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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일하다 숨진 노동자를 기억하는 ‘걸림돌’

전 세계적으로 나치 희생자들의 마지막 거주지에는 10cm*10cm의 작은 황동 표지판이 묻혀있다. 이 표지판은 해당 장소의 보도블럭이나 벽돌 틈에 묻히는데, 거주자의 이름과 생몰연도가 새겨져 있다. 이것의 이름은 ‘걸림돌(Stolpersteine)’이다. 이 표지는 아무 생각 없이 그 건물을 드나드는 이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걸음을 멈칫하게 한다. 한편으론 잠시라도 역사와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게 일상의 ‘걸림돌’이 된다.

지난 1992년 한 미술가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그 뒤로도 이어져, 현재는 전 세계 곳곳에 7만여 개의 ‘걸림돌’이 설치돼 있다. ‘걸림돌’은 모름지기 장소 입구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세워져 누구의 마음도 불편하게 하지 않는 기념물은, 우리 일상에 균열을 가져올 수 없고, 역사와 인간을 생각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치 독일 시절의 홀로코스트 피해자 캐롤리나 콘과 그의 가족을 추모하는 '걸림돌' 표지판 4개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치됐다. 미국 매릴랜드에서 온 맨디 앨리스먼 씨는 그의 네살난 아들 레비와 함께 콘 가족을 추모하며 이곳에 꽃을 바쳤다. 2017.11.13
나치 독일 시절의 홀로코스트 피해자 캐롤리나 콘과 그의 가족을 추모하는 '걸림돌' 표지판 4개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설치됐다. 미국 매릴랜드에서 온 맨디 앨리스먼 씨는 그의 네살난 아들 레비와 함께 콘 가족을 추모하며 이곳에 꽃을 바쳤다. 2017.11.13ⓒ사진 =AP/뉴시스

비슷한 방식으로 산재 피해 노동자를 기억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저 화려한 빌딩 입구에, 공사장 흙을 다지고 건물을 세우다 사망한 노동자의 이름을 새겨둔다면? 엄청난 화물을 싣고 전 세계 바다를 돌아다니는 유조선 뱃머리에 회사 이름과 함께, 배를 만들다 사망한 노동자의 이름을 같이 적는다면? 영화를 만들다 사망한 스태프의 이름이 엔딩 크레디트(ending credit)에 나오는 것처럼, 게임을 개발하다 과로사한 노동자의 이름이 게임 시작 로딩 화면에 뜬다면?

이는 당연히 멋지고, 화려하고, 재미있는 우리의 일상에 불편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이 이렇게 가까이 자주 보이고 기억된다면, 매년 산재 사망사고로 천 명씩 사망하는 일상의 비극을 조금은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에서는 아직 꿈 같은 얘기다.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고 김용균 노동자의 유가족과 시민대책위원회는 60여일 간 투쟁한 끝에, 2019년 2월 초 원청 회사인 서부발전과 합의를 이끌어 냈다. 합의 내용 중에는 유가족 배상과 진상 조사, 발전소 내 안전 조치 강화 외에 발전소 내에 김용균 노동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당시 합의 내용에 따르면, ‘화력발전소 내에 장소를 협의하여, 유족과 시민대책위가 원하는 추모조형물’을 세우기로 돼 있었다.

이후 실무 합의에서 유족과 대책위원회는 추모조형물을 발전소 내 본사 건물 앞에 세우자고 했다. 합의 내용을 처음 봤을 때, 시인 제페토의 ‘그 쇳물 쓰지 마라’란 시가 생각났다. 청년 노동자가 빠져 숨진 쇳물을 아무 데도 쓰지 말고, ‘살았을 적 얼굴 빚어서’ 회사 정문 앞에 세워두고, 가끔 엄마가 찾아와 만져보게 하자는 구절이 떠올랐다.

9일 오전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의 민주사회장이 열렸다. 고인이 근무하던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가 열리고 있다.
9일 오전 충남 태안화력에서 설비 점검 도중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 노동자의 민주사회장이 열렸다. 고인이 근무하던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1차 노제가 열리고 있다.ⓒ김철수 기자

잘 보이는 자리에 조형물을 세우고 싶었던 시인이나 유족의 마음은, 또다른 ‘걸림돌’을 세우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화려하고 거대하고 대단한 사업의 한 켠에 산재 사망 노동자‘도’ 기억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화려하고 거대하고 대단한 사업을 마주할 때마다 ‘먼저’ 거기서 일하다 숨진 노동자를 떠올리며 멈칫하기를 바랐으리라. 본사 건물 앞에 세워진 추모 조형물을 보고 사람들이 불편하기를 원했을 것이다. 산재 사망 노동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은 불편한 게 당연하다. 그 불편함이 ‘일하다 죽을 수도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그래야 달라질 수 있고, 더 이상 죽거나 다치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당진 용광로에 사망한 청년 노동자 10주기를 맞아 시작된 ‘그 쇳물 쓰지마라’ 노래 부르기 챌린지가 널리 퍼진 지금까지, 김용균 노동자의 2주기가 두 달 뒤로 다가온 지금까지, 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앞 김용균 추모 조형물은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초반 실무 협의에서 원청이 여러모로 난색을 표하자, 유가족과 대책위가 조각가와 의논 끝에 조형물의 크기도 줄이고, 형태도 양보했지만, 여전히 서부발전은 추모비 건립을 미루고 있다. 이제 와서 당초 합의보다 더 작은 크기로, 회사 안쪽 하청 회사 앞에 세우자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세워진 추모비는 세운 사람의 마음을 달래려는 용도이지, ‘걸림돌’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추모비를 만들었다’는 위안이 아니라, ‘지금도 노동자가 위험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다’는 현실을 깨닫게 할 일상의 걸림돌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김용균재단은 10월 6일부터 충남 서산 서부발전 본사 앞과 서울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다. 부디 김용균 노동자의 2주기 전에 태안 화력발전소 내에 추모조형물이 세워지길 바란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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