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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성착취물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만화 ‘오빠가 사라졌다’
만화 ‘오빠가 사라졌다’
만화 ‘오빠가 사라졌다’ⓒ넥서스BOOKS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 최대 징역 29년에 이르는 형량을 권고한 새 양형기준이 15일 발표됐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확정한 양형기준안은 공청회를 거쳐 오는 12월 최종 의결된 뒤 관보에 게재돼야 효력을 갖는다. 양형위가 확정한 안에 따르면 아동·성착취물 제작 범죄에 대해 양형위원회는 최대 29년 3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 배포의 경우 7년 이하의 징역과 5천만원 이하의 벌금, 단순 소지의 경우 1년 이하의 징역과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양형 기준이다.

이런 양형 기준은 아동 성범죄와 디지털 성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해온 우리나라 법원의 관행을 생각하면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은 가야할 길이 멀다. 경선 작가의 만화 ‘오빠가 사라졌다’는 이런 현실의 고민을 담고 있다. 경선 작가가 만화에서 그리고 있는 사회는 성 착취물 유포나 소지만으로도 3년 형이 선고되는 가상의 한국이다. ‘N번방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한국은 연일 여성 혐오 범죄로 들썩인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의 성범죄 처벌은 가볍기만 하고 판사들은 가해자에게만 유달리 관대하다. ‘오빠가 사라졌다’는 가해자들이 우리의 현실보다는 강력한 처벌을 받는 가상의 한국을 담고 있다. 그 안에서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변화할지를 보여준다.

디지털 성폭력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모인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참석자들이 4뤟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재판부 부실판결 규탄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성착취물 제작 과정에서 피해자를 폭행 및 협박하지 않았다”, “유포할 때 피해자의 얼굴을 가렸다”, “초범이다” 등의 이유로 가해자의 형량을 낮추는 가해자중심적 판결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2020.04.20
디지털 성폭력의 근본적 해결을 촉구하는 시민들이 모인 ‘n번방에 분노한 사람들’ 참석자들이 4뤟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성인지감수성이 부족한 재판부 부실판결 규탄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성착취물 제작 과정에서 피해자를 폭행 및 협박하지 않았다”, “유포할 때 피해자의 얼굴을 가렸다”, “초범이다” 등의 이유로 가해자의 형량을 낮추는 가해자중심적 판결 경향을 보였다고 말했다. 2020.04.20ⓒ김철수 기자

이 만화는 성 착취물을 공유하고 즐겼던 그들이 누군가의 오빠, 동생 아들, 남편, 친구 동료였다는 것을 주목한다. 우리의 일상 너머 멀리 있는 사건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건 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 가족 또는 내가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넘어 나의 가족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통해 사회가 과연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지 고민을 던진다. 법적 처벌이 강화된 가상의 한국에서도 가족들은 여전히 가해자로 지목된 자신의 가족만은 예외라 여긴다. 실수라고 치부하거나, 피해자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합리화를 한다. 문제를 지적하는 여동생에겐 어떻게 오빠에게 그럴 수 있냐는 부모들의 꾸지람이 날아든다. 그렇게 가해의 문제를 가족의 입장으로 만나는 순간 사라지는 가해자를 걱정할 뿐 가족 구성원 가운데 누구도 쉽사리 피해자를 걱정하진 않는다.

많은 여성들은 ‘N번방 사건’에 분노했을 뿐, 깜짝 놀라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이미 낯선 화장실에 갈 때마다 휴지로 막힌 수많은 구멍을 마주 해야 했으니까. 무수한 불법 촬영물이 인터넷에 떠도는 세상을 이미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으니까.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사라진 자매들을 그리며 또 우리의 현실에서도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친다”고 밝혔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는 아주 당연한 바람이 이뤄지기 위해선 법적 처벌의 강화 뿐 아니라 사회적 시선과 혐실의 변화가 필요함을 이 만화는 보여준다.

권종술 기자

문화와 종교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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