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준의 경제비평] 재정 승수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적극적인 확장 재정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해 나가야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달에 재정 승수 추정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최근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승수 값이 너무 작으니 정부의 재정 확대 기조를 수정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재정 승수란, 정부 지출(정부가 민간으로부터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민간에 소득을 지급하면서 이루어지는 지출)이 1원 늘어날 때 이로 인해 국내총생산(GDP)이 몇 원 늘어나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추정한 것처럼 정부 투자의 재정 승수가 3년 누적 1.04라면 이는 정부가 실물 투자를 1조원 늘리면 이로 인해 3년 동안 국내총생산이 총 1조 4백억 원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승수 값이 클수록 정부 지출의 경제성장에 대한 효과가 크게 된다.

특히 한국은행은 가계에 대한 복지지출이 포함된 이전지출은 재정 승수 값이 3년 누적 0.44인 것으로 추정했다. 누군가는 이를, 1조원을 복지에 쓰면 3년간 국내총생산이 4천 4백억 원밖에 늘어나지 않아 5천 6백억 원만큼은 사실상 낭비를 하는 셈이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정부의 4차 추경과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논의를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경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제공)ⓒ제공 = 뉴시스

재정 승수는 불황기에 커진다

그런데 한국은행의 이와 같은 재정 승수 추정 값을 오늘 한국경제의 조건에서 재정정책의 경제효과를 예측하기 위한 근거로 삼아도 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미국 버클리대학 앨런 아우어바흐(Alan Auerbach) 등의 2012년 연구 이후 재정 승수 값이 경기 국면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에 대해 거시경제학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상당한 동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우어바흐 등은 호황기에 비해 불황기에는 재정 승수가 약 3배 커진다고 보고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 스티븐 파자리(Steven Fazzari) 등의 2015년 연구에서는 그 차이가 4배에 달하는 것으로 관측되었다. 영국 런던 킹스컬리지의 엥겔베르트 슈톡해머(Engelbert Stockhammer) 역시 2014년 연구에서 3배에 달하는 차이를 확인했다. 재정 승수가 불황기에 커진다는 사실은 다른 많은 연구에서도 지지되었다. 우리는 이로부터 경기 국면에 따른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평균적인 재정 승수 값만 봐서는 불황기 확장 재정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를 실제보다 작게 예측하게 될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불황 중에서도 재정지출이 늘어나는 불황기에,
그리고 저금리 조건에서 채무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을수록
재정 승수는 더 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2014년에 발표된 세계은행의 한 연구에서는 불황기만 고려해서 재정 승수를 추정하더라도 재정정책의 효과를 과소평가하기 쉽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과거 데이터를 보면, 정부 지출이 줄어든 불황기에 비해 정부 지출이 늘어난 불황기에 재정 승수가 훨씬 크게 계산된다는 사실이었다. 세계은행의 또 다른 연구자들은 작년에 발표한 연구에서 국가 채무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 재정 상황이 양호한 나라일수록 재정 승수 값이 클 뿐만 아니라 불황기에 재정 승수가 더 큰 폭으로 확대되는 점을 밝혀내기도 했다. 한편 중앙은행 기준금리가 0% 근방의 하한선에서 고정되면 재정 승수가 커진다는 연구 결과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요컨대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확장 재정정책의 효과는 저금리의 경제침체 상황에서 큰 편이고 특히 한국과 같이 상대적으로 재정 여건이 양호한 나라에서는 더욱 큰 것이다.

2.5단계 거리두기가 시작된 31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이 점심시간임에도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0.08.31.ⓒ뉴시스

현 시점의 정책 환경을 반영하지 않은 재정 승수 평균값을
정책 효과 예측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한국은행의 재정 승수 추정에서는 경기 국면에 따라 승수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는 점이 고려되지 않았다. 저자들은 그 사실을 보고서에 이미 명확히 밝혀두었다. 구체적으로 한국은행 추정에서 분석된 데이터는, 통계청 공식 기준순환일로 보면 1998년 8월에 시작된 7순환의 경기상승 국면, 8~11순환 전체, 12순환의 경기하강 국면을 포함한다. 말 그대로 호황기와 불황기가 모두 고려된 평균값을 계산한 셈이다. 지출 확대 여부, 금리 여건, 재정 상황의 재정 승수에 대한 영향도 고려되지 않았다.

오늘 한국경제는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다. 정부가 지출을 확대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실효하한 근처까지 떨어진 가운데 저금리가 이어지고 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국가 채무 비율이 낮아 재정 건전성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네 가지 조건 모두 현 시점의 한국경제에서 정부 지출의 경제효과를 크게 하는 요인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계산된 재정 승수 평균값에는 오늘 한국경제의 특수한 정책 환경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것을 현 시점에서 정책 효과 예측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 재정 승수를 근거로 재정정책의 효과가 미약할 것으로 예단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인 확장 재정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해 나가야 한다

혹자는 국가 채무 비율이 오르면 우리 경제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외국인자금 이탈로 시장 불안이 초래될 것이라고 한다. 원화가 기축통화가 아니므로 재정을 재량적으로 운영할 일이 아니라고 한다. 공공부문이 확대되면 민간의 경제활동이 위축되어 경제가 활력을 잃을 것이라고도 한다. 어디까지나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운영을 주저앉히려는 논리이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는 심지어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작은 정부 지향과 재정의 긴축적 운영이 저성장과 불평등을 심화시켰음을 인정하며 적극적인 재정 운영을 주문하고 있다. 이전지출의 경우 승수의 크기가 작아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을지 몰라도,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현실에서 시민을 재난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국경제는 그간에 금융 부문과 외환시장의 안정성이 개선되어 왔다. 국고채의 외국인 투자 비율도 15% 정도로 높지 않다. 국채의 신용위험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평가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들과 보조를 맞추되 너무 앞서 나가지 않으면 될 일이다.

우리에게는 과감한 재정투입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당면한 경제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실제로는 어떤 이론적 근거도 없는 특정 수치의 국가 채무 비율을 불변의 기준처럼 여기면서 국가적 과제와 시민사회의 요구를 회피하고 소극성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더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낡은 이론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경제위기의 극복도 어렵다. 재정은 경제위기의 충격을 흡수하는 조정 변수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은 적극적인 확장 재정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해 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이 위기가 진정되기 전에는 국가 채무 비율에 섣불리 어떤 한도부터 정하려고 들 일이 아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열린 미래로 밀려가고 있다. 앞으로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 이번 경제위기의 실제 전개 양상에 따라 재정의 규모와 국가 채무 비율의 정상 수준 자체가 사후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하는 것은 민중의 삶, 민중의 경제적 존엄이다. 채무 비율 숫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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