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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 발표에 부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안을 발표했다. 이 양형기준이 마련된 결정적 계기는 올해 초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다. 당시 범죄 내용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보다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받은 형량이 지나치게 낮았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되었다.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정치권 모두 한목소리로 양형기준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고, 이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이번 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는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법정형이 정해져 있으나 양형기준이 없어 그동안 판사 재량으로 선고가 이뤄져 왔다. 그렇게 선고된 형량을 보면 평균 2년 6개월. 법정형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 솜방망이 처벌들이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웰컴투비디오 사건의 경우 동영상을 한차례 다운받은 미국인은 징역 70개월과 보호관찰 10년을 선고받은 반면, 이 사이트의 운영자였던 한국인 손정우는 나이 어린 초범에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로 고작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미국 송환까지 불발되면서 얼마 전 출소했다.

피해자는 물론 국민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법부의 미온적인 처벌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양형기준을 손보는 것이 시급했다. 양형기준이 비록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설정된 양형기준을 벗어난 판결을 할 경우 따로 판결 이유를 적시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대부분의 판사들은 이를 따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이번 양형기준에 주목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번 양형기준에 따르면, 기본영역을 징역 5∼9년으로 정하고 감경영역은 2년 6개월∼6년, 가중영역은 징역 7년∼13년으로 정하였다. 이제 재판을 맡은 판사는 양형인자를 고려해 세 영역 내에서 구체적 형량을 정해야만 한다. 판사의 재량이 어느 정도 제한됨에 따라 지나치게 낮았던 형량도 높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논란이 되어왔던 ‘피해자의 처벌불원’에 대한 부분도 이번 양형기준안에 명시되었다. 아동․청소년의 경우 유인과 협박에 의한 성착취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고, 여러 특성상 처벌불원 의사가 강요될 우려가 있음에도, 그동안은 이를 형량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감경요소로 보았다. 그런데 이번 양형기준안에서는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판결에 반영되는 정도를 제한하도록 한 것이다. 카메라를 이용한 촬영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도 신설했다.

아직 보완할 점들도 많긴 하지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다만 첫발을 떼는 데 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제대로 처벌받지 못한 가해자들은 더 광범위하고 잔악한 성착취 카르텔을 만들었고,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 피해자들은 회복조차 힘든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그나마 여기까지 온 것은 많은 국민들이 피해자와 연대하여 싸웠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법부다. 사법부는 시대에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과 그로 인한 직무유기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뼈아프게 반성하고 혁신해야 한다. 시작은 제대로된 판결부터다.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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