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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언 매큐언’의 장편소설 속죄
‘이언 매큐언’의 장편소설 속죄ⓒ기타

지루한 비와 불안한 태풍이 몇 차례 지나간 후 계절이 바뀌었다. 하늘과 구름이 놀랍도록 선명하고 아름다운 주말 휴일 오후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우리는 오랜만에 마을 주변을 산책한 후 점심을 사먹으러 식당으로 갔다. 이즈음의 풍경인 듯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텅 빈 식당의 주인과 단 한 테이블의 손님’은 서로에게 친절하고 다정했다. 그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할 필요도 없이, 그 투명한 풍경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막 읽기를 끝낸 소설의 작가 ‘이언 매큐언’의, ‘다른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떻게 느낄까 상상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성의 본질이며, 동정과 연민의 핵심이고, 도덕성의 시작이다.’라는 어떤 논평까지 떠올리지 않아도, 그런 상상이 되는 순간이었다.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티브이를 쳐다보고 있던 사람이 먼저 말을 꺼냈고, 곧바로 우리의 짧은 언쟁이 시작되었다. 한 정치인의 자녀에 관한 패널들의 논쟁을 듣고 있던 그가 혼잣말을 하듯 그들의 논쟁에 끼어들자, 나 역시 그와 반대의 생각으로 말을 보탠 것이다. 그 언쟁이 ‘잠깐’에 지나지 않았던 것은 더 이상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언쟁 속에서도 있게 마련인 최소한의 공감, 그것을 끌어낼 만한 문제의 '투명함'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무엇에 기대어 그와 같은 정 반대의 확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는 1935년 당시 열세 살 소녀였던 브리오니가 서툰 판단과 상상, 그로 인한 확증편향으로 어느 밤에 일어난 범죄에 대해 '증언'을 하게 되고, 소녀의 증언으로 인해 친언니 세실리아와 그 연인 로비의 사랑과 삶이 파국을 맞게 될 뿐만 아니라 브리오니 자신도 평생의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그리하여 1999년 일흔일곱 살이 된 작가 브리오니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마지막 장면과 함께 그 범죄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숨기지 않는 것이 의무’라 여기며 쓴 소설 ‘속죄’에 관한 이야기이다.

‘속죄’를 원작으로 지난 2007년 만들어진 영화 ‘어톤먼트’
‘속죄’를 원작으로 지난 2007년 만들어진 영화 ‘어톤먼트’ⓒ스틸컷

부모의 이혼으로 브리오니 가족의 집 탈리스 가에 맡겨진 열다섯 살 사촌 롤라와 쌍둥이 형제들이 도착한 날, 오빠 레온과 그의 친구 마셜이 집을 방문한 그날 밤, 사촌 롤라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현장을 목격한 열세 살 소녀 브리오니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간 범인의 그림자가 어린 시절부터 함께 다정하게 자라며 탈리스 가의 후원으로 성장한, 그 즈음 막 세실리아와 사랑의 감정을 확인하며 폭풍 같은 시간에 있던 '로비 터너'였다고 지목한다.

연인 세실리아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는 브리오니의 증언을 의심하지 않거나 의심하지 않으려 했고, 로비는 감옥을 거쳐 전쟁터의 군인으로, 세실리아는 그 집의 모든 것과 절연한 후 간호사가 되어 로비를 기다린다. 범인은 그날 브리오니의 오빠 레온과 함께 방문한 '마셜'이었고, 롤라는 그 모든 것을 숨긴 채 훗날 마셜과 결혼한다.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은 '죄'를 깨닫게 된 브리오니 역시 응급 의료 전담 군부대의 수련 간호사로, 로비처럼 전쟁터에 있다가 끔찍한 부상을 당하고 돌아온 병사들을 돌보며 자신의 잘못된 증언을 되돌리고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속죄할 시간을 기다리지만, 그 속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로비 터너’는 전쟁터에서 패혈증으로, '세실리아'는 로비가 죽은 같은 해 지하철역 폭격으로 죽었고, 그들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한다.

60여 년이 지난 후 브리오니는 자신과, 범죄의 공모자였던 롤라와 마셜, 그들이 죽기 전에는 발표하지 못할 실화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연인들이 살아남아 사랑을 이루고 거짓된 증언을 바로잡는 것으로 속죄를 시도한다. 하지만 작가 브리오니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고, 다만 '소설가 자신이 상상 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 '속죄의 노력'만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나약하고 어리석고 혼란스럽고 비겁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증오해왔다.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중략) 거짓말을 하려 한 게 아니었다. 로비에 대한 악의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누가 그 말을 믿어주겠는가?’
-이언 매큐언, ‘속죄’ 중에서

열세 살 소녀 브리오니가 ‘거짓말이 아닌 거짓’의 죄를 지었던 것은, 그녀가 목격한 언니 세실리아와 로비의 서툴고 거친 사랑의 장면을 세실리아에 대한 로비의 '폭력'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한계와 조건’ 속에서 어린 소녀가 생각하는 ‘정의’의 편에 섰던 것이다. 그가 속죄해야 할 것은 무엇에 대해서일까.

휴일 오후의 짧은 언쟁은 무엇도 증명할 수 없는, 서로의 경험과 신념만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고, 우리가 말없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올 때까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으며, 밖은 여전히 선명하고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이언 매큐언

1948년 영국 서리 지방에서 태어나 1975년 첫 소설집 '첫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데뷔했다. 1998년 '암스테르담'으로 부커상 수상, 2001년에 발표한 '속죄'는 매큐언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며, 2007년 이 작품을 원작으로 해 만들어진 영화 '어톤먼트' 개봉되었다.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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