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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기억과 공간] 9.11 테러와 9.2 의거

오늘은 9.11테러 19주기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납치된 여객기 두 대가 미국 뉴욕의 110층 쌍둥이 건물 세계무역센터에 차례대로 충돌했습니다. 이 테러 공격으로 3000여 명에 가까운 인명피해가 발생했고, 두 건물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습니다.

이후 10여 년이 지나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 테러 발생 지점)에는 차례대로 9.11 테러 희생자 기념비와 박물관(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 Museum)이 세워졌습니다. 개관하던 날 전 세계가 사라진 존재의 부재를 추모했습니다. 죽음의 고통이 기념비로 되살아 난 이곳은, 이제 비통의 대지 위에 평화와 희망이 세워진 공간이 되어 전 세계인이 찾고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단순히 과거를 되새기며 반성하고, 희생자를 기억‧추모하는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닙니다. 생명의 소중함은 기본이고, 인류애, 인종과 다문화에 대한 이해 등 모든 삶이 갖는 숭고함의 교훈도 잘 보여줍니다. 또 시각적 추상 언어로 테러의 추악함을 표현해 시민들의 미학적 감성까지 충족시켜 주고 있습니다.

9.11테러 기념비와 박물관
9.11테러 기념비와 박물관ⓒ사진 = Cadiomals

미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기억과 추모를 해나가고 있을까요.

지난주 9월 2일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의 의거 101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왈우 강우규 의사는 1919년 9월 2일 서울역(당시 남대문역)에서 3대 조선 총독으로 부임하는 사이토 마코토를 죽이기 위해 폭탄을 투척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고, 의거 16일 만에 일본 순사에게 잡혔습니다. 그는 일제 재판부로부터 사형을 언도받았고, 이듬해 11월 29일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습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고, 5년 후 동작 국립묘지(애국지사 묘역)에 안치되었습니다.

강우규 의사를 수배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주요 감시대상 인물카드
강우규 의사를 수배하기 위해 일제가 만든 주요 감시대상 인물카드ⓒ사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실 강우규 의사는 오랜 시간 잊혔다가 2011년 8월 8일 그의 동상이 서울역 앞에 세워지면서 대중에게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의거 당시 65세였던 강 의사는 당시 독립운동엔 젊음과 늙음이 따로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 남긴 사세시(辭世詩)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폐부를 찌릅니다.

“단두대상 유재춘풍(斷頭臺上 猶在春風)
유신무국 기무감상(有身無國 豈無感想)”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이 시는 서울역 광장에 서 있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 아래 새겨져 있습니다. 이 동상은 무심히 지나치는 많은 인파 사이에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서울로7017에서 내려다보면 그의 동상이 보입니다. 

서울역 광장에 세워진 왈우 강우규 의사의 동상
서울역 광장에 세워진 왈우 강우규 의사의 동상ⓒ사진 = 김명식

2017년 서울로7017이 만들어지고 개방될 때, 우리 사회는 퍽 떠들썩했습니다. 근대 및 산업화 시대의 흔적을 보존한다는 정책 방향 아래, 낡은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행로로 만들고 시민에게 개방해 도시 속 새로운 경험의 지평을 연다며 즐거워했습니다. 한편에선 초대형 설치미술작품 ‘슈즈트리’로 인한 논쟁으로 격앙됐습니다.

그로부터 6년 전 서울역 광장에 강우규 의사 동상을 세울 때와는 사뭇 대조적이었습니다. 아직도 강우규가 누군지, 왜 거기 서 있는지 아는 이가 드뭅니다. 당시 일제가 어떻게 강 의사를 탄압했는지는 인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정작 저항의 현장에 선 동상은 그와 함께 잊히는 중입니다. 너무 초라해 보여 안타까울 지경입니다. 심지어 ‘강우규 의사 의거 기념 표지석’은 이전되었는지 아니면 없앴는지, 원래 있던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습니다.

반면 일제의 흔적은 잘도 보존되고 있습니다. 옛 서울역 머릿돌에 새겨진 “정초”(주춧돌을 놓다)글씨는 강우규 의사가 죽이려 했던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쓴 것인데 여전히 그대로 입니다. 서울시 등록문화재 11호인 현 서울시의회 본관 건물에선 일제시대 경성부윤(현 서울시장 격)인 다테 시오의 글씨로 된 머릿돌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은행 머릿돌은 이토 히로부미의 글씨, 연세대 수경원 터의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에 새겨진 것은 미나미 지로 총독의 글씨, 서울 마포구 ‘선통물(善通物)’ 표시석은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의 글씨입니다.

옛 서울역 머릿돌에 새겨진 조선 총선 사이토 마코토의 글씨 '정초'
옛 서울역 머릿돌에 새겨진 조선 총선 사이토 마코토의 글씨 '정초'ⓒ사진 = 김명식

우리 사회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보존하고 있는지 고민할 대목이 많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서울역의 강우규 의사 동상보다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기념비를 더 많이 알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한국 사람들이 9월이 되면 9.11 테러 보다 먼저 강 의사의 9.2 의거를 기억할 수 있게 될까요? 9월이 ‘강우규의 달’로 기억되는 날도 올까요?

지난 2일 ‘왈우 강우규 의사 의거 제101주년 기념식’이 열렸습니다. 코로나19의 확산 방지를 위해 남대문청년회의소에서 간소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비상 시국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내년엔 뭔가 다른 형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참여형 기념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김명식 건축가·건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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