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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 ‘미세스 아메리카’ : 누가 우리를 공격하는가

‘미세스 아메리카’는 1970년대 ERA(Equal Rights Amendement, 성평등헌법수정)를 둘러싼 여성간의 격돌을 보여준다. 따라서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앨리스’는 그 등장인물 중 일인이다. 처음 드라마를 봤을 때는 앨리스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카메라 앵글은 그녀에게 벗어나 있다. 그녀가 화면을 채우고, 자신의 내러티브를 갖게 된 것은 후반부에 오면서이다. 이 드라마의 주요인물은 실존인물들이다. 앨리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지만, 실제 있었을 듯한 여성이다. 드라마는 그녀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앨리스의 스승, 필리스 슐래플리

ERA 지지 운동이든 반대 운동(STOP ERA)이든 이들 운동을 이끄는 인물들은 모두 고학력 엘리트 여성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책으로 집필하며 여론을 만드는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신념을 위해서 조직하고, 정치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앨리스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자신이 없는 소심한 여자다. 에피소드 1회에 등장하는 앨리스는 ERA 운동을 잘 알지 못하지만 막연하게 거부감을 갖는다. 그녀는 전업주부인 자신의 존재감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막연한 불안은 그녀만이 아니라, 주변의 주부들, 종교적 가치가 중요한 여성들에게 퍼지고 있었다.

이런 불안한 마음을 조직한 인물이 ‘필리스 슐래플리’이다. 필리스는 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두 번 출마하였다가, 낙선하여 재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 외교군사문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닉슨과 키신저의 유연대응전략에 반대한다. 그녀는 자신의 전문성을 워싱턴 정치계 거물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려한다. 그러나 워싱턴의 남자들은 여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며, 그들이 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시의 핫이슈인 ERA를 이야기할 때임을 깨닫는다.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의 필리스 슐래플리
드라마 ‘미세스 아메리카’의 필리스 슐래플리ⓒ왓챠

그리고 그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4천만 가정주부를 조직할 수 있었다면, 레이건이 지금 백악관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필리스 슐래플리는 공화당의 정치인들 중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가를 지지하고 있었다. 필리스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는 지름길은 ERA 이슈를 이용하여 가정주부들, 보수적 여성들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반공산주의 운동이 반페미니즘 운동으로 전환을 한 것이었다. 그 운동에 항상 필리스 옆에 있는 사람은 앨리스다. 앨리스는 필리스가 자신의 영원한 친구이며 스승이라고 믿고 있다. 앨리스는 필리스의 모든 말로 무장을 하고, 필리스의 지시에 따라, 필리스가 원하는 행동을 한다.

필리스가 만든 세계

필리스는 자신이 여성의 특권을 옹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의 특권이란 군 징집에서의 자유, 임신, 출산, 가정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총지휘하는 여성연대체, STOP ERA의 STOP도 Stop Taking Our Privileges의 약어이다. ERA로부터 여성의 특권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ERA 지지자들은 여성도 남성과 같이 징집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혼수당을 없애야 한다, 남녀 공용화장실을 사용하게 한다는 등의 주장을 한 적이 없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 유언비어라는 비판에 대해서 필리스는 페미니스트들이 현재는 주장하지 않지만 헌법수정안이 되면 서서히 그렇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혁명과 같이 혁명 초창기와 달리 모든 것을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그녀는 보수적인 종교집단과 각종 보수집단를 STOP ERA 운동으로 끌어들인다. 인종적 발언을 하여도 그들이 조직력이 있다면 손을 내밀었다. STOP ERA 운동은 권력투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토론보다는 힘을 과시하는 시위나 의원들에 대한 일대일 접근 등에 중점을 둔다. 시위의 숫자를 부풀려서 홍보했다.

또한 페미니스트들을 빨갱이, 급진주의자, 레즈비언이라고 선동한다. 그러면서 유명한 페미니스트들이 개인적 삶, 개인적 문제 때문에 ERA운동을 하고 있다고 왜곡한다. 글로리아 스테이넘이 40이 넘었는데도 미혼이며, 베티 프리단이 이혼녀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들이 자신의 결점 때문에 결혼을 감옥이라고 선전하고 가족 가치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황당무계한 주장을 서슴치 않고 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ERA의 문구가 가진 느순함 때문이었다. “법에 보장된 평등권은 성별을 이유로 연방, 주의 법에 의하여 부정되지 않으며 약화되지 않는다.” (Equality of rights under the law shall not be denied or abridged by the United States or by any State on account of sex.) 보통 수정안이 추상적 선언식 문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석이 분분할 수 있었다. 필리스는 성평등이란 이름으로 모든 여성의 특권, 권리를 뺏을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필리스 주장의 일부분은 제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말과 책들에서 왔다. 페미니스트 저서에서 맥락과 관계 없이 자신에게 유리한 문구만을 빼내어 자신의 주장 근거로 삼았다. 특히 베티 프리단의 저서, ‘여성의 신비’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을 전체적으로 왜곡할 수 있는 문구를 따왔다.

필리스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조직, 정치력을 통제할 수 있는 여성이었다. 또한 그녀가 특권이라고 말한 집안일을 하는 도우미가 집에 여러 명 있었고, 자녀양육을 도와주는 미혼의 시동생이 있었다. 당시 하원의원이며, 페미니스트인 벨라 아브저그는 필리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슐래플리는 아마도 미국에서 최고로 해방된 여성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가장한다.”

‘미세스 아메리카’에서 필리스 슐래플리의 친구로 등장하는 앨리스 매크레이
‘미세스 아메리카’에서 필리스 슐래플리의 친구로 등장하는 앨리스 매크레이ⓒ왓챠

누가 우리를 공격하는가

필리스가 짧은 시간 동안 전국여성조직을 지휘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그녀의 능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 주변에 그녀를 돕는 많은 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한명이 앨리스이다. 앨리스는 STOP ERA가 점점 백인우월주의 발언을 서슴치 않는 여성들, 단체와 함께 활동을 하며, 자신이 본래 생각했던 활동 이상을 하게 된 것을 깨닫지만, ERA를 막아내기 위한 전략이라는 필리스의 말를 무조건 믿는다. 앨리스는 필리스의 가르침대로, ‘직업여성 대 가정주부’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직업여성이 여성의 특권을 저버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적대감을 갖는다. 과하게는 페미니스트가 소련의 스파이라고까지 믿는다. 앨리스는 STOP ERA 활동에 깊이 빠져들면서 자신의 도덕적 선을 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필리스와 STOP ERA 활동은 그녀를 가정 밖으로 이끈다. 그녀가 의식하지 못했지만 단체에서 적극적인 활동가로 일하게 된 것이었다.

앨리스가 자신이 가진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미지가 진실이 아님을 깨닫는 계기는 1977년 휴스턴 전국여성대회였다. 이 대회는 정부 주관하에서 열리는 것으로 진보, 보수 진영의 모든 여성단체들이 참가했다. 앨리스는 휴스턴 대회 이전에는 자신이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으며, 그들의 선전 책자를 본 적이 없었다. 앨리스는 대회에서 직접 가까이서 페미니스트들을 목격하게 되면서, 자신이 수년간 가지고 있던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앨리스는 우연히 호텔 바에서 자신과 공통점이 많은 남부여성을 만난다. 그런데 종교적 신심이 가득하고, 모범적인 가정주부인 여성이 NOW(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페미니즘의 풀뿌리 조직) 회원이라는 사실에 놀란다, 필리스와 자신들이 ‘끔찍한 여성 자유주의자’라고 불렀던 여성 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부르던 노래, ‘This Land is Your Land’를 같이 소모임에서 부른다. 앨리스는 그 노래의 애국적인 가사 가사가 공산주의자에 의해 쓰여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앨리스는 공산주의자가 애국적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민주주의적이고 여성적인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보면서 앨리스는 혼란스러워한다.

필리스가 만들어놓은 테두리 안에 위치했던 앨리스는 필리스 밖의 세계를 직접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앨리스는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누구인가?”라고 묻는다. 자신들을 공격했던 적은 페미니스트들이 아니고, 자신들이 만든 괴물이었다. 오히려 우리의 적은 괴물을 만든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앨리스는 여성간 진정한 연대는 ERA를 저지하기 위해서 정체가 의심스러운 단체와 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립적 기반이 없는 자신의 동료, 파말라를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직장을 갖는 여성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서 벗어나 직장을 갖는다.

도나 그란스키(오른쪽)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국회의사당 상원 회의실에서 하원 EAR 통과를 환호하고 있다. 2020년 1월 27일 월요일 결의안은 27-12로 통과되었다.
도나 그란스키(오른쪽)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국회의사당 상원 회의실에서 하원 EAR 통과를 환호하고 있다. 2020년 1월 27일 월요일 결의안은 27-12로 통과되었다.ⓒ뉴시스/AP


오늘날에도 우리는 필리스를 만날 수 있다. 페미니즘 이슈만이 아니라 다양한 운동과 이슈에서 익숙하게 부딪히게 된다. 수많은 앨리스들의 눈을 멀게 하고, 그들의 처지를 왜곡된 프레임으로 가두는 선동, 거짓정보를 퍼트리는 인물들을 한국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비록 필리스 슐래플리에 의해서 ERA운동은 실패했지만, 혼란과 혼돈 속에서 앨리스가 열려진 마음과 눈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여정은 희망을 암시한다.

또한 이 드라마는 우리의 현재 페미니스트 운동과 성취가 백래쉬를 넘는 힘든 여정에서 만들어졌다는 점, 그리고 국내, 국외의 많은 여성들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한국에도 이런 종류의 드라마, 선구자들의 행로를 보여주는 것이 빨리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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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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