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관련 정부 긴급대책이 나올 때마다 해당 정책과 행정처리에 대한 민원 및 문의가 빗발쳐 각 부처 콜센터 업무가 폭증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렇지만 공공의 안전과 긴급한 시민들의 생존을 위한 조치가 ‘하청노동’에 기대어 이뤄지는 현실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할까.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정부민원콜센터는 ‘민간 위탁’ 방식으로 고용된 하청노동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정부민원콜센터는 주로 정부 정책이나 행정에 대한 민원 전화를 받는데, 코로나19 확산 이후 그야말로 ‘콜 폭탄’을 맞았다. 정부가 지난 2월 ‘마스크 대란’이 일자 마스크 수급을 관리했을 때, 5월 전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시작했을 때, 6월 긴급고용지원금 지원을 시작했을 때 업무가 급증했다. 하청업체의 업무 폭증이 예상됐지만 원청회사 권익위는 인력충원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정부 각종 정책에 대한 교육, 민원인 응대 매뉴얼 교육 등도 간략한 메신저 쪽지 전달로 대신했다.
2019년 5월엔 23만통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2020년 5월에 걸려온 전화는 45만통을 넘었다. 전화를 받아낸 수치를 표시하는 응대율이 전년 대비 94.3%에서 76.5%로 떨어졌다. 전년보다 같은 기간의 46.8% 만큼 전화를 더 받아냈는데도 그랬다. 응대율이 80%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이다. 밀려드는 콜의 양 뿐만 아니라 콜의 질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30분에서 1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겨우 연결되는 사람들은 이미 분노에 차 있다. 어설프게 끊었다가는 다시 전화가 연결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민원이 해결되기 전까지 결코 끊으려 하지 않는다.
흔히 콜센터 노동을 ‘감정노동’이라 부른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6조에는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감정노동자를 위한 조치로 콜센터 연결시에 “고객 응대직원에게 따뜻한 대화 부탁드립니다”라는 식의 사전 안내를 들어야 콜센터 노동자와 연결된다. 이러한 사전 안내는 ‘전화 에티켓’이 갖춰져 있지 않은 분노한 개인들을 전제한 것이다.
하지만 콜센터에 한 번이라도 전화해 본 사람은 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화를 내게 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잘 알고 있다. 상담원을 괴롭히기 위해 시작부터 화를 내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데도 저녁시간대로 갈수록 분노하는 콜이 늘어난다. 간단한 민원인데도 한 번의 전화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여러 번 다시 전화를 걸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분노가 생산되고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콜센터는 구조적으로 감정을 생산한다. 콜센터의 본질이 민원 해결이 아니라, 민원 방어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부나 특정 기업에 전화를 거는 것이지만 콜센터에 전화를 받는 이들은 해당 업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 공무원도, 해당 기업 업무 담당자도 아니다. 원청과 하청으로 분리된 산업구조에서 하청노동자인 콜센터 노동자들에게 업무 권한이 주어질 리가 없다. 콜센터 하청노동자에게 실질적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담당자 바꾸라’고 요구하지만, 어떤 콜센터에서든 절대 해서는 안 될 안내가 담당자 연락처를 알려주는 일이다.
그렇지만 콜센터 노동자가 민원 관련 부서 담당자에게 민원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민원인을 응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원‧하청 구조에서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에겐 간단한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바로 응답할 수 있는 내용도 절차에 따라 몇 단계를 거쳐야만 하는 경우가 많다. 콜센터 하청노동자가 답변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주어진 매뉴얼 외 답변을 하지 못하는 동안, 문의하던 민원인들의 심정은 짜증에서 분노로 진화한다.
민원인과 콜센터 노동자가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한편에선 분노가 생산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울이 축적된다. 이렇게 1차방어, 2차방어를 통해 걸러진 민원만 원청으로 올라가 ‘해결’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런 구조에서 콜센터는 끈질기게 분노할 수 있는 민원인과 끈질기게 분노를 받아낼 수 있는 노동자들의 감정만 생산되는 곳이 된다. 서로의 다양한 감정들을 태우고 정신과 신체를 녹여내, 오로지 전화 너머의 타인에 대한 적개심과 우울감만 순환되는 곳이 된다.
중앙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에도 콜센터가 설치되어 있다. ‘친절행정’, ‘다가가는 행정’을 하겠다며, 콜센터를 통해 민원을 접수하고, 홈페이지나 이메일, SNS를 통해 소통하겠다고 내건다. 그런데 그 소통은 직접 이뤄지는 게 아니라 주로 ‘외주화’되어 있다.
콜센터가 민원 ‘방어’가 아니라 민원 ‘해결’ 창구가 되게 하려면 답은 간단하다. 하루 적정 콜수가 어느정도인지 사측이 노동자와 합의하고, 이에 맞게 인력운영을 하면 된다. 답변을 위한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노동자에게 주게 되면 분노 유발 민원들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콜수 합의는 원‧하청간 도급계약으로 미리 정해져 있다는 이유로, 하청업체에서 조절하기를 거부한다. 견디다 못한 하청노동자들이 원청과 직접 합의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면, 이번엔 원청에서 ‘그럴거면 왜 하청을 주느냐’고 뻗댄다.
‘직접 고용’과 ‘실질적인 권한 및 책임 부여’란 간단한 해결책을 금기시하니 날이 갈수록 상황이 더 꼬이기만 한다. 정부와 공공부문 사용자들에게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안내 멘트를 제작해 하루종일 들려주고 싶다.
“고객 응대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고용 부탁드립니다”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