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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세상에 지지 않는 노래

한국이 ‘OECD 국가 중 1위’를 고수하는 기록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가장 처참한 기록은 산업재해 사망률이다. 작년에 이 땅에서 일하다 죽은 노동자는 2020명. 사고로 죽은 855명과 병으로 죽은 1165명을 합친 통계는, 우리 사회에서 날마다 7명의 노동자가 출근했다가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고 증언한다.

이런 수치를 보면 회의감이 든다. 한국은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연달아 이뤄냈고, K-방역은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차트 정상을 석권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평범한 노동자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이 살아간다. 가장이건 아니건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이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면 누가 노동자로 살까.

한 노동자가 죽으면 그의 가족들도 무너진다. 해마다 수만 명의 삶이 무너지고 있다. 그러나 일터의 안전을 소흘히 한 기업주들이 처벌 받는 경우는 드물다. 1.9%의 책임자만 9.3개월 정도의 처벌을 받았고, 평균 벌금 458만원을 내면 됐다. 이 나라는 누구에게 좋은 나라인가.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 누구의 나라인가.

구의역에서 일하던 19살 김 군이 죽었고, 24살 청년 김용균도 죽었다.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 노동자 38명이 죽었다. 지난 10일에는 김용균이 숨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죽었다. 이제 죽도록 고통받으며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라고 생각했던 믿음은 모두 허상이었다. 1984년 발간된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손무덤’과 노동가요 ‘짤린 손가락’이 스쳐간다. 더 이상 ‘짤린 손가락’ 같은 노래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라 생각했던 믿음이 헛되고 헛되다. 이런 세상에 음악은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열렸다. 2020.04.27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2020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이 열렸다. 2020.04.27ⓒ김철수 기자

소비는 과시하지만 노동은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나라에서 노동이 노래가 될 리 없다. 20대 사이에서도 주식 투기가 보편화 되는 나라에서 누가 노동자를 노래하고 노동자의 죽음에 귀 기울일까. 노동자로 살아가면서도 노동자 아닌 삶을 꿈꾸는 나라에서는 환상만 노래할 뿐이다. 평범한 이들의 삶을 지키지 못하는 개혁의 거품에 쓸려갈 뿐이다. 그래서 프로젝트퀘스천과 하림이 함께 한 ‘#그쇳물쓰지마라_함께_노래하기 챌린지’가 더욱 소중하다.

2010년 충남 당진의 철강 공장에서 청년 노동자가 죽었다. 누리꾼 제페토는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조시를 댓글로 남겼다. 많은 이들이 읽고 함께 울었던 그 시에 얼마 전 싱어송라이터 하림이 멜로디를 붙여 한 곡에 노래가 탄생했다. 그간 노래의 사회적 역할을 꾸준히 고민해 온 하림은 이 노래를 소셜미디어에 올리거나 음반에 담는 방식으로 발표하지 않았다. 대신 이 노래를 함께 부르자고 청했다.

하림은 인스타그램에 ‘그 쇳물 쓰지 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를 열었다. 하림은 제페토의 시에 곡을 붙이고, 이를 기타리스트 고의석과 함께 연주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챌린지를 시작했다. 당진의 철강 공장에서 청년 노동자가 죽은 지 10년이 되는 즈음이었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은 쓰지 마라/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마라/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못을 만들지도 말 것이며/바늘도 만들지 마라/모두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그 쇳물 쓰지 말고/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살았을 적 얼굴 찰흙으로 빚고/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정성으로 다듬어 정문 앞에 세워두게/가끔 엄마 찾아와/내 새끼 얼굴 한번 만져보게”

제페토의 시와 조금 달라진 하림의 곡은 수수하다. 민중가요 초창기인 1980년대 초반 교회 쪽에서 불렀던 노래를 닮은 이 곡은 그 수수함으로 내내 애틋하다. 경건하면서도 간절한 노래는 소박한 결이 돋보인다.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9.17
가수 하림 씨가 17일 서울 금천구 작업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09.17ⓒ김철수 기자

하림이 노래를 올린 뒤 여러 뮤지션들과 시민들이 제각각 다른 악기와 편성으로 노래를 이어 부르는 중인데, 9월 29일 화요일까지 120명이 넘는 목소리와 연주가 쌓였다. 우쿨렐레, 클래식 기타, 시타르, 어쿠스틱 기타, 첼로, 칼림바, 클라리넷, 튜바, 피리, 피아노, 하프, 합창, 해금 등으로 이어간 곡들을 듣고 있으면, 초반부의 먹먹한 슬픔과 후반부의 간절한 마음이 각기 다른 악기와 목소리로 조금씩 다르게 이어지고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림이 민중가요 진영에서 활동한 뮤지션이 아니고, 폭넓게 활동한 뮤지션이었기 때문인지 김마스타, 메이트리, 안녕바다의 나무, 연리목, 좋아서하는밴드의 조준호, 호란, 뮤지컬 배우 김사랑 같은 음악인들의 목소리도 만날 수 있다. 정의당 국회의원 장혜영, 고 김용균 열사의 어머니인 김용균 재단의 김미숙 이사장, 민주노총의 활동가들과 민중가수 조성일도 목소리를 더했다. 전국 곳곳에서 시민들의 참여도 꾸준하다.

노래를 만들고 공유하는 방식이 대개 한 뮤지션의 노래를 듣고 구매하거나 공유하는 방식이었던데 반해, 이 챌린지는 각자 노래를 불러 올림으로써 싱얼롱(sing-along)하는 방식을 취했다.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기술의 도움을 얻어 노래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찍고 공유할 수 있다. 이는 달라진 세상 속에서 노래를 나누는 다른 방법을 보여준다.

프로젝트퀘스천 '그 쇳물 쓰지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
프로젝트퀘스천 '그 쇳물 쓰지마라' 함께 노래하기 챌린지.ⓒ제공 = 프로젝트퀘스천

하림이 MR을 만들었지만 나이/직업/성별/지역이 모두 다른 이들이 연주하고 부르는 순간, 노래는 그 사람의 목소리와 연주와 분위기를 담고 그 사람의 노래가 된다. 그러므로 챌린지에 올라온 120여곡은 모두 다른 노래다. 120여명 모두의 간절한 기원이고 연대이다. 노래하는 이들이 능숙하지 않아 음정, 박자를 틀리기도 하지만, 종종 울음이 배어 있는 노래가 이어진다. 이 2분 안팎의 시간 동안 우리는 진심을 다해 노래하고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숙연해진다. 노래에 힘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힘일 것이다. 이 챌린지는 그 힘을 만나는 드문 순간을 열어준다.

코로나19 유행과 정치권의 정쟁, 남북관계의 긴장 등 이슈들이 끊이지 않는 세상 한 켠에서 노래는 이어졌다. 노래 덕분인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에도 불이 붙었다. 아직 법은 제정되지 않았다. 노래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기엔 세상이 한 번도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챌린지에 올라온 120여곡을 듣고 있으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는 이들의 간절함으로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죽음은 너무 가깝고 희망은 너무 멀어 보이는 날들이지만, 어떤 노래는 오늘도 멈추지 않아 인간다움을 지킨다. 그 순간만큼은 지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노래가 세상을 이겼다. 그러니 노래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강아솔, 강태구, 김은희, 꽃다지, 박혜리, 선우정아, 안치환, 연영석, 예람, 옥상달빛, 장필순, 한동준, 그리고 더 많은 뮤지션들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같은 시를 먼저 노래한 이지상의 노래도 함께 듣고 싶다. 노래가 멈추기 전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고, 노동자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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