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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세상 등진 산재 노동자 비율, 경제활동인구보다 2배 높다

산재 노동자의 자살 사망률이 경제활동인구보다 2배 이상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산재 신청도 못 하는 저임금 취약계층 노동자의 현실을 고려하면, 자살 사망률은 훌쩍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산재보험 제도의 미비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비판했다. 산재를 당했다는 사실 자체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취약성을 증명하는데, 사고 뒤 치료비와 복직 어려움 등으로 빈곤의 악순환에 빠진 노동자를 산재보험이 구제하지 못해 극단적 선택까지 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작은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2020.04.27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작은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2020.04.27ⓒ김철수 기자

지난 8월 직업환경의학 국제학술지 OEM에 이혜은·김인아·김명희·가와치 이치로 교수가 저술한 ‘한국 산업재해 뒤 증가한 자살 위험’ 보고서가 실렸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3~2014년 사이 산재보상보험 요양급여(치료비 등)를 받은 15~79세 노동자 약 77만 명 중 2천796명이 2003~2015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중 남성은 2천626명, 여성은 170명으로, 연령구조의 영향을 제거한 연령표준화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남성이 65.1명, 여성이 17.1명이다.

산재 노동자의 자살 사망률은 표준집단인 경제활동인구에 비해 2.21배 높게 나타났다. 고용형태, 장해 정도, 손상 부위와 상관없이 대부분 전체 경제활동인구보다 자살 사망률이 높았다.

지난 8월 직업환경의학 국제학술지 OEM에 이혜은·김인아·김명희·가와치 이치로 교수가 저술한 ‘한국 산업재해 뒤 증가한 자살 위험’ 보고서의 결과를 그린 표.
지난 8월 직업환경의학 국제학술지 OEM에 이혜은·김인아·김명희·가와치 이치로 교수가 저술한 ‘한국 산업재해 뒤 증가한 자살 위험’ 보고서의 결과를 그린 표.ⓒ‘한국 산업재해 뒤 증가한 자살 위험’ 보고서

높은 자살률의 원인 중 하나로 ‘경제적 어려움’이 꼽혔다. 보고서는 “산재 노동자의 소득은 사고 이후 5년 동안 평균 14% 감소했다. 또 산재 노동자 절반만이 12개월 이내에 복직했고, 20%는 사고 후 3년간 일자리를 잃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욱이 사고 당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은 더 많은 소득 손실을 경험했다. 예를 들어 임시직의 소득은 사고 후 5년 동안 27% 감소했지만, 정규직은 7% 감소했다”라고 짚었다. 이번 연구에서 임시직의 자살 사망률이 상용직보다 높게 나타났다. 소득 손실 외에도 실직, 직장 복귀의 어려움이 임시직에서 더 크다는 이전 연구들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경제적 어려움은 역설적인 수치로 나타나기도 했다. 남성 산재 노동자의 경우, 장해가 발생하지 않은 노동자가 중증 장해를 얻은 노동자보다 자살 사망률이 더 높았다. 더 크게 다쳐야 자살 위험성이 줄어드는 현실이다.

원인은 소득 손실 정도로 지목됐다. 장해 심각 등급인 1~3급 노동자는 연금을 통해 재해 전 급여 7~90%를 보상받지만, 장해가 없는 노동자는 일할 수 없거나 사고 전보다 적은 수입으로 경제적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작은 공간이 마련됐다.   2020.04.27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작은 공간이 마련됐다. 2020.04.27ⓒ김철수 기자

“산재 노동자, 산재 이전부터 취약층”
산재 신청 못 한 노동자까지 더하면…

산재 노동자가 빈곤으로 추락하는 과정은 지난 2월 노동건강연대에서 발표한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 및 형평성 강화를 위한 연구’에서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연구진들은 업무 관련 산재를 경험한 노동자 20명과 초점집단 인터뷰를 통해 산재 피해 노동자들의 관점에서 산재보험 제도의 문제를 파악했다.

피해 노동자들은 산재가 승인된 이후에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입을 모았다. 산재 이후 노동자가 직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복직 혹은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일이었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산재가 발생하기 전에도 미숙련·저임금 노동자였던 이들의 원래 일터에는 이미 본인의 자리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산재 청구 과정에서 회사와 마찰 때문에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라며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 해도, 충분한 요양 기간 치료와 재활을 하지 못해서 노동능력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거나, 남아있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때문에 노동시장 재진입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라고 짚었다.

이어 “이들은 적합한 일자리를 구하고자 했지만 산재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 취업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산재보험의 직업재활 및 취업 프로그램 탓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피해 노동자들은 공통으로 사고 이전에 비해 낮아진 본인의 역량으로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해했다며 근로복지공단의 구직 훈련·서비스 향상을 요구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건강보험 비급여 부분은 산재보험도 지원하지 않는 탓에 치료비 역시 피해 노동자의 재정적 부담으로 돌아오는 실정이다. 산재 노동자의 본인부담률은 32.46%에 달한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한 인터뷰 응답자는 “공상 처리를 했을 때 병원비 일체를 회사에서 부담했는데, 산재 청구를 했더니 비급여 부분을 본인이 부담해서 단기적으로 산재보험 적용이 더 손해가 되는 상황을 경험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산재 승인의 지연은 노동자의 경제적 부담을 심화한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의 처리 기간은 2018년 평균 166.8일이 걸렸다. 이 기간까지 노동자 본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의료비 부담으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복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2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108배 및 천도재에서 참석자들이 108배를 하고 있다. 2020.5.28
2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108배 및 천도재에서 참석자들이 108배를 하고 있다. 2020.5.28ⓒ김철수 기자

산재를 겪은 노동자는 사고 전부터 이미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이라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보고서는 “산재는 무작위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의해 노동시장에서 열세에 놓인 이들에게로 전가된다”라고 지적했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동자가 산재로 인해 결국 가난의 굴레에 갇히게 된다는 취지다.

산재 승인을 받은 노동자의 자살 사망률은 2배지만, 산재 신청조차 하지 못한 피해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자살 사망률은 2배를 뛰어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산재보험의 가장 큰 문제는 은폐 혹은 부담 전가”라며 “은폐된 산재가 90% 가까이 된다고 보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정 사무국장은 “송파 세 모녀 사건의 경우 산재 처리만 받았어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차 사회 안전망에 걸러진 사람의 자살률이 2배 이상이라면, 자살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진주 묻지마 살인 사건 가해자의 경우 병증이 부각됐지만, 병증이 심화한 계기는 산재 불승인이었다. 두 사건처럼 산재가 아닌 빈곤, 가정불화, 우울증 등 개인적 소견이나 가족의 이유로 자살로 치부되는 죽음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산재보험의 핵심은 형평성이다. 더 열악한 노동자가 더 제도를 쉽게 이용하고, 더 오래 치료받고, 더 많은 급여를 보전받고, 다시 일자리까지 돌아갈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에서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이미 안정적인 노동자가 더 지원을 받고 있다”라며 “산재보험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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