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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미안합니다”

짧은 퍼머 머리는 70대 이상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머리스타일이다. 다 똑같은 머리스타일에 적당히 화장을 하고 복지관에 들어선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각자 다른 표정과 성품이 얼굴 표정에 묻어나기 마련이다.

첫 수업을 하고 나서 나에게 대학노트 한 권을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 낮은 목소리에 다정함이 가득했다.

“선생님, 이건 제가 그동안 써본 것인데, 너무 엉망진창입니다.” 모습도 말투도 글씨도 정갈했다.

어려서부터 겪은 일과 아이들을 키웠던 일이 에피소드 별로 묶여 있었다. 노인들이 별도의 지도 없이 혼자 써내려간 글은 사건들이 중첩된다. 미리 목차를 정하고 구조를 만들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지만, 50페이지가 넘는 노트를 거의 채운 것은 대단한 일이다.

“수업 안 들어오셔도 될 거 같은데, 지루하지 않으시겠어요? 이미 다 쓰셨네요.” 내가 웃으며 대단하시다 칭찬을 하자 그는 엉망이라 다 다시 잘 쓰고 싶다며 나에게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생애사 쓰기 수업에 참여한 노인들이 제출한 글
생애사 쓰기 수업에 참여한 노인들이 제출한 글ⓒ필자 제공

조 씨는 내 수업을 들으면서 수업 시간마다 주어진 과제도 성실히 해냈다. 성품이 얌전하고 조신한 편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의 사건이 있었다.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그는 초등학교도 다니고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중학교 때 수학 교사가 그를 따로 불러 연극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조 씨는 이미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연극을 해봐서 연기를 잘한다고 알려져 있던 모양이다. 중학교의 교사도 조 씨의 활약을 듣고 다시 권유한 것이다. 조 씨가 맡은 역할은 구슬아기라는 주인공이었다.

구슬아기는 재상집 딸로 아버지가 죄를 짓고 유배를 떠난다. 험난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서 비슷한 신분의 아들을 만나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한다는 내용이라고 했다. 조 씨가 말한 구슬아기 이야기는 1948년에 유치진이 쓴 “별”이라는 계몽사극이다. 조선시대의 격렬한 붕당정치를 빌려와 당시 해방 이후의 사상대립을 비판하고 계몽하는 내용으로 전해진다. 강원도 평창에서 나고 자란 조 씨는 학교 연극반으로 평창에서 영월까지 “별”의 순회공연도 했는데 당시 경찰이었던 큰 오빠가 ‘저것이 무당이 되려는가, 사람이 되려는가’하며 화를 냈다고 했다. 조 씨의 재능은 거기서 끝났다. 이후 학교를 졸업하고 중매로 학교 동창과 결혼했다. 신랑댁의 집안이 괜찮다며 큰오빠가 이리저리 알아보고 부모님께 동생의 결혼을 승낙해도 된다고 말했다. 조 씨는 평창교회에서 웨딩드레스처럼 흰색 한복을 맞춰 입고 신랑은 검은 양복을 입고 신식 결혼을 했다. 조 씨의 남편은 의가사제대 하고 쉬다가 공무원 시험을 봐서 평창군에서 일했다. 봉급쟁이였지만 다복했고, 아이를 셋 낳아 길렀다.

모든 일이 미안했다
아이들에게도 조상들에게도

조 씨의 일대기에는 온통 미안한 것이 가득했다. 큰아이를 기를 때는 아이가 열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몰라 아이를 고생시켰다고 했다. 작은아들은 놀다가 동네 큰 개에게 장난을 치다가 물리고 말았다. 같이 개에 물린 아이는 있는 집 아이라 보약도 해먹였는데 보약가지 지을 형편이 안 되어 작은아들을 잘 돌보지 못해 미안했다고 적었다. 큰딸은 중학교를 멀리 다녔는데 먼 길을 오가며 얼마나 배가 고팠을지, 간식 사 먹을 돈을 넉넉히 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큰아들이 다 자라 서울로 유학을 갔을 때도 용돈을 넉넉히 보내주지 못해 늘 친구들에게 얻어먹었을 거 같아 미안하다고 적었다.

자녀들이 모두 장성했을 때쯤 남편이 1992년 급작스럽게 병을 얻었다. 조 씨의 남편은 1년의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병을 얻기 전에도 잘 챙기지 못했고, 병을 얻은 후에도 병간호가 허술했던 것 같다고 후회를 많이 했다. 조 씨는 연애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이 컸던 것으로 보였다. 남편이 직장을 구하기 전 잠시 집에서 쉴 때, 남편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행복했다고 적었다. 그런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천지가 무너져 마음의 병을 얻었다고 했다.

조 씨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난 뒤 허전한 마음에 두루두루 고향 친구들과 연락을 하고 지냈다. 서울에 와 있는 친구 중에 한 친구가 말하길 어릴 때 같이 자란 아무개가 청량리에서 어렵게 지낸다고 하는데 한번 가보자고 했다. 조 씨는 어렵게 지낸다니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하며 그 친구를 찾아갔다. 친구 집에 가보니 두 사람도 눕기도 어려운 방에서 쌀도 한 톨 없이 지내고 있었다. 조 씨는 친구들과 그 작은 방에서 짬뽕을 한 그릇씩 시켜먹었다. 청량리에 사는 친구는 일자리도 없었다. 당시에는 연금 같은 것도 없어서 어찌 사는지 보기에 딱했다. 조 씨는 친구의 집에서 나와 동행한 친구와 함께 쌀을 한 말씩 사서 청량리 친구 집에 부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6개월쯤 지나 다시 청량리 친구에게 가보니 췌장암이라며 통증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조 씨는 그날도 친구와 함께 쌀을 한 말씩 사서 보태주고 왔다. 다시 6개월쯤 지나, 청량리에 살던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친구가 그 집에 가보니 쌀독에 쌀이 조금 남아 있더라고 전했다. 조 씨는 그래도 얼마 안 되는 쌀이나마 죽을 때까지 굶진 않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 놓였다. 진작 알았다면 더 보태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까웠다.

조 씨가 생애 마지막 에피소드로 적은 것은 기독교인으로 살며 여태 지내던 부모의 제사를 없앤 것이다. 조 씨는 내적 갈등이 심했는지 이래도 곤란하고 저래도 곤란하여 양쪽에 죄를 지었다고 말했다. 교회의 관습을 따르자니 조상님께 죄를 짓는 것 같고, 조상의 제사를 지키려니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 씨는 자기가 써온 제사 이야기를 읽기 전에 “내가 죄를 지은 게 있습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자기가 떠나고 난 뒤 자식들에게 제사라는 부담을 안겨주는 것도 죄를 짓는 것 같아, 살아있는 자식들을 생각해 제사를 없앴다. 그러나 사랑받으며 살았던 양가 부모님을 생각하면 죄를 지은 셈이니, 죽어서 만나 용서를 빌겠다고 적었다. 교실 안에 있던 동년배의 노인들은 “아이고 잘하고 잘한 일인데,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느냐”며 조 씨의 편을 들어주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제사를 지낸다고, 산 사람이 중허지, 거참 잘 하신 일”이라는 노인도 있었다. 조 씨는 그 글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허리를 숙여 마치 눈앞에 조상이라도 있는 것처럼 “죄송합니다.”라고까지 했다.

조 씨가 싸준 묵
조 씨가 싸준 묵ⓒ필자 제공

조 씨는 수업에 올 때마다 두유나 계란 같은 것을 내 책상 위에 조용히 올려놓았다. 수업은 1시에 시작되었는데 점심이나 드시고 오셨느냐며 깍듯하게 나를 선생님으로 대해주었다. 조 씨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처럼 나를 스승으로 대해주었다. 그의 딸보다 내가 어릴 텐데, 나는 조 씨의 예의가 고맙고도 송구스러웠다.

10차시의 교육이 끝나는 날, 조 씨는 수업이 끝나고 나에게 작은 비닐봉투에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건넸다.

“선생님, 묵 같은 거 드실 줄 알아요? 젊은 사람들은 묵 같은 거 안 좋아할 텐데. 그래도 이거 한 번 드셔보세요. 내가 강원도 사람이라, 집에서 묵을 쑤는데, 선생님 맛 한번 보시라고 가져왔어요.” 노인수업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간식거리를 계속 받게 마련인데, 직접 쑤어온 묵이라니,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조 씨는 “별로 맛도 없을 텐데, 미안합니다. 그리고 선생님 엉망진창인 제 글 읽느라고 너무 고생하셨고, 정말 미안합니다. 그리고 그 통은 그냥 가지세요.”라고 연신 고개를 숙여 나에게 인사했다.

그 수업이 끝난 이후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몇 주 동안 집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조 씨가 쑤어준 묵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묵을 담은 밀폐용기는 냉장고에 오래 머물렀다.

평생 남에게 폐 한 번 안 끼쳤을 것 같던 노인은, 늘 무엇이 그렇게 미안했을까. 불행이 닥칠 때 어떤 사람은 죄책감이 앞서고, 어떤 사람은 수치심이 앞선다던 말이 생각났다. 강원도 읍내의 흥겨운 장터를 돌며 구슬아기를 연기하던 발랄한 사춘기 소녀는,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늘 미안해하는 노인이 되었다. 그가 정성스럽게 쑤어다 준 묵을 멋지게 차려 먹지 못해, 나도 그에게 미안한 사람이 되었다.

이하나 집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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