 홀로코스트의 불가항력적인 재앙 속에서도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리라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메나쉬 카디쉬만의 '낙엽'
메나쉬 카디쉬만의 '낙엽'ⓒ사진 = Manuel Liniger

내부 전시공간들 중 충격적이었던 곳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현대 미술가 메나쉬 카디쉬만(Menashe Kadishman)의 ‘낙엽(Shalekhet - Fallen Leaves)’입니다. 이곳은 입을 벌려 비명을 지르는 1만개가 넘는 얼굴 형상의 두꺼운 철판을 바닥에 깔아놓은 기억의 빈 공간(Memory Void)입니다.

이 위를 걸으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서로 겹쳐지고 포개진 얼굴이 부딪쳐 울리는 쇳소리가 약 27미터 높이의 벽을 타고 오르며 잔향이 아닌 비명을 만듭니다. 여러 명이 동시에 걸으면 소리가 더욱 겹치고 증폭되어 절규의 공간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절규하는 강철의 얼굴은 수용소의 가스실에서 사라져 간 유대인을 뜻하기에 너무도 직설적입니다.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
그루네발트역 17번 선로ⓒ사진 = Bezirksamt, KHMM

마지막 가볼 곳은 ‘그루네발트 역(Grunewald railway station)’입니다. 이곳은 1941~1945년 사이 동유럽 유대인 집단 거주지인 게토(ghetto)나 수용소 등으로 5만명이 넘는 유대인을 강제 이송한 기차역입니다. 1941년 10월 18일 죽음의 수용소로 향했던 첫 기차가 바로 이곳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승강장에는 총 길이 약 132m에 달하는 186개의 강철판이 깔려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차가 출발한 날짜와 거기에 탄 유대인 수, 그리고 도착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것은 도착지를 알 수 없어 비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위 사진의 철판에는 1943년 6월 28일 319명의 유대인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루네발트 역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역에서 추방당하기 전 마지막 발을 딛었던 유대인들을 실은 기차는 사라지고 없습니다. 지금은 남은 승강장이 부재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죽음으로 가는 역’은 죽은 자를 기록하여 기억하기보다는, 죽은 자의 기록을 통해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독일의 만행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단단히 승강장에 붙들어 매어 기억하게 하고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추방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
베를린에서 추방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사진 = Axel Mauruszat

그루네발트역 입구 오른편에는 베를린에서 추방된 유대인을 위한 기념비가 있습니다. 거칠고 방향성을 가진 콘크리트 질감 속에 사람의 형상이 음각화되어 있습니다. 기차 칸 크기의 콘크리트 속 유대인을 표현한 것 같기도 하고, 꼼짝없이 갇혀 추방된 유대인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콘크리트 덩어리 속에 갇힌 불행한 역사와 전쟁의 비극이 무언의 웅변으로 우리의 시선을 잡습니다. 이것이 끄집어 내려는 것은, 우리의 야만성과 광기와 잔혹함 모두를 여기에 가두는 데서 평화가 출발할 것이라 일러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질문화로 대표되는 건축이 남기는 것은 당연히 물질 덩어리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기념이고 때로는 숭고함입니다. 종종 비극적인 기억과 역사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수치를 소환하며 비극의 시간과 공간을 얼려 조각으로 만들어 둔 ‘베를린 흑역사물’들을 보았습니다. 이것들은 죽음으로 이어진 그루네발트의 선로 위에, 희망을 향한 기차를 떠나보내는 승강장 앞에, 인류의 희망과 인문의 가치를 교훈처럼 남겨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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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식 건축가·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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