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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주의 언론과 진실 사이] 우리 언론의 취재원 활용법

기자에게 취재원의 제보는 양날의 검이다. 그 정보로 기자 경력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도 있지만 언론이라는 스피커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무리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환경에서 자칫하면 경력에 큰 흠집이 나거나 심지어 경력이 끝장 날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허위 정보가 사회 전체에 끼치는 해악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기자는 취재원을 추종하기보다는 일단 경계하고 의심해야 하며 정보를 검증하고 또 검증해서 어느 정도의 확신이 설 때 비로소 보도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출입한지가 얼마나 됐는데 여태껏 단독 하나 없냐’는 편집국 간부들의 채근에 기자 개인의 경쟁심과 공명심, 때때로 정치적 목적이 더해지면 독이 든 성배를 마다하지 않게 된다.

지난해 8월 이후에 쏟아졌던 조국 전 장관과 그 가족에 대한 보도는 그 극단적인 사례다. 당시 보도 경쟁은 유례없이 치열했고 언론의 태도는 공직자 검증으로만 보기에는 지나치게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더군다나 기사의 근간이 되는 정보는 대부분 검찰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실 기자에게 검찰만큼 믿을만한 취재원도 없다. 법 집행기관이 허위 정보를 흘릴 것이라고 의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뉴스가치의 측면에서도 그 정보는 기사감으로 손색이 없다. 그래서 무조건 받아쓴다. 굶주린 하이에나 무리는 눈앞의 싱싱한 먹잇감에 독약이 묻어 있는 지 알 수 없고, 알아차린다 해도 일단 물어뜯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어쨌거나 검찰 출입기자가 검찰이라는 취재원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신뢰하는 바탕에는 이런 사정 혹은 구조적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데, 그 덕분에 기자는 할당된 기사 건수를 채우고 회사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정보를 쥐고 흔드는 취재원의 의도에 놀아난 꼭두각시, 여론 조작의 불쏘시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2020.07.03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검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2020.07.03ⓒ김철수 기자

서론이 장황했는데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사실 검찰이라는 슈퍼 갑 취재원과 언론의 관계는 지극히 이례적이어서 일반화 될 수 없다. 통상적으로 취재원과 언론의 관계는 대등하거나 언론이 우위에 서는 경우가 더 많고, 그래서 취재원은 오보의 핑계거리가 되거나 심지어 허위 왜곡 보도의 알리바이로 활용되기도 한다. 가장 극악한 경우로 최근의 두 사례를 들 수 있는데 이 또한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다. 첫 번째는 지난 7월 조국 전 장관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은 유튜버 우종창 씨의 사례다. 유튜브 방송을 언론 활동으로 볼 수 있는가는 논쟁적인 사안이지만 일단 우 씨가 조선일보와 주간조선, 월간조선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일했기 때문에 보도의 한 유형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유죄 판결을 받은 2018년 3월의 보도 내용은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장관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씨에 대한 1심 선고 직전에 국정농단 재판의 주심인 부장판사를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우 씨는 제보를 받아 보도했다고 주장했는데 재판과정에서 ‘70대 점잖고 교양 있는 어르신’이라고만 할 뿐 취재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못했다. 물론 그가 취재원을 보호하기 위해 처벌을 자청했다고 볼 수 있지만 허위 제보로 곤경에 빠진 기자가 그 제보자를 대신해 희생할 이유가 없고 그런 전례를 찾아보기도 힘들다는 점에서 취재원의 존재 여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최초 보도부터 재판 과정까지 익명 취재원은 허위 보도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조국 전 장관의 딸인 조민 씨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다. 조선일보는 조 씨가 지난 달 26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담당 교수를 찾아가 인턴 지원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는데 곧바로 기사를 삭제하고 그 다음날 부정확한 기사였다고 사과했다. 그런데 이 기사의 근거 또한 제보였다. 세브란스병원 고위 관계자가 식사자리에서 조 씨의 일방적 방문으로 피부과 교수들이 당혹해 한다고 말했는데 함께 식사를 했던 사람 중 누군가가 기자에게 제보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조민 씨나 세브란스 피부과 교수들은 물론 발언 당사자에게도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물론 당사자들과 최초 발언자 모두 부인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떤 경우라도 기사화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그들은 보도 이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기사 내용을 모두 부정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떠도는 말을 두 번 거쳐 전해들은 사람의 제보에 의존해 기사를 써냈다. 당혹해 했다는 피부과 교수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고, 그 말을 옮긴 병원 고위 관계자와 그와 함께 식사하면서 그 말을 또 전해 들었다는 사람들은 여전히 익명의 제보자로 남아있다. 조선일보의 잘못은 취재원의 제보를 믿고 충분히 검증하지 못한 것뿐이다. 조민 씨의 병원 방문 여부는 의혹으로 남겨뒀다. 이 또한 우종창 씨의 허위 보도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실형 선고받은 우종창, 취재원 존재 여부도 의혹
조국 딸, 세브란스 병원 확인도 없이 떠도는 말 보도한 조선일보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않는 보도도 문제 심각


언론이 취재원의 정보가 아니라 의견을 뉴스로 제작하는 관행도 문제다. 앞서 검찰처럼 특별한 지위의 취재원에게 언론이 이용당하거나 언론이 허위 보도를 정당화하기 위해 취재원의 뒤에 숨는 경우가 예외적인 사례이라면 이 방식은 일반적이고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뉴스는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뉴스 가치를 지닌 사건은 희소한 반면 언론이 채워야 할 지면과 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언론은 주어진 시간에 필요한 만큼의 뉴스를 반드시 취재, 제작해야 하는데 뉴스거리가 되는 ‘진짜’ 사건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짜’ 사건, 이른바 유사 사건(pseudo-event)을 만들어 내 수요를 충당하는데, 유사 사건의 대표적인 예로는 기자회견이나 인터뷰를 들 수 있다. 유사 사건을 개념화한 미국의 역사학자 대니얼 부어스틴(D. Boorstin) 범람하는 유사 사건들이 거대한 허상(image)을 만들어 내고 실제 세상은 그 허상 속에 파묻히는 현상을 비판했는데 그의 저서 <이미지와 환상>(The Image:A Guide to Pseudo Events in America)의 제1장 소제목 또한 ‘뉴스 모으기가 뉴스 만들기로’다. 이 저서가 발간된 때가 1962년, 지금처럼 신문이 두툼하지도 않고 24시간 뉴스채널도 없었으며 인터넷 언론이 넘쳐나지도 않았던 시절이었다. 60여년이 흘렀지만 언론의 취재와 보도 경쟁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진 현재에 유사 사건 개념은 오히려 더 유의미해졌다. 정보가 진짜 사건, 진짜 뉴스라면 의견은 유사 사건, 유사 뉴스의 일종이다. 언론은 정보를 취재해 보도하기보다는 전화 통화나 메일을 통해, 더 쉽게는 SNS 게시글을 보고 의견을 수집해 뉴스로 가공하고, 그 과정에서 언론이 원하는 방향으로 허상을 만들어 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공개한 문제의 조선일보 기사. 당사자나 해당 병원에 확인도 없이 ‘조 전 장관 딸이 세브란스 병원 피부과에 일방적으로 찾아가 인턴을 하고 싶다고 했다’는 보도를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공개한 문제의 조선일보 기사. 당사자나 해당 병원에 확인도 없이 ‘조 전 장관 딸이 세브란스 병원 피부과에 일방적으로 찾아가 인턴을 하고 싶다고 했다’는 보도를 했다.ⓒ조국 전 장관 페이스북 일부

여기에 취재원의 익명성이 더해지면 상황은 더더욱 악화된다. 익명 처리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도 있기에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지만 사실 보도, 객관 보도로 정평이 난 미국의 뉴스통신사 AP(Associated Press)의 관련 원칙을 보면 우리 언론의 문제점이 곧바로 드러난다. 첫 번째 원칙은 정보를 제공하는 취재원에 한해 익명 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의견 제공자를 취재원이라 부르기도 민망하지만, 일단 AP는 익명으로 의견을 보도하지 않는다. 우리 언론은 상시적으로, 거리낌 없이 익명 취재원의 의견을 제시한다.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내부 고발자도 아닌 취재원이 의견 표명을 위해 왜 익명성이 필요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따지고 보면 실명 의견도 그 취재원이 실제로는 기자나 언론의 페르소나(persona), 즉 자신의 의견을 숨기기 위해 쓰고 있는 가면인 경우가 허다한데, 익명 취재원의 의견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익명 의견이 제시되는 방식은 더욱 낯 뜨겁다. ‘일각’, ‘정치권’, ‘법조계’, ‘학계’, ‘외교가’, ‘관련 업계’ 등등 집단화된 익명 주체를 써서 취재원을 특정할 수 없도록 하는 건 다반사고 ‘~~ 분석이 지배적이다’, ‘~~ 비판도 나온다’, ‘~~ 전망이 지배적이다’ 등등 피동형 문장을 통해 취재원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주체가 불분명한 익명성은 그냥 기자나 언론의 의견이 고스란히 투사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보도가 아니라 사설이나 칼럼에 가까운 것이다.

확인 가능한 취재원, 즉 공식 취재원이나 실명 취재원의 활용은 사실 보도와 객관 보도의 최저 기준 중 하나다. 사실과 의견의 분리 또한 기본 요건이다. 이는 치열한 시장 경쟁과 수익성 악화, 그로 인한 경영 위기를 이유로 포기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물론 현대 언론에게 사실 보도와 객관 보도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인, 현실에 대한 해석과 적극적 개입, 정파성, 이념적 지향은 ‘어느 이슈를 중요하게 다룰 것인가’, ‘취재원으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을 것인가’, ‘사설과 칼럼의 논조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등으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 사실 보도와 객관 보도와 상충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본을 뒤흔들고 싶으면 언론이기를 포기하면 된다.

송현주 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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