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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만난 하나님] 한국 교회와 성인지 감수성
루카스 카라나흐가 16세기에 그린 예수와 간음한 여인
루카스 카라나흐가 16세기에 그린 예수와 간음한 여인ⓒ기타

오늘날은 공감, 자존감, 성인지 감수성과 같은 ‘감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이다. 요즘 유트브에서 핫한 김창옥 tv 힐링 아지트 강연이나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의 강연은 ‘감성’에 대한 이야기들로 사람들의 상처와 우울을 달래주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김창옥 교수가 ‘감성’을 ‘돈’으로 표현한 내용은 인상적이다. 그에 따르면, 감성이 풍부한 사람은 상대방이 화를 내어도, 상대방의 감정을 헤아리는 마음의 여유까지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과 의사 정혜신이 “내 존재의 실체는 가치관이나 신념이 아니라, 내 느낌, 내 감정이 곧 ‘나’에요”라고 한 말도 통찰을 준다.

이 두 사람의 강연이 인상 깊게 다가온 데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고 난 후, 인간의 감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우울증 자체보다도, 교회가 우울증을 정죄하면서 여성의 감정에 몰인정한 태도였다. 교회에서 가르친 신앙은 마치 하나님이 남성 편인 것처럼 강조되었고, 그로 인해 교회 여성들이 경험하는 성차별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들은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할 것들로 치부되었다. 우리 사회는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교회는 성 평등에 대한 왜곡된 인식으로 여성의 감성을 공감하거나 위로해주지 못하는, 이른바 성인지 감수성이 결여된 곳이 돼버린 것이다. 2012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20-40대 교회여성 1,3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젊은 여성들이 교회의 불평등한 성 역할과 성차별, 소통부재로 인해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다는 이유들이 이를 대변해준다. 젊은 여성들이 교회를 떠나면, 젊은 남성들과 미래 세대가 자동적으로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기독 신앙에서 공감과 성인지 감수성의 중요성

아브라함 헤셀은 「예언자들」이라는 책에서, “예언자의 정신에는 감정적인 동정의 종교가 복종의 종교보다 더 잘 맞는다 (…) 종교적 동정의 특징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감정의 방향 수정이다. 동정은 대화적인 구조를 지닌다...하나님의 관심은 연민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기독 신앙에서 연민과 동정은 중요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복음서를 읽노라면, 예수님의 측은지심(sympathy)은 사랑에 불을 지피는 자비의 동력임을 발견하게 된다(마 14:14, 20:34; 막 1:41, 6:34; 눅 7:13).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눅 7:34)라고 놀림을 받을 만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비천한 자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셨다. 그런 비천한 자와 죄인들의 범주 속에 여성들이 있었다.

이탈리아 화가 자코포 바사노가 그린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에 계신 예수
이탈리아 화가 자코포 바사노가 그린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의 집에 계신 예수ⓒ기타

특히, 예수님이 여성들을 만나 대화했다는 것은 유대사회의 가부장적 문화규범과 랍비 전통의 질서를 깨야만 가능했던 일이었다. 예수님이 만난 여성들은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막 16:9), 나사로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눅 10:38-42), ‘열 두해 혈루증을 앓은 여인’(눅 8:45-48),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의 귀신들린 딸’(막 7:25-6), ‘18년 동안 귀신들려 꼬부라진 여인’(눅 13:10-7),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요 8:1-11), ‘사마리아 여인’(요 4장)처럼, 때론 이름도 없는 소외되고 부정한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유대 사회의 가부장의 질서와 랍비 전통을 깨면서까지 여성들과 교제하는 길을 열어, 그들의 처지와 아픔을 공감하며 치유와 생명을 선사해준 인격적이고 따뜻한 분이셨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자 이야기를 보면, 예수님은 남자에게만 이혼권이 주어졌던 유대 사회에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사마리아 여자의 처지를 공감해준 분으로 묘사된다. 필자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있어 예수님은 선지자이며 구주이기 이전에, 그녀에게 친절을 베풀며 하나님의 은총을 선물한, 그야말로 성인지 감수성이 풍부한 최초의 멋진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이런 해석이 오늘날 성차별로 인해 상처받은 교회여성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닐까!

여성의 종교성은 죄책감이 아닌 복음적 자존감으로부터!

내가 속한 예장 합동교단은 “여성은 감정적이라 통제받아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로 여성의 감성을 배제하다 보니 공감과 사랑은 메말랐으며, 성인지 감수성이라곤 조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곳이 돼버렸다. 합동총회에서 발행한 초등부 공과(1999)에서 십자가 지러 가시는 예수님이 슬피 울며 따라가는 수 많은 여인들을 향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눅23:26-9)고 한 말씀을 “예수님이 슬픈 감정에만 사로잡히는 여성들을 교정해주는 것”이라는 해설을 보고선 어이가 없었다.

2017년 열린 예장 합동 총회장 앞에서 여성안수 허용을 요구하는 총신대 여동문회 회원들.
2017년 열린 예장 합동 총회장 앞에서 여성안수 허용을 요구하는 총신대 여동문회 회원들.ⓒ기타

합동교단은 왜 십자가의 증인이 된 여성들의 소중한 신앙적 행위를 고작 ‘슬픈 감정에 머무는 여성’으로 몰아가는 것일까? 열두 제자들이 다 도망간 상태에서(마 26:56b), 십자가의 유일한 증인이 된 여성의 역할을 왜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일까? 나는 골고다 죽음의 길 위에서조차도 자신보다 슬피 울며 따라가는 여인들을 달래며, 앞으로 전개될 십자가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고된 사명을 위로해주는 예수님의 연민과 따뜻함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지는데 말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여성들의 슬픈 감정이야말로 삼엄한 로마 군병의 엄호를 뚫고서 마침내 십자가의 증인이 되게 한 원동력이라고 보는 데 말이다.

종교 심리학자 권수영은 정신 분석적 심리학 연구에서 다루는 죄책감, 수치심, 자아 정체성 등은 종교의 중요한 주제라고 하였다. 그는 죄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구원을 추구하는 것과 참된 나를 찾아 탐구하려는 구도적인 태도 모두 종교 현상이라고 하였다. 돌이켜보면, 필자도 남성 설교자들이 마구 쏟아낸 성차별적인 관행과 교회문화로 인해, 여성 스스로의 정체성을 갖기 전까지는 ‘쓸데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기 비하와 낮은 자존감 속에 우울한 신앙생활을 해왔다. 가부장적 신앙을 학습 받은 여성들은 대체로 ‘자기 부인’을 ‘자기 비하’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여성의 종교성은 죄책감이 아닌, 복음적 자존감으로부터 나와야 건강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없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발견하는 복음적 자존감과 이에 따른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와 성인지 감수성

페이스북(facebook)에서 어느 정신과 의사는 우울과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10~40대 여성들을 치료하는 중에, 약물로도 치료되지 않는 원인 중 대부분의 여성이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음을 발견하고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남성들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그냥 입을 다무는 게 그나마 성인지 감수성의 기본이라고 조언해준다. 본인이 남성임에도 여성을 진료하다가 남성을 혐오할 정도라고 토로하는 그 의사의 글을 보면서, 예수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다는 교회 남성들보다 교회 밖에 있는 남성들이 훨씬 더 공감능력과 성인지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2018년 11월 6일 서울 종로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교회 내 그루밍 성폭력 고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여성들.
2018년 11월 6일 서울 종로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열린 교회 내 그루밍 성폭력 고발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해 여성들.ⓒ뉴시스

2020년 한국교회 특히 합동교단 총회의 주요 결의안은 남성 목사의 정년 연장 건, 여성 안수 불가 건을 다룸으로써, 60대 남성 목사를 위한 남성 집단임을 재확인시켰다. 목사의 성범죄가 끊이지 않음에도, 남성으로만 구성된 당회, 노회, 총회라는 의사결정기관에서 오히려 목사의 성범죄를 은닉해주면서, 목사를 면직하는 징계조항과 피해 여성을 보호하고 신원해주는 법적 조항을 마련하는 데는 아예 관심도 없다.

또 고신교단 헌법을 보면, 남성만이 ‘항존직’을 취하는 교회구조 속에서 “이혼 경력이 있는 자를 ‘항존직’ 직분자로 세우지 않는다”고 명시함으로써, 남성들이 가정에서 젠더 불의와 가정폭력을 야기할 수 있음을 방기, 방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인간의 성 활동에 의해 이뤄지는 사랑과 결혼, 성추행과 불법 촬영, 강간과 간통, 미성년자 성폭행, 낙태와 같은 젠더문제에 대해 여성의 경험과 입장은 무시한 채, 남성 중심의 교리적 잣대로 교회법과 직분제도를 고수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하지만 교회헌법의 근간이 되는 십계명과 그리스도 복음의 강령을 보아도, 기독윤리와 성 활동에서의 거룩함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남녀 모두에게 요구하는 삶의 행동강령이다. 게다가 젠더는 사회적이며 인격적인 요소로서 신앙과 경건에 있어 중요한 현실적 요소이기에, 젠더 문제는 더 이상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정의의 문제요, 기독 신앙과 인간성 회복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성인지 감수성이야말로 인권 감수성이며, 남녀가 평등하게 교제하면서 하나님 형상 회복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지녀야 할 복음적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한국교회가 여성의 입장과 경험을 이해하며 성인지 감수성을 구비하도록 노력하면 좋겠다. 어쩌면 성인지 감수성은 교회를 떠난 여성들이 다시 교회로 되돌아오는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를 일이다!

강호숙 박사(기독인문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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