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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천의 일과 법] ILO 가입 30주년, 노조법은 ‘K방역’처럼 될 수 없나

1991년 10월 9일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업종별노동조합회의,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전국노동단체연합이 중심이 되어 ‘ILO 기본조약 비준 및 노동법 개정을 위한 전국노동자공동대책위원회(ILO공대위)’를 결성했다. 당시에는 매년 11월 초에 개최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위한 집회신고에 대해 경찰이 항상 금지통고를 하여 적법한 개최 자체가 불가능하게 만들었는데, ILO공대위는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법적 절차를 밟아 1992년 11월 8일 최초의 합법적인 노동자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 당시 노동자대회의 공식 명칭은 ‘ILO 기본조약 비준, 노동법 개정과 민주대개혁을 위한 전국노동자대회’였다(당시 노동자대회의 합법적 개최를 위해 긴박하게 법적 절차를 진행했던 상황은 김선수, 「노동을 변호하다」, 오월의 봄, 2014, 76~83쪽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1992년 11월 10일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자료사진)
1992년 11월 10일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전국노동자대회(자료사진)ⓒ자료사진

우리나라는 1991년 ILO 가입 이후, 1996년 OECD 가입, 2006년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진출을 했고, 2010년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노동기본권을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하고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ILO 핵심협약이란 ILO가 체결한 189개 협약 가운데 모든 회원국에 의해 비준·시행되어야 할 4개 분야(차별금지, 아동노동 금지, 결사의 자유, 강제근로 금지) 8개의 협약으로, 우리나라는 차별금지 및 아동노동금지에 관한 4개 협약은 비준하고 있지만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협약, 제98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 강제근로 금지에 관한 협약(제29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제105호 강제노동 철폐에 관한 협약)은 비준하지 않고 있다. 총 187개의 ILO 회원국 중 제87조 협약은 155개국이 비준하였고, 제98호 협약은 166개국이 비준하였다 (2018년 기준).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고 2019년 ILO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핵심협약을 비준하고자 계획했지만 실행되지 못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과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이 20대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국회 임기 만료에 따라 폐기되었다. 이후 정부는 올해 6월 30일 노조법 개정안을, 7월 14일 핵심협약 비준동의안을 21대 국회에 다시 제출하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노조법 개정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차원에서 논의되어 왔고, 결정적 계기는 한-EU FTA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한-EU FTA라는 대외적 상황이 노조법 주요 내용에 대한 개정 논의의 직접적 계기가 되긴 했지만 해고자와 특고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 등을 비롯하여 노동자들의 단결활동을 둘러싼 국내 노동환경의 급격한 변화와 노동현장에서의 지속적인 요구, 노조할 권리의 실질적 보장을 위한 법 개정 필요성, 관련 판례의 변화 등으로 인해 노조법 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현행 노조법이 현장 상황과 법원 판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21대 국회에 제출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간략히 요약해 보면 ①기업별 노동조합에서 해고된 조합원의 근로자성이 부인되는 것으로 보고 있는 현행법상 규정 삭제, ②어느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지 않는 조합원의 경우, 일정 조건 하에서 당해 사업장에의 출입 및 노조활동이 가능하도록 보장, ③노동조합 임원 자격을 노동조합 규약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되, 기업별 노조의 경우 임원이나 대의원의 자격은 그 기업 종사자인 조합원으로 제한, ④노조 업무에만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한 사용자의 급여지급을 금지하는 현행법상 규정 삭제, ⑤사용자가 노조 업무에만 종사하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경우, 해당 근로자는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조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하는 내용의 단체협약이나 사용자의 동의는 무효, ⑥복수 노조 상황에서 사용자가 개별교섭을 하는 경우, 각 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차별대우 금지, ⑦단체협약의 유효기간 상한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⑧생산 및 그 밖의 주요업무에 관련되는 시설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쟁의행위 금지 등이다.


ILO 가입 30년, 미룰 수 없는 노조법 개정
지적사항만 담은 최소한의 개정안, 미흡함 많아
현실 반영한 노조법 개정 논의 이어져야


노조법 개정은 노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여러 쟁점들을 안고 있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그간 주로 ILO로부터 지적되었던 점들을 수정하여 노조법이 핵심협약과 충돌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본다. 또한, 해고자 역시 노조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은 이미 2004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확인된 이후 법조계와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는 바이고, 어느 사업장의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도 일정한 조건 하에서 당해 사업장에 출입하여 노조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대법원 판결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어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흡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ILO는 여러 차례 우리 정부에게 비조합원의 노조 임원 자격을 부정하는 현행 노조법 규정의 폐지를 권고한바 있어 개정안은 ILO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못 미치고 있다. 다만, 노조의 상당수가 기업별 노조인 우리나라에서 노조 임원이 단체교섭과 쟁의행위를 주도하는 특유의 현실을 고려한 절충적인 안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판례는 예전부터 사업장 시설의 부분적・병존적인 점거로서 사용자의 재산권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직장점거 형태의 쟁의행위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는데, 개정안에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그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하는 형태로 이를 행할 수 없다고 하여 마치 이러한 시설에서는 점거형태의 쟁의행위를 전혀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제가 있다.

ILO 핵심협약 비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노동현장에서 제기되어온 노조법상의 여러 쟁점들에 관한 내용은 개정안에 담기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특고노동자, 사내하청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개선방안, 파업시 사용자의 노조에 대한 과도한 손해배상청구 및 파업 참가자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문제, 교창구단일화제도로 인해 노동조합의 교섭권이 위축되거나 초기업 교섭을 어렵게 하는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 등은 보이지 않는다. 향후 노조법 개정 논의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도 개선안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과 ILO긴급공동행동 등이 지난해 6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촉구 공동행동의 날 집회에서 열고 정부에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것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6.01
민주노총과 ILO긴급공동행동 등이 지난해 6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촉구 공동행동의 날 집회에서 열고 정부에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것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9.06.01ⓒ김철수 기자

2020년도 이제 3개월 남짓 남았다. 내년이면 ILO공대위가 만들어진지도, 우리나라가 ILO에 가입한지도 30년이 된다. 주 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 홈페이지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한국은 1991년 12월 9일 152번째로 가입했으며, 1996년부터 24년 연속 이사국으로 선출되었고 비교적 빠른 기간 내 이사회 의장직(2003-04년)을 맡는 등 ILO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원국 중 분담금 납부 규모가 열세 번째(2018-19년)인 책임 있는 회원국으로서 ILO 협약・권고의 채택, 예산 및 주요사업의 결정 등에서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논의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K-POP, K방역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는 최근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ILO의 ‘책임있는 회원국’에 어울리는 2021년의 변화된 노조법을 기대해본다.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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