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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끝내야 할 것들에 고하는 경고,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연극 ‘엔드게임’
연극 ‘엔드게임’
연극 ‘엔드게임’ⓒ기타

연극은 시작부터 끝을 향한다. 뭐 이런 연극이 다 있을까. 이제 끝내야 할 때가 됐다는 식의 대사를 도대체 몇 번을 듣는 걸까. 또 시작하자마자 뭘 끝내겠다는 걸까. 끝내는 것으로 치자면 우리도 끝내고 싶다. 이 지겨운 일상의 연속을.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왜 떠나지 않는 거지?”
“왜 절 잡고 있는 거죠?”
“왜 아직도 여기 있는거지?”
“여기밖에 없으니까요."”

우스꽝스러운 질문과 답변 같다가도 다시 곱씹으면 현문우답 같기도 하다. 공연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을 보니 말이다.

한마디로 최근 본 공연 가운데 가장 연극성이 강한 작품이다. 연극성이 강하다는 것이 낯설거나 지나치게 심오함, 혹은 형이상학스럽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어깨에 힘을 빼고 약간 무심하게 극을 바라보면 순간 순간 웃음이 나오고, 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된다. 원래 이치에 맞지 않은 상황과 대사가 주를 이루는 것이 부조리극의 특징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연극보다 현실이 더 부조리하다. 우리가 마주하는 연극 속의 상황보다 얼굴을 3분의 2쯤 마스크로 가린 채 눈만 번뜩번뜩한 객석의 모습이 무대에서 볼 때 더 우스꽝스럽고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무대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현재도 미래도 아닌 ‘언젠가’에 있다. 그들이 안에 있으니 밖도 존재하는 것 같은데 그들은 밖을 나가지 못한다. 밖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잿빛 속에 가려 있다. 아무도 밖을 나갈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존재도 없다. 의자에 의지한 채, 어찌 보면 의자를 떠날 수 없는 주인공 햄은 하반신마비로 걸을 수 없다. 눈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옆에는 수족같은 하인 클로브가 있다. 그는 절뚝거리지만 걸을 수 있고 신통치는 않지만 볼 수 있다. 그리고 커다란 휴지통에는 햄의 부모 나그와 넬이 있다. 이들 역시 쓰레기통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설정은 여러가지 상황이 전개되면서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햄은 클로브에게 이해할 수 없는 지시를 계속한다. 방 벽을 따라 산책을 시켜달라고 하지를 않나 개를 만들도록 지시하기도 한다. 황당스런 이야기를 지어내고 듣기를 강요하고 감탄을 하도록 주문하기도 한다. 클로브는 왜 자신이 그 말을 거역하지 않는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수행을 한다. 노부부는 있지도 않은 사탕을 아들에게 구걸하며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이야기는 클로브가 이 공간을 탈출하려는 순간 다시 처음의 상황으로 돌아온다. 처음부터 끝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결국 끝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셈이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이 상황이 낯설지 않은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코로나 19로 한 해를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는 지금이 그렇다. 유폐된 삶처럼 밖이 있으나 나갈 수 없는, 떠나고 싶으나 떠날 수 없는 지금이 그렇다. 제자리를 맴돌고 있은 개인의 삶이 그렇고, 반드시 변화 발전할 것이라 믿었던 세상이 어느 순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보는 순간도 그렇다. 이 말도 안 되는 난감하고 난해한 이야기가 현실보다 덜 난해하다 느끼게 되는 순간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연극 ‘엔드게임’은 극단 79와 연출가 기국서의 연출로 천신만고 끝에 재공연됐다. 배우 기주봉, 정재진, 임지수, 박윤석의 열정과 열연으로 무대를 채웠다. 물론 연극은 끝이 났다. 정작 끝내야 할 것들은 끝을 모르고 치닫고 있어서 끝난 연극만 아쉽고 서운할 뿐이다.

이숙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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