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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의 삶과 문학] ‘나무가 나무에게’
- 이산하 시인의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
- 이산하 시인의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기타

이번 가을은 유난히 반짝인다. 하늘도 바람도 빛도,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눈동자도. 그런 날들 중 하루, 나는 특별한 생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SNS 공간에서 친분을 나누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녀가 그 자리에 나를 초대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미국 워싱턴에 살고 있는데, 귀국길에 내게 어울릴 만한 붉은색 립스틱을 선물로 사가지고 왔다고 했다. 나는 해외입국자 자가 격리 기간을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 최근에 출간한 나의 책을 보냈다.

그날의 주인공은 ‘30일간의 일시적 입국금지 해제’로 7년 만에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그녀의 남편 장민호 씨였다. 장민호 씨는 2000년대의 한 공안사건으로 7년 형을 선고받고, 만기출소 후 ‘입국불허 5년’을 조건으로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당시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연루되었던 사건에 대해 나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법이 적용한 모든 형벌을 치룬 셈이고, 아픈 노모와 누나, 함께 해야 할 가족이 한국에 있기 때문에 추방기간이 지난 뒤 여러 차례 돌아오려 했으나 돌아오지 못했다. 그보다 훨씬 이전, 70년대 유신통치 말기의 공안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에서 긴 망명생활을 하다가 훗날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로 잘 알려진 홍세화 씨는 1982년 프랑스 정부가 자신의 망명을 승인하며 내어준 체류증과 여행문서에 ‘갈수 있는 나라:모든 나라, 갈 수 없는 나라:코레’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말했다. 워싱턴으로 추방되어 그 역시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는 장민호 씨에게도 한국만이 ‘갈수 없는 나라’였다.

그래서 그날 내가 그들 부부에 대해 궁금했던 것은 당시의 사건이나 그들의 사상 같은 것이 아니었다. 법에 의한 격리, ‘갈 수 없는 나라 5년’이 훨씬 지났는데 장민호 씨는 왜 돌아오지 못하는가. 30일의 짧은 기간, 그조차 코로나 시절의 방문으로 절반은 스스로를 격리하고, 나머지 절반의 날들을 요양원과 병원의 유리창 밖에서 노모와 누나를 만나야 했던 그는, 왜 돌아가야 하나. 그뿐이었다.

‘나무들도 서로 영양분을 나누지 않으면 더 빨리 죽고 죽은 나무도 금방 썩어 숲에 구멍들이 뚫린다. 그럴 때 태풍이 오면 옆의 나무들도 쉽게 쓰러져 죽는다.’
- 이산하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 ‘나무가 나무에게’

그날은 장민호 씨의 강제출국 이틀 전이었다. 곧 홀로 돌아가야 할 남편을 위해 그녀가 지인들을 초대해 마련한 저녁식사 자리에는 또 다른 특별한 ‘생’이 등장했는데, 이른바 제주 4.3항쟁을 다룬 장편서사시 <한라산> 필화사건의 시인, 이산하였다. 33년 전, 감옥의 독방에 갇힌 27세 청년시인 이산하가 자신의 고무신 뒤축을 입으로 물어뜯어 마지막 길을 떠나는 옆방의 사형수에게 건네주었던 그때처럼, 조금은 기울어진 걸음으로 그날의 식사 자리에 나타난 것이다.

‘필시 먼 길 떠나는 줄도 모를 그가 조금만이라도 햇볕을 더 쬐고 가라고 난 일부러 신발이 헐렁하도록 이로 찢어놓았다.’
-<생은 아물지 않는다>, ‘찢어진 고무신’ 편

시인은 ‘한라산 필화사건’ 33년 만에 재심을 신청했다고 우리에게 전했다. 위 산문집에 수록된 ‘마음의 감옥’ 편에 따르면, 2018년 ‘제주 4.3 70주년 추념식’에서 가수 이효리가 그의 시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낭송하고, 추념사를 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입에서 ‘이산하 시인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이란 말이 흘러나왔을 때, 그는 ‘이산하라는 이름이 30년 만에 유배가 풀렸다’고 생각했다. 1987년에 구속된 이후부터 석방되고 나서까지 그의 이름은 ‘좌우 모두가 기피하던 금기’가 되었다고.

‘몸은 감옥에서 석방되었지만 세상 속 내 이름은 여전히 갇혀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마음의 감옥’ 편

“추방 5년이 지났는데 왜 돌아올 수 없는 거죠?”
“발생한 죄가 없고 적용할 법이 없는데 무엇으로 추방을 실행하나요?”
그날의 식사 자리에서 내가 그들에게 물었던 것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내게로 되돌아왔다. ‘법무부의 재량이라더라’고 대답하던 장민호 씨의 쓸쓸한 표정이 나의 두려움을 향한 것은 아니었을까. 당국이 그에게 요구했다는 ‘체류기간의 활동계획서, 일별, 장소별로 만날 대상’에 나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런 막연한 공포가 장민호 씨의 추방을 연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산하라는 이름은 정말 유배에서 풀려난 것일까. 그들을 만나기 전에도 후에도 나는 두려워했고 망설였다.

오래전에 잘린 나무 그루터기가 살아있는 이유는 주변 나무들이 그루터기 뿌리에 자양분을 공급해줬기 때문이라고. 이웃 나무들이 최대한 오래 버티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다고. 그 애정과 결합의 정도가 강한 숲일수록 더 오래 유지된다고. 숲이나 산을 걷다가 발견하는 살아남은 밑동은 그런 우정과 상호 연결의 결과라고. 이산하 시인은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의 거의 전편에 걸쳐 말하고 있다.

네가 살아남는 곳이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이산하 시인 (1960년~)
1987년 ‘제주 4.3항쟁의 학살과 진실을 폭로하는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석방 이후 10년의 절필, 여러 인권단체에서 활동. 저서로 시집 <악의 평범성> <한라산> <천둥 같은 그리움으로>, 성장소설 <양철북> 등이 있고, 2020년 9월,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이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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