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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회장 된 정의선과 문재인 공정경제 상법

정의선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2년 전 부회장에서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던 때처럼 새삼스럽다. 부회장인 총수 일가 직함 앞에, 수석을 붙인다고 영향력이 더 커지는 것인지, 수석부회장 명패를 회장으로 바꿔 달면 없던 권한이 생기는지 궁금하다.

20년 만에 회장이 바뀐다는 상징성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의선 부회장은 수년 전부터 공식 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정몽구 회장을 대신해 주요 의사 결정을 내리는 실질적 회장이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언제 회장으로 승진했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가 회장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아닌지 검증했냐가 중요하다. 매출액 180조원(현대차 105조, 기아차 58조, 현대건설 17조원_2019년) 규모의 글로벌 완성차 그룹 최고경영자를 합리적으로 결정했느냐는 것이다.

현대차 발표문에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는 임시이사회를 개최하고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회장 선임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고 적혀있다. 주식회사 주인이 주주고, 주주가 선임한 이사들이 이사회를 통해 회사의 중요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상법을 충실히 지켰다는 점을 강조 하는듯 하다.

이사회가 정말 합리적 검증을 거쳤을까. 날고 기는 세계적 경영자를 객관적 기준으로 선정하고 옥석을 가려 ‘회장 선발 최다 득점자는 정의선’이라고 결론 내린 것인지, ‘총수 일가 결정이니 우리는 그 뜻을 따른다’라고 선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지난 2018년,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충칭시 현대자동차 제5공장을 방문해 정의선 부회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
지난 2018년, 중국을 국빈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충칭시 현대자동차 제5공장을 방문해 정의선 부회장의 영접을 받고 있다.ⓒ제공 : 뉴시스

이사회 결정 감시할 ‘공정경제 3법’ 중 상법 개정안
현대차 전근대적 지배구조 순환출자 극복 단초 될까

주주 대신 총수 일가 편을 종종 들었던 재벌 이사회를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여론은 총수 거수기로 보는 쪽이 우세하다. 상법은 이사회 활동을 감시하는 감사를 두도록 하지만, 감사 조차 총수 영향력 아래에 있어 견제 효과는 유명무실했다.

정부와 여당은 감사 역할을 복원하는 ‘공정경제 상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법은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구성원인 이사를 한꺼번에 선출하고, 이사 중 일부가 감사를 맡게 돼 있다. 대주주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이사를 선출했고, 그들 중에서 감시자가 선정되니 칼끝이 무뎌지는 구조였다.

‘공정경제 상법’은 이사회를 견제할 감사는 따로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감사 분리선출제다. 이사를 한꺼번에 선출하고 이들 중에서 감사를 뽑지 말고, 이사는 이사대로 감사는 감사대로 각각 선출하자는 내용이 골자다.

이사와 감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출하는데, 감사를 따로 선출할 때는 총수 일가 등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해 영향력을 최소화하고, 반대로 소액주주의 참여 방법은 넓혀 감시 기능을 회복하자는 방안도 담겼다. 총수 일가가 좌지우지하는 이사회가 아닌 주주 뜻이 반영되는 이사회로 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현대차 그룹은 총수 일가 입김이 유독 강하다. 낮은 지분율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은 큰 구조다.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가진 현대자동차 지분을 합하면 7.9%에 불과하지만, 그룹 계열사 현대모비스의 현대차 지분이 21.4%로 최대주주이기 때문에 현대차를 지배할 수 있다.

현대차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의 최대주주 역시 정몽구 명예회장이나 정의선 회장이 아니다. 현대모비스 총수 일가 지분율은 7.4%로 현대차(7.9%)보다 낮지만 최대주주가 그룹사인 기아자동차(17.2%)기 때문에 현대모비스를 지배할 수 있다.

기아차 최대주주마저도 총수 일가가 아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기아차 지분이 아예 없고, 정의선 회장 지분은 고작 1.7%다. 기아차 최대주주가 현대차(33.88%)기 때문에 총수 일가는 기아차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차->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다. 현대차 그룹엔 이런 순환출자 고리가 3개 더 있다. 한국 10대 재벌 중, 순환출자 구조를 띤 재벌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아주 낮은 지분율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다.

2020년 5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작성한 현대차그룹 소유지분도. 화살표가 복잡해 알아보기 힘들다.
2020년 5월 기준, 공정거래위원회가 작성한 현대차그룹 소유지분도. 화살표가 복잡해 알아보기 힘들다.ⓒ출처 : 공정거래위원회

현대차 최대주주인 현대모비스가 ‘회장은 정의선이 아닌 홍길동으로 한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현대모비스 감사가 이사회에 ‘정의선 회장이 현대차 그룹 회장으로 선임돼야 할 객관적 근거를 달라(상법 412조)’고 요구하면 어떨까. 순환출자 해소를 총수에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한 합병을 두고 감사가 반대 소송을 제기(상법 328조)하면 어떨까. 법은 전횡을 막는 권한을 감사에게 보장했지만, 현실에선 있으나 마나 한 법 조항에 불과했다.

현대차그룹 이사회의 이번 결정을 무턱대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이게 최선이었는지는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정의선 회장을 CEO로 결정한 현대차 그룹 이사회가 공정경제 상법 개정안이 무색할 정도로 합리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었기를, 부질없지만 바라본다.

자동차는 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화석연료에서 전기·수소로의 동력 전환, 자율주행 기술력은 향후 반세기 완성차 회사 존폐를 좌우한다. 분명한 것은, 공정경제 상법 개정안이 현대차 이사회 투명성을 높이고 총수일가 전횡을 일부나마 억제할 수 있는 방안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CEO 리스크는 낮추고 경쟁력을 올려야 한다는 과제는 현대차그룹 뿐 아니라 한국 재벌 모두의 숙제다.

홍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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