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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이란 ‘괴물’,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책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책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오월의봄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이 땅에 출연한 지 올해로 72년째다. 1948년 12월 1일 태어난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법이었지만, 70여 년이 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법보다 강력한 위력을 발휘하며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이 괴물은 사상의 자유라는 가장 기본적 인권을 침해하고, 통일을 일구기 위해 일해온 많은 이들에게 ‘종북’과 ‘간첩’의 낙인을 찍어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법’이지만 국가보안법이 가진 힘은 그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다. 괴물에 맞서는 것이 두려워 말도 안 되는 현실을 숙명처럼 여기게 만든다. 괴물에겐 항의하지 못한 채 괴물에게 상처 입은 이들에게 “혹시 빌미를 준 것이 아니냐”고 공격하게 한다. 괴물의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자나 깨나 자기를 검열해야 한다. 괴물은 이제 우리의 익숙한 자기검열 아래 폐지하자는 목소리마저 잦아든 채 군림하고 있다.

그렇다. 이렇게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만히 두고만 볼 것인가?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지난 2004년 “국가보안법을 역사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며 폐지를 시도했다. 하지만, 보수 극우 세력은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 투쟁을 벌였고, 박물관으로 보내려던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멈출 순 없다. 이제는 정말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하는 고민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고민이면서 동시에 국가보안법이란 괴물이 우리를 어떻게 지배했는지 기억하고, 기록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런 기억과 기록 가운데서도 남성 서사에 밀려 항상 주변부로 취급됐던 여성들의 투쟁과 서사는 특히 중요하다. 지금 당장 찾아내고, 기록하지 않으면 국가보안법이 박물관으로 향한 뒤에도 여성들의 이야기는 그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획된 전시가 바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이다.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전시는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던 민주인권기념관에서 오는 9월 26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와 함께 동명의 책도 출간됐다. 이 책의 글쓴이들(홍세미, 이호연, 유해정, 박희정, 강곤)과 사진가(정택용)는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현장에서 기록 활동을 펼쳤던 이들이다. 용산참사, 밀양송전탑, 형제복지원, 세월호참사, 비정규직 투쟁, 고공농성 등 한국 사회의 모순이 폭발할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이 이번에는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프로젝트와 만났다.

지난 16일 기자회견 직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
지난 16일 기자회견 직후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전시회 추진위원들ⓒ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추진위

이 책에 담긴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1970년대 대학생이었던 이들부터 이제 막 40대에 이른 이들까지 다양하다. 1980년대 5공화국 시절부터 최근 10년도 안 된 사건의 피해 당사자이거나 관계자들이다. 국가보안법 투쟁의 산증인이자 언제나 최전선에 섰던 민가협 어머니들부터 탈북민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망라한다. 국가보안법과 맞닥뜨렸을 때 이들은 보통의 어머니였고, 아내였고, 기자였고, 운동권 대학생이었고, 시의원이었고, 북한이탈주민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다. 또한 이들은 국가보안법과 마주하면서 큰 고통을 겪긴 했지만. 피해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거듭나기도 했다.

왜 국가보안법 역사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한국 민주화운동 역사에서 여성들의 공헌은 대단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성들 중심으로 소개되어왔다. 국가보안법의 피해와 저항의 역사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남편이나 아들이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어도 그 뒤에서 ‘옥바라지’를 하고, 구속자 석방 운동을 한 여성들의 존재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 같은 국가보안법 피해 당사자이지만 여성보다 남성이 더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건 사실이다. 곧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피해와 저항의 경험들, 그 질곡들은 질문되지 않았다. 어쩌면 여성들이야말로 말의 세계에서 배제되고 감금된 이들이지 않을까? 이제 늘 조연의 자리에서 질문받던 여성들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주연과 조연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인지를 묻고, 그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놓게 된 것이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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