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목적 중 하나는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산재보상절차는 공정함은 논외로 하더라도 신속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산재신청 시 사업주 날인을 받는 절차가 없어지는 등, 행정 절차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는 일은 여전히 노동자들에겐 어렵다.
지난해 나를 찾아온 재해자 한 분은 혼자서 최초요양신청서를 작성하였는데 ‘업무상 질병’을 체크하지 않고, ‘업무상 사고’로 체크하고, 재해 경위 또한 업무상 사고로만 작성하여 불승인을 받았다. 이후 ‘업무상 질병’으로 재해경위서를 다시 작성해 제출했을 때는 일부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이주노동자 산재교육을 갔더니, 센터 직원분은 산재 브로커가 너무 많다고 하소연을 하셨다. 연락처를 준적도 없는데, 재해를 입은 이주노동자에게 연락을 해 장해보상금을 많이 받게 해주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사업주를 대신하여 재해를 보상해주는 측면도 있지만, 사회보험적 기능도 있다. 산재신청절차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노동자가 입증해야 할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회보험적 기능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2020년 8월 19일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일부개정법률안'엔 반가운 내용이 많다. 이 법안은 사업주에게 산재신청 관련 자료 제공의 의무를 부과하고, 재해자들이 전문가의 조력으로 산재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우려되는 점들도 여러가지 있다.
첫째, 국선노무사를 지원받는 대상은 누가 될 것인가? 법안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그 대상을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데, 조건이 까다롭다면 노동자들이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현재 ‘체당금 조력지원제도’의 경우, 10인 미만 사업장 이란 조건에 ‘전체 노동자 평균 급여’란 상한까지 정해져 있어, 실제로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다. 부산의 경우, 한 해에 체당금 조력지원이 이루어진 사례가 손에 꼽힐 정도이다. ‘해고자 개인의 소득요건’만을 정하고 있는 부당해고 조력지원제도보다 훨씬 더 까다롭다. 지원대상범위를 정할 때,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해지지 않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둘째, 조력지원 전문가의 선정과 교육이다. 체당금 및 부당해고 조력지원의 경우, 전문가를 선정한 이후 고용노동부에서 교육을 하는 경우는 전무하다. 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대리인 선임비용을 고용노동부가 대신 지불한다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임금체불·부당해고·산재 등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에 대해 국가가 지원을 하고 있다는 관점이 필요하다.
재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하면 국선 조력인에게 풍부하고 다양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산재의 경우 안전보건공단과 근로복지공단, 고용노동부가 원래 했어야 할 일의 일부를 민간 전문가가 맡게 되는 것이므로, 국선조력인에게 다양한 재해사례 및 공단(불)승인사례 등 빅데이터가 제공되어야 한다. 또 피해자 지원 전문가 양성교육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간단한 신청서만 쓰면 근로복지공단과 안전보건공단, 고용노동부에서 조사하고 보상도 척척 해주어, 재해자가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적어도 지원대상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국선조력인에게 비용을 대신 지불하는 것으로 국가가 할 일을 다 했다 생각하고 방치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조금 더 든든한 산재보험이 되는 길이 아닐까 한다.

유선경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공인노무사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