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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요?

연초부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근심거리가 된 코로나바이러스는 우리의 생활 속에 터를 잡아가고 있고, 여름에 만난 장마는 ‘가장 길었던’이라는 달갑잖은 수식어를 달았습니다. 뒤를 이어 쫓아 온 태풍들도 ‘역대급’이라는 호칭을 받았으니 2020년의 반이 훌쩍 넘은 지금, 어수선한 세상일이 더욱 어지럽게 느껴집니다. 문득 ‘올해에 희망은 있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 화가 조지 와트의 작품 ‘희망’ 속 여인의 모습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닮았을까요?

George Frederic Watts      Hope  1887  oil on canvas  142.2cm x 111.8cm
George Frederic Watts Hope 1887 oil on canvas 142.2cm x 111.8cmⓒTate Britain

지구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은 ‘희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붕대로 눈을 가린 그녀는 모든 줄이 다 끊어지고 딱 한 줄 남은 리라를 켜고 있습니다. 그 한 줄로 무슨 소리를 낼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녀는 귀에 들리는 작은 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잔뜩 구부린 채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희미한 한 줄의 떨림을 통해 지금 그녀는 모든 소리를 다 상상해볼 생각인 것이지요. 와트는 희망은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몸부림과 정성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George Frederic Watts      Hope  1887 일부분
George Frederic Watts Hope 1887 일부분ⓒ기타

여인을 둘러싸고 있는 배경의 색은 희망을 연상하기에는 너무 어두워 보입니다. 여인의 어깨선을 따라 위로 올라가다 보면 작은 별 하나가 떠 있습니다. 그 별이 떠 있는 한 희망도 사라지지 않겠지요. 사실 이 작품은 작품의 제목과 달리 메시지가 모호합니다. 그래서 관객들의 호응과 달리 평론가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지요. 그러나 메시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작품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탐미주의자들로부터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George Frederic Watts Hope 1885
George Frederic Watts Hope 1885ⓒWatts Gallery

와트는 ‘희망’이라는 작품을 최소 4점 남겼습니다. 바로 위의 작품이 그가 그린 첫 ‘희망’입니다. 와트는 자신의 작품을 국가에 기증하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이 작품을 사겠다는 개인 수집가가 있어서 ‘희망’을 다시 한번 그리게 됩니다. 작품이 완성되자 맨 처음 그린 것을 판매하고 두 번째로 그린 작품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글 처음에 실린 작품이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번째 작품이 더 많이 알려졌지요. 처음 그려진 작품과 두 번째 작품은 색감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 그려진 작품에서는 여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별을 찾지 못했습니다.

Hope 1891 onc 111.8x142.2
Hope 1891 onc 111.8x142.2ⓒTate National Gallery

이 작품은 앞서 작품과는 달리 여인 주위에 무지개가 떠 있습니다. 배경 속 별은 더욱 선명해졌지요. 무지개는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니까 지구 위에 앉은 여인과 어울려 ‘희망’을 말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림은 때로 책이나 음악보다 더 큰 위안이 될 때가 있는데, 눈과 머리로 동시에 상상을 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상황을 그림 속 이야기에 투영하기 때문입니다.

Hope c1877~ 1886 onc 66x55.3
Hope c1877~ 1886 onc 66x55.3ⓒWalker Art Gallery

이 작품은 본 작품을 그리기 전에 작은 크기로 그려 본 것입니다. 기록에는 영국 로열 아카데미 회장을 역임한 프레데릭 레이턴에게 보내기 위해 제작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희망’에 대한 그의 최초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와트의 ‘희망’은 칼라로 인쇄되어 널리 퍼졌고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그의 집에 인쇄 본을 걸었고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은 이 작품을 주제로 1959년에 ‘깨진 꿈들’이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1990년 시카고에서 목사인 제레미아 라이트 역시 이 작품을 주제로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 중 한 명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버락 오바마입니다. 오바마가 선거 운동의 키워드로 ‘희망’을 걸었는데, 혹시 이 작품의 영향은 아니었을까요? 그나저나 우리의 ‘희망’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시면 어떨까요?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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