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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아름답고 당찬 소녀와 마녀의 노래

탄식이 나오는 목소리가 있다. 탄식하게 하는 목소리가 있다. 공식도 법칙도 없는 감성의 영역에서 순식간에 빠져드는 소리의 결. 소리의 두께와 파형으로 사로잡는 매혹. 내게는 전인권과 이소라와 장필순이 그랬다. 이장혁, 할로우잰, 시와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강태구와 쓰다, 예람의 목소리가 박힌다.

이건 취향이다. 누구도 똑같지 않다. 누가 더 뛰어난지 따지는 건 바보 짓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큐피트의 화살은 뽑을 수 없다. 막을 수 없다. 2017년 5월 예람이 EP [새벽항해]를 발표했을 때나, 성주 소성리와 젠트리피케이션 현장에서 노래하며 곡을 발표했을 때, 특히 다른 뮤지션의 음반에 목소리를 더할 때, 노래는 새벽보다 서늘하고 겨울보다 어두웠다. 그게 참 좋았다.

싱어송라이터 예람
싱어송라이터 예람ⓒ사진 = 열매 @네버더레스

예람은 지난 9월 8일 낸 첫 번째 정규 음반 [성]에서도 자신의 목소리에 11곡을 깊숙이 묻었다. 수록곡들은 어딘가로 이동하거나 움직인다. 바다를 넘어가고, 시를 싣고 날아간다. 길 위를 이어가며, 별을 따라 걸어간다. 빨간 빛을 따라가기도 한다. 밤에 택시를 타고 꿈에 밤길을 떠난다.

예람의 새 음반에는 ‘빛’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온다. 꿈, 길, 바다, 별이 뒤를 잇는다. 빛은 움직이는 누군가의 목표이며 지향이다. 그리고 꿈은 무의식의 세계이다. 예람의 노래는 빛을 향해 나아가며, 실현하지 못한 꿈을 자주 마주친다. 빛과 꿈은 동전의 양면이다. 열망하기 때문에 좌절하고, 좌절하기 때문에 열망한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꿈꿀 일이 없다.

하지만 예람의 노래를 열망과 낙담의 이중주라고만 표현하면, 그 본령에 반도 못 간다. 그는 음악에서 애잔한 음색으로 성을 쌓는다. 우울하고 쓸쓸한 음색으로 단절과 유폐의 벽돌을 올린다. 내향의 기운으로 물들인 목소리를 들으면, 노래를 따라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게 된다. 예람의 목소리는 자기만의 방에 웅크릴 때에야 들을 수 있는 목소리 같다. 물론 이건 나만의 해석이다. 나만의 오해다. 내가 예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탄식하는 이유 역시, 내가 그렇다고 규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예람 정규 1집 앨범 '성' 커버 이미지
예람 정규 1집 앨범 '성' 커버 이미지ⓒ사진 = 예람

내가 탄식하는 목소리들은 내 마음의 목소리 같은 목소리들이다. 내 마음이 그렇게 속삭이고 그렇게 울먹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외치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변하는 노래 앞에서 누가 귀를 막을 수 있을까. 예술은 누구에게든 착각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더라도 남몰래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예술은 자기애를 떠나 피어나지 못한다. 예술은 자신의 환상을 확인하는 가장 우아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예람이 한 사람을 위해 노래했을 거라고는 우기고 싶지 않다.

예람의 음악은 보컬 음색만으로 울창해지진 않았다. 예람이 자신의 음악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은 소리 사이의 간격이다. 예람의 음악은 어쿠스틱 기타, 일렉트릭 기타, 비올라를 주로 활용하는데, 목소리와 악기 연주 사이를 툭툭 벌려놓았다. 거리가 생기자 울림은 더 깊어졌다. 모든 곡을 쓰고 프로듀싱한 예람은 좀처럼 소리를 일그러뜨리지 않고, 물방울을 떨구듯 소리를 퍼트린다. ‘서울의 밤’을 비롯한 곡들에서 영롱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와 맑은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함께 울릴 때, 소리의 간격은 음악의 공간감을 배가시켜 더 물결친다. 그 때마다 예람의 노래는 아득해진다
.
이제 멜로디에 대해 말할 순서이다. 보컬과 소리의 간격, 여기에 멜로디가 예람 음악의 지분을 분점한다.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을까. 첫 곡 ‘바다넘어’에서 끝 곡 ‘성’까지 몇 번을 이어 듣는 동안 노래의 멜로디들은 간결한 노래의 뼈대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자연스럽다. 노랫말의 정서와 지향을 실현하는 매개이자 실체인 멜로디는 금세 마음을 적시고, 음악을 껐을 때도 귀와 입에 남는다. 복잡하지 않은 선율을 반복하는 일만으로도 마음을 끌어당길 만큼, 예람은 빼어난 멜로디를 연거푸 내놓는다. 음반이 끝날 때까지 멜로디의 횡단은 끝나지 않는다. 얼마나 빨리 다가오고 얼마나 오래 남는지가 멜로디의 위력을 가른다고 할 때, 예람의 멜로디는 누구의 심장에서도 나가지 않는다.

아직 더 이야기 할 게 있다. 이 모든 소리를 집합시켜 만든 이야기의 핵심은 타이틀곡 ‘성’에 있다. “한없이 작고 여린 성”을 짓고 있는데, 성이 城이든 性이든 나는 “한없이 꿈꾸던 자유를 얻고 있”지만, 여전히 외롭다. 크고 단단한 성이 아니다. 외롭지 않은 내가 아니다. 자유를 못 얻은 것도 아니다. 예람은 얻고 싶은 것을 얻었으나 외롭다는 상반된 결과를 원인과 결과로 잇지 않는다. 얻고 싶은 것을 얻었지만 외로운 게 아니라, 얻고 싶은 것을 얻었고 외로운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다. 그 누구의 여인도 그 누구의 사람도 그 누구의 세상도 아니고, 자신은 일하는 소녀이며 서쪽의 마녀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외로움을 메꾸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존심에서 나온다.

예람은 그 마음에 대해 계속 노래한다. 시를 싣고 날아가는 마음이다. 작은 아이 같은 마음이다. 날아갈거라고, 죽지 않을거라고 다짐하는 마음이다. 붉은 꽃을 피우는 마음이고, “나를 걸어야 삶을 찾고/나를 걸어야 너를 찾”는다는 걸 아는 마음이다. “불안한 꿈을 꾸고 또 새로운 걸” 보는 마음은 현실과 불화하면서도 자신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거짓 없는 고백이며 의지이다.

허황되고 적막한 세상 앞에서도 예람은 연약하지 않다. 밤과 강을 건너는 이를 축복하고, 흔들리면서도 일하는 소녀와 서쪽의 마녀의 목소리로 노래하며 언제나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간절하고 진실해 아름다우며 당찬 이 노래를 듣고 또 듣는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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