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페토’라는 시인의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를 아시는지? 철강회사에서 일하던 20대 청년 노동자가, 용광로 근처에서 일하다 쇳물에 빠져 숨진 사고를 보고 쓴 시다. 시인은 그 쇳물로 자동차도 철근도 못도 만들지 말고, 떠나간 청년의 얼굴을 만들어 정문 앞에 세워두고 ‘가끔 엄마 찾아와/내새끼 얼굴 한번 만져 보’게 하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이 사고는 2010년 9월 7일 새벽, 충남 당진의 환영철강이라는 회사에서 발생했다. 올해 10주기가 되었다. ‘프로젝트퀘스천’이라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시인과 함께 이 시에 곡을 붙이는 프로젝트(‘그 쇳물 쓰지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를 진행하는 덕에 올해가 10주기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매일 3명이 일하다 ‘사고’로 죽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린 죽음도 잊히기 쉽다. 일하다 사망하더라도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경우, 산재 통계에 포함되지도 못한다. 자영업자, 무급가족종사자, 농어업 영세사업장의 노동자, 그리고 다양한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의 산재 보험에서 배제되고 있고, 이들이 일하다 다치거나 사망하는 것은 숫자로도 남지 못한다.
2년 전 그런 아픈 죽음이 있었다. 2018년 9월 6일, 김천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무대 작업 중 공연단체 조연출 故 박송희 님이 무대 바닥면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리프트 공간의 7m 아래로 추락하여 사망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동 주최,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가 주관하여, 전국의 문예회관에서 우수공연 프로그램을 상연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 사업의 일환으로 준비되던 공연이었다.
안전 펜스가 쳐져 있었거나 리프트 하강 시 작동되었어야 할 경광등만 작동되었더라면, 리프트 하강 작업과 도색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지만 않았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고였다. 그러나 김천시 문화예술회관 무대감독자 외에 공연 기획, 공연장 운영과 관련된 어떤 기관이나 기관장도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물론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연의 직접적 주체는 호남오페라단이었고, 故 박송희 님은 이 공연단체에 합류하여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호남오페라단과 정식 계약도 맺지 않은 상황이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일’을 하다가 가장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근로자’가 아니었던 그의 죽음은 공식적인 ‘산재’로 집계되지 않았다. 일하다 사망했지만, 산업재해로 셈해지지도 않는 모순이 이 경우에도 발생했다.
이런 상황은 공연예술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해 1,000 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고로 죽고,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는 ‘노동자’가 아닌 사람을 모두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일하다’ 사고로 죽는다. 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문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김천시와 김천시문화예술회관, 호남오페라단으로까지 이어진 긴 외주화 관계 어디에서도, 실제 일하는 사람에게 안전에 관한 충분한 정보와 교육은 제공되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제조업이나 건설업의 문제로 취급한 산업안전보건법과 공연장 안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는 공연법의 사각지대에 공연예술노동자들이 놓여 있었다. 복잡한 계약 관계와 불안정한 고용 형태 속에서 이들의 낮은 협상력은, 자신들의 안전과 관련한 불리한 계약을 받아들이게 한다. 사고 발생 2년이 지난 올해도, 한 지자체에서 공연을 준비하는 노동자들에게 ‘여행자보험’을 제공해 해당 작업 중 부상을 당하고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다는 제보가 있었다.
9월 10일은 사고 후 4일만에 사망한 故박송희 님 2주기이다. 2주기를 맞아, 9월 9일에 ‘공공극장 무대의 안전과 위험의 외주화’를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를 연다. 故박송희 님 사고를 보면서 무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에 대해 고민하게 된 연극인들이 주축이 돼 준비했다.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 문제 중 무엇이 가장 시급한지, 이들의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어떻게 보장해나갈지, 어떤 제도가 문화예술계에서 효과적일지, 특히 이를 문화예술인들이 어떻게 ‘함께’ 일구어나갈지 구체적인 방안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