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경찰 ‘강압수사’ 제보자 재판 넘기라는 경찰, ‘보복수사’ 비판에도 귀 닫아
경찰마크
경찰마크ⓒ뉴시스

경찰의 ‘강압 수사’ 의혹을 제보한 변호사를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가운데, 공익제보자의 입을 막는 ‘보복 수사’라는 비판에도 경찰은 여전히 안일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14일 서울지방경찰청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지난 2일 고양 풍등 화재 사건 변호인인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에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것과 관련해 “보복 수사가 아니었다”라며 “영등포서에서 사실관계, 정당행위에 해당하는지 법리검토를 거쳐서 판단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경찰의 강압 수사 정황을 언론에 폭로했다. 그는 고양경찰서가 2018년 10~11월 고양 저유소 풍등 화재 사건 피의자로 지목된 외국인 노동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반말과 비속어를 사용해 윽박지르고 진술을 강요하는 등 ‘강압 수사’를 했다며,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피의자 신문과정 녹화 파일을 제보했다. 관련 기사는 지난해 5월 보도됐다.

당시 신문을 진행한 고양경찰서 소속 박 모 경위는 최 변호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최 변호사가 모자이크 처리 및 음성변조 등을 하지 않은 영상 파일을 기자에게 제공해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했다는 취지다. 박 경위는 해당 기사를 보도한 기자도 같은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보도 과정에서 박 경위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고, 목소리는 그대로 나갔다.

9일 경기고양경찰서는 “저유소 인근 서울-문산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스리랑카인 노동자 A(27)씨가 풍등을 날렸다가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9일 경기고양경찰서는 “저유소 인근 서울-문산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스리랑카인 노동자 A(27)씨가 풍등을 날렸다가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뉴시스

경찰의 제 식구 감싸기?
“경찰, 반성은커녕 공익제보 문제 삼아”

영등포서는 기자에 대해 불기소 의견을 밝혔으나, 최 변호사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로 넘겼다. 영등포서 관계자는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기소의견을 밝히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미 국가인권위에서도 경찰의 강압 수사가 인정된 상황이었다. 인권위는 지난해 5월 외국인 노동자 측 진정에 대해 “피해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것으로서 현행 형사사법체계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신문과정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라며 경찰의 잘못된 업무 관행이 개선될 수 있도록 관련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경찰이 강압 수사를 제보한 최 변호사에 대해 ‘보복성 수사’를 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지난 10일 “강압 수사를 공익제보하는 과정에서 증거를 제공한 행위를 범죄화하겠다는 영등포서의 판단은 결국 경찰의 인권 침해행위를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알리는 경우 처벌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내부 구성원의 위법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편향적으로 수사해 내린 결론이 아닌지 의심된다”라며 보복성 수사 의도가 있었다면 “경찰의 명백한 수사권 남용에 해당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한변협 역시 “경찰은 강압 수사에 대한 반성은커녕, 변호인의 공익제보를 문제 삼았다”라며 “경찰의 권한 강화가 혹시 또 다른 인권침해를 불러오는 게 아닌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라고 지난 9일 밝혔다.

이러한 반발에 경찰 관계자는 “(대한변협과의 면담에서) 일부 오해가 있었던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변협 측도) 충분히 이해했다”라고 14일 해명했지만, 대한변협 관계자는 “납득이 가지 않는 설명”이었다고 일축하며 대한변협·민변 등 단체에서 최 변호사를 법률 대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로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로비ⓒ사진 = 뉴시스

“경찰 처분, 결국 공익제보 하지 말라는 것”

경찰은 법리검토를 통한 결정이었다고 하지만, 법리적으로 봤을 때도 최 변호사의 행위는 정당행위임은 물론 개인정보보호법 구성요건에도 충족하지 않는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현행법상 개인정보를 처리하거나 처리했던 자는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를 누설하거나 권한 없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면 안 된다.

우선 최 변호사는 ‘개인정보처리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그는 풍등 화재 사건 피의자의 변호인 중 한 사람으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영상을 획득했을 뿐, 개인정보 파일을 운용하기 위해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취지다.

개인정보처리자가 업무상 알게 된 개인정보의 범위를 좁게 해석해야 한다는 최근 판례에 따라서도 최 변호사의 행위는 구성요건에 맞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1월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업무와 관련해 알게 된 개인정보만을 의미할 뿐, 개인정보 처리와 관련 없이 모든 업무 과정에서 알게 된 개인정보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

박 경위의 개인정보는 이미 공개됐기 때문에 ‘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 경위는 풍등 화재 사건 담당 수사팀장으로 언론사 인터뷰와 기자회견을 통해 성명, 직책 및 초상과 음성 등 개인정보를 직접 공개한 공인이라는 취지다.

무엇보다 최 변호사의 행위는 공익적 성격을 갖고 있기에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개인정보라 해도 그 정보의 공익성이 인정되면 예외적으로 알 권리의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취지다. 최 변호사는 인권위에도 진정을 낸 공익신고자로 공익신고자보호법상 보호 대상이기도 하다.

최 변호사는 “공익제보 차원에서 좋지 않은 선례”라고 경찰 처분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경찰 처분은) 공익제보를 할 때 당사자의 동의를 얻거나 모자이크 등 변조처리 하라는 것인데, 결국 공익제보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신뢰성이 담보되지 못한 제보는 기자들이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어 의미가 없다”라며 “공익제보자들을 대변한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좋은 결정을 받아내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최 변호사 사건을 맡은 서울 남부지검 관계자는 “아직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강석영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