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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국민이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가 주목해야 할 ‘핵심 조항’이 있다
없음
ⓒ국회 국민동의청원

10만 국민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22일 오전 11시경 국회 국민동의청원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10만 명이 동의해 법제사법위원회로 넘겨졌다. 매년 2천400명, 하루 7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죽고 있다. ‘반복되는 죽음’을 멈춰야 한다는 동료 시민들의 간절함은 서명 목표를 조기에 달성시킨 원동력이었다.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이번 청원은 130여 시민사회단체와 중대 재해 피해자들이 모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에서 만든 법안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정의당에서도 1호 법안으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도 의지를 밝힌 만큼, 21대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재계의 입김에 ‘누더기 법안’이 탄생하는 건 아닐까. 입법 과정에서 핵심 조항들이 삭제·수정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28년 만에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대표 사례다. 개정안은 김용균 노동자 사고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 위험업무의 하도급을 일부 용인해 ‘김용균 없는 김용균 법’이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국회가 빠뜨려선 안 되는 핵심 조항은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할 발의 취지는 무엇인지, 지난 18일 운동본부 법안 발의에 참여한 손익찬 변호사(법무법인 일과사람), 오민애 변호사(법무법인 율립), 최정학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를 만나 들어봤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시민·노동자의 힘으로 만드는 안전한 일터와 사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10만 국민동의청원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2020.09.01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시민·노동자의 힘으로 만드는 안전한 일터와 사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10만 국민동의청원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2020.09.01ⓒ김철수 기자

“경영책임자의 위험방지 의무, ‘위임’할 수 없다”

운동본부 법안은 중대 재해를 일으킨 ‘원청 기업의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실질적 조항을 담고 있다. 중대 재해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한 부상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부상자 등이 동시에 10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

제3조 경영책임자 등의 안전·보건조치 의무
① 법인의 경영책임자 등은 법인이 소유·운영·관리하거나 발주한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또는 공중교통수단에서 종사자·이용자 등이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상의 위해를 입지 않도록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

제4조 도급·위탁 관계에서 안전·보건조치 의무의 귀속
① 법인 등이 제3자에게 임대, 용역, 도급 등을 행한 경우 제3자와 경영책임자 등이 공동으로 제3조의 의무를 부담한다.

제5조 경영책임자 등의 처벌
① 경영책임자 등이 제3조의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케 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1항의 경우 경영책임자 등이 법인 등의 종사자에게 위험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한 때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경영책임자에게 위험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이는 누구에게도 ‘위임’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현행법상 경영책임자 처벌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도 사업주에게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두고 있다. 그러나 원청은 하청에, 사업주는 현장관리자에게 의무를 위임했다며 법망을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이에 ‘하청 업체의 현장관리자’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또는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처벌받는 실정이다.

최 교수는 “위임이 항상 문제였다. 사고가 났을 때 경영책임자는 현장관리자만 교체하면 그만이다. 경영자는 사고가 안 나면 좋겠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형벌의 예방 효과가 아예 없었다. 의무 부분이 관철되지 않으면 이번 법안은 소용없어진다”라고 강조했다.

경영책임자의 의무 범위는 넓어졌다. 현행법상 안전·보건조치 의무 등을 포함해 포괄적인 위험방지 의무를 규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처벌토록 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처벌하기 위해 도급·위탁 등 관계에서도 노무를 제공받은 자 역시 의무를 부담하도록 규정했다. 특히 사업장뿐 아니라 공중이용시설·공중교통수단 등에서도 위험방지 의무를 부과해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등 시민재해를 예방토록 한 점은 이번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드러낸다.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작은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2020.04.27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에서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위한 추모의 작은 퍼포먼스가 진행되고 있다. 2020.04.27ⓒ김철수 기자

“동일 기업 동일사고, 막아낼 강력한 법안”

가장 눈에 띄는 조항은 제7조 ‘인과관계의 추정’이다. 경영책임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으로, 운동본부 법안만의 차별점이다.

중대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기업의 경우,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으로 중대 재해가 발생했다고 추정하고, 경영책임자에게 스스로 무죄를 입증토록 규정했다. 의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검찰의 유죄 입증 필요 없이 처벌될 수 있다.

제7조 인과관계의 추정
다음 호에 해당할 경우 경영책임자 등이 제3조에서 정한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해 중대 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1. 해당 사고 이전 5년간 경영책임자 등이 제3조가 정한 의무와 관련 법을 위반한 사실이 수사기관·행정청에 의해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2. 경영책임자 등이 해당 사고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거나 현장 훼손 등 수사를 방해한 경우

한국산재 사고의 특성이 반영된 조항이다. 재래형 사고가 동일 기업에서 반복적으로 하청 노동자에게 발생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산재 사망자가 467명으로, 매달 1명이 죽는 셈이다. 올해 다섯 번째 사망한 하청 노동자의 사인은 8년 전 사망한 하청 노동자와 같다. 민주노총 등에서 2020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대우건설에선 지난해 7명의 하청 노동자가 사망했다. 대우건설은 2010년 13명, 2013년 10명의 노동자가 사망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2회나 선정됐다.

쌍둥이처럼 반복되는 사고를 개별적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경영책임자에게 구조적 원인을 물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해당 조항의 탄생 배경이다.

경영책임자 처벌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인과관계의 증명이다. 최 교수는 “경영책임자와 사고 현장의 거리는 멀다. 의사결정 과정에 여러 사람이 개입하는데, 최종 책임이 경영자에게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기업 규모가 커질수록 인과관계는 더 복잡해진다”라고 진단했다. 예를 들어 울산 현대자동차 제1공장에서 산재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경우, 정몽구 회장은 지방 현장의 상황까지 알 수 없다며 고의성을 부인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오 변호사는 “인과관계 증명이 어려워 경영책임자는 수사 단계에서 아예 제외되거나, 고소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불기소 처분이 대부분”이라며 “해당 조항은 경영책임자를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취지보다 경영책임자가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접근에서 만들어졌다”라고 설명했다.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죽음, 파괴된 삶, 지속되는 고통 산재사망·재난참사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 팻말을 들고 있다. 2020.08.12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죽음, 파괴된 삶, 지속되는 고통 산재사망·재난참사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손 팻말을 들고 있다. 2020.08.12ⓒ김철수 기자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강력한 조항이지만, 그만큼 반론도 크다. 먼저 현대 형법의 대원칙을 무너뜨렸다는 비판부터 나온다.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범죄요건 중 하나인 인과관계는 검사가 증명해야 하는데, 피고인에게 스스로 무죄임을 입증하라는 것은 유죄로 추정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손 변호사는 “중대 사고는 우연히 또는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많이 적발될수록 사망확률도 높아진다. 인과관계를 추정할 만한 경험적 근거가 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반박하며 “민사상에서 적용되던 논리가 형사상에서도 가능하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현행법에도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있다. 환경범죄 가중처벌법 제11조는 사람의 생명 등에 위해를 끼칠 정도로 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한 사업자가 있는 경우, 위해가 발생할 수 있는 지역에서 ①같은 종류의 오염물질로 인해 생명 등에 위해가 발생하고 ②그 불법배출과 발생한 위해 사이에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그 위해는 사업자가 불법배출한 물질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했다. 공정거래법 제19조 제5항은 담합 행위의 경제적 이유 및 사업자 간 접촉 횟수 등 사정에 비춰 사업자들이 공동으로 담합 행위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상당한 개연성이 있는 때에는 공동으로 담합을 합의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했다.

기업범죄의 발전에 따라 형법도 현실적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추정 조항이 있는) 환경범죄와 담합 모두 기업범죄다. 범죄 종류에 따라 범죄 성립요건을 달리 보거나 약화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개인범죄에 초점이 맞춰진 현대 형법이 기업범죄 등 새로운 범죄 영역에 대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범죄 성립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어놓고 그에 맞는 범죄만 처벌하자는 건 현실과 맞지 않는다.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건 빠져나갈 가능성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론의 완결성을 허물더라도 현실적으로 필요하고 유효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노동법에도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있다고 손 변호사는 설명했다. 남녀고용평등법 제30조는 이 법과 관련한 분쟁 해결에서 입증책임은 사업주가 부담한다고 규정했다.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로 분쟁이 일어난 경우 회사가 적법한 징계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간제 노동자 등에 대한 차별적 대우에 대한 분쟁에서 입증책임은 사용자가 부담한다는 기간제법 제9조 역시 마찬가지다. 손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사람이 지는 것인데,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에게 지우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20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이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일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에 따르면 이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

사고가 한 번 반복했다고 경영책임자를 처벌하겠다는 건 아니다. 최근 5년간 3회 이상 위반 사실이 수사기관 등에 의해 적발돼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과거의 잘못을 또다시 처벌해 일사부재리의 원칙에 반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오 변호사는 “과거 위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게 아니다. 중대 재해가 있었다면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할 책임이 경영책임자에게 있다. 사고가 반복된다면 불리한 사정으로 볼 뿐 아니라 판단 과정에도 포함하겠다는 것”이라며 “법원에서 유죄 판결받은 것이 아니라 수사기관 등에서 확인된 위반 행위기 때문에 일사부재리에 반하지 않는다. 유죄 판결로 한정할 경우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반복되는 사고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라고 말했다.

사고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는 등 수사를 방해하면 인과관계를 추정한다는 조건도 있다. 형법상 증거인멸죄는 자신의 죄에 대한 증거인멸은 처벌하지 않고 있는데, 이에 배치되는 조항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오 변호사는 “증거를 인멸한 사람을 형법상 증거인멸죄로 처벌할 순 없지만, 사고 책임을 묻는 데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스스로 사고와 관련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경영책임자를 처벌해야 ‘반복되는 죽음’을 멈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최 교수는 “경영책임자가 처벌돼야 바뀐다. 이윤추구 압력이 사고를 만든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거나 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예산을 적게 주면 현장에선 안전 의무를 다하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책임을 현장 하도급 책임자만 져서는 사고를 멈출 수 없다”라고 말했다.

기업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최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기업 처벌은 벌금밖에 없다. 먼저 범죄를 돈으로 산다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 현재 산재 사고에 대한 기업 평균 벌금이 400만 원대인데, 한순간에 10억 20억이 선고될 수 없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유출 효과’에 대한 우려도 있다. 기업의 돈은 주주, 채권자, 노동자들의 재산이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피해로 이어진다. 기업이 벌금을 내고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늘리는 과정에서 소비자와도 연결될 수 있다. 기업의 벌금은 보존된다”라고 설명했다.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유가족들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중대재해(이천 화재) 책임자 처벌 촉구 및 규탄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20.05.29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유가족들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중대재해(이천 화재) 책임자 처벌 촉구 및 규탄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있다. 2020.05.29ⓒ김철수 기자

“경영책임자가 제일 무서운 건 돈”

운동본부의 법안은 법인을 처벌해 회사 운영에 타격을 미치는 조항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제6조 법인의 처벌
① 다음 호에 해당하는 경우 법인에 1억 원 이상 20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한다.
1. 경영책임자 등이 제5조의 위반 행위를 할 때
② 법인을 제1항에 따라 처벌할 때 법인에 다음 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 전년도 연 매출액 또는 수입액의 10분의 1의 범위에서 벌금을 가중할 수 있다.
1. 경영책임자 등이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위험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한 경우
2. 법인 내부에 위험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을 조장·용인·방지하는 조직문화가 존재하는 경우
③ 제1항, 제2항의 경우 법원은 영업허가의 취소, 5년 이내 영업정지, 5년 이하 이행관찰 등 제재를 병과할 수 있다.

경영책임자가 가장 겁나는 건 돈을 많이 내는 것이라고 오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대표자 처벌은 감정상 회사에 큰 영향을 줄 것 같다. 하지만 법인에 예방 조치를 할 동기를 줄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경영책임자가 없다고 매출이나 운영에 실질적인 타격을 받을까”라며 “법인에 범죄 능력이 있는지는 항상 논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회사에 속한 사람의 처벌을 전제로 법인도 처벌받는 ‘양벌규정’을 두고 있다. 제6조는 기존 양벌규정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경영책임자가 잘못했을 때 법인이 처벌받는 범위를 넓혔다”라고 짚었다.

법인에 대한 보안처분은 새롭게 추가된 조항이다. 최 교수는 “산재 사고는 결국 해당 기업에 안전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기업에 안전시스템을 만들라고 시키고 이를 감시하는 이행관찰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형이 확정된 기업에 대해 3년간 영업을 취소한다는 제10조도 주목할 만하다. 오 변호사는 “제대로 피해 복구나 재발 방지를 하지 않는 이상 영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도록 했다”라고 설명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제12조도 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손 변호사는 “손해배상 해봐야 몇억으로 끝난다. 기업 입장에선 안전보건체계를 세우는 비용이 더 드는 게 현실이다. 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하면 손해배상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시해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방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2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108배 및 천도재에서 참석자들이 108배를 하고 있다. 2020.5.28
28일 오후 서울 세종대로 광화문광장 북측에서 구의역 참사 4주기 추모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산재사망노동자 추모 108배 및 천도재에서 참석자들이 108배를 하고 있다. 2020.5.28ⓒ김철수 기자

피해자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 의지도 돋보인다. 형사소송법 개정을 전제로 만들어진 제9조는 유죄를 선고한 뒤 별도의 심문기일을 통해 전문가위원회의 의견을 듣고 형량을 판단하도록 했다. 전문가위원회는 피해자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3분의 1 이상 포함돼야 한다.

손 변호사는 “재판부가 피해자의 의견을 눈치 보도록 하려는 취지다. 법정에서 피해자가 진술할 수 있지만,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절차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오 변호사는 “건설노동자 김태규 님 사망 사건 당시 1심 재판에 사람들이 몰리니 재판부가 놀란 눈치더라. 책임자들이 재판에 넘겨져도 다양한 사건들이 포함된 업무상과실치사가 적용되니, 재판부에서 산재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고려하기 어려운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양형 절차를 따로 둬서 재판부에 이 사안을 무겁게 봐야 한다는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취지다.

모든 조항에 경영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최 교수는 “기업들은 경영 업무도 많은데 경영책임자가 어떻게 안전문제를 일일이 신경을 쓸 수 있냐고 주장한다. 경영책임자가 바쁘고 힘든 건 알지만, 그렇다고 안전문제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이번 법안은 경영 이윤보다 안전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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