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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무연고자가 무연고자에게 하는 다짐 “우린 무연고로 죽지 않을게”
동자동 사랑방 김정길 씨가 14일 무연고 추모의 집에서 동료의 유골함을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동자동 사랑방 김정길 씨가 14일 무연고 추모의 집에서 동료의 유골함을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유영기 이사!! 아이고… 내가 미안해. 내가. 내가 미안해.” (오열)

1년 만이다. 그가 보고 싶을 때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1시간30분이 넘는 거리를 달려서 찾아오곤 했지만, 그를 볼 수 없어 입구에 시들지 않는 조화를 놓고 가길 여러 번. 서울역 근방 쪽방 주민 모임인 ‘동자동 사랑방’에서 지내고 있는 김정길(75) 씨는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故 유영기 동자동 마을협동회 이사와, 함께 지냈던 동료들의 유골함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오열했다.

칠십이 넘은 김 씨는 이곳에 오고 싶어서 오토바이까지 장만했다고 한다.

살아 있을 땐 싸우기도 하고 서로 욕도 주고받았지만, 가족 대신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곁을 지켜주던 사람들이었다. 특히 故 유 이사는 평소 몸이 안 좋았어도 항상 주변 홈리스들을 위했고, 성품이 좋았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건 올해 초였다. 한참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폐암’ 진단을 받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서 숨을 거두었다. 그렇게 떠난 그에게, 김 씨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곳에 있지 않았다.

그의 유골이 봉안된 곳은 ‘무연고 추모의 집’이다.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인수를 포기한 시신을 봉안해 두는 곳이다. 이곳은 특별한 날이 아니고선 문을 거의 열지 않았다.

김정길 씨는 무연고로 세상을 떠난 동자동 사랑방 동료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이곳 무연고 추모의 집에 왔다고 했다.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항상 문 옆에 조화를 놓고 갔다고 말했다.
김정길 씨는 무연고로 세상을 떠난 동자동 사랑방 동료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이곳 무연고 추모의 집에 왔다고 했다.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항상 문 옆에 조화를 놓고 갔다고 말했다.ⓒ민중의소리
무연고 추모의 집
무연고 추모의 집ⓒ민중의소리

무연고자가 무연고자에게

14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무연고 추모의 집’ 앞에선 1017빈곤철폐의날조직위원회·나눔과나눔·동자동사랑방·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홈리스행동 등의 공동주최로 ‘무연고 사망자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이곳에선 2016년부터 매해 ‘세계 빈곤철폐의 날’을 앞두고 무연고 사망자들을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무연고 추모의 집’이 개방하는 특별한 날이란, 위령제가 열리는 이날과 연고자가 유골을 찾겠다고 방문한 날이다. 폐쇄적 운영 때문에 생전에 가족처럼 지낸 동료가 무연고 사망자를 보고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은 1년에 딱 하루, 이날이었다.

위령제가 시작하기 전, 약 40명가량 되는 참가자들은 국화꽃을 들고 ‘무연고 추모의 집’ 안을 돌며 그들의 죽음을 추모했다.

창문도 없고 별로 높지도 크지도 않은 회색의 밋밋한 건축물 안으로 들어서자, 서류보관함 같은 무채색 구조물이 빼곡하게 나열돼 있었다. 구조물을 밀면 딱 한 사람이 들어설 수 있는 공간이 나왔는데, 불빛도 없는 그 공간 양옆에는 이름·사망날짜 등이 적힌 유골함이 무심하게 다닥다닥 채워져 있었다. 그곳은 추모보단 유골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에 가까워 보였다. 유 이사와 동료들의 이름을 찾은 김정길 씨는 그곳에서 동료 홈리스들의 이름을 부르며 통곡했다.

먼저 간 무연고 사망자 김남선 씨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는 유구성 씨.
먼저 간 무연고 사망자 김남선 씨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는 유구성 씨.ⓒ민중의소리

동의동 주민협동회 사랑방에서 활동하는 유구성(61) 씨도 동료였던 무연고 사망자 故 김남선 씨에게 편지를 써왔다. 김남선 씨는 올해 초 새하얀 눈이 내리는 저녁 적막한 한 평의 쪽방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소주병을 치워주러 온 친구가 그를 발견했다. 그는 숨을 멈춘 채 앉아 있었다.

유 씨는 그런 김남선 씨를 편지로 추모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당신에게 이웃은 늘 없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없었습니다. 소주병들만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당신 주위를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에게 더 잘해드리지 못해서…”

유 씨는 김남선 씨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그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당신의 주검에 ‘무연고자’라는 딱지가 붙는 것을 보고, 당신의 주검이 얼마 후의 내 처지 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 당신의 주검이 다신 있어선 안 된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당신과 같은 주검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편지로 다짐했다. “우린 ‘무연고자’로 죽지 않으렵니다. 그동안 우리를 외면했던 가족이, 이 사회가 함께 해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서로의 이웃이 되어 주겠습니다. 더는 외로운 죽음이 없도록 외면받는 죽음이 없도록 우리는 서로의 마지막을 챙기겠습니다. 서로의 상주가 되어 당신의 죽음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곳에서 굴곡진 인생 다리미로 쫙 피고 폼 나게 즐거운 삶을 거기서 누리십시오. 당신을 기억하며 돈의동 주민협동회 장례위원 유구성 올림.”

14일 경기 파주시 파주읍 서울시립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 및 참석자들이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극락왕생 발원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추모제는 유엔(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10월17일)을 맞아 홀로 죽어 장례 치를 사람마저 없는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극락왕생 발원기도를 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2020.10.14.
14일 경기 파주시 파주읍 서울시립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 집에서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 및 참석자들이 무연고 사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극락왕생 발원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 추모제는 유엔(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10월17일)을 맞아 홀로 죽어 장례 치를 사람마저 없는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극락왕생 발원기도를 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2020.10.14.ⓒ뉴스1

“이제, 평안하고 안락하길”

위령제는 8명의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의 염불로 시작됐다. 고인을 보내는 넋두리 같은 ‘나무아미타불’ 소리로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된 수천 명의 무연고 사망자들의 안녕을 기도했다. 고금 스님은 “부처는 이 세상에 인연 없는 중생은 없다고 말했다. 아미타 부처의 인연을 맺어서 더 좋은 집으로 가서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평안하고 안락하길 바란다”며 기도했다.

일본군‘위안부’피해할머니·홀몸어르신·기초생활수급자·무연고자들의 장례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나눔과나눔’의 김민석 팀장은 “평생 외롭게 살다 삶의 마지막 순간도 혼자일 수밖에 없던 이들의 외로운 죽음에 가슴이 아프다. ‘잘 지내?’, ‘안녕’ 이런 낯익은 인사조차도 그리워했을 이들로 인해 가슴이 아려진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얼굴한번 마주하며 인사한번하지 못했지만 같은 서울에서 같은 하늘 바라봤을 당신을 우린 외롭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 가야만 하는 여행길은 덜 외로웠으면 한다”며 “짧은 인연이지만 영원히 간직하겠다. 이젠 편히 가시라”라고 추모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법과 제도의 미비로 이들을 외롭게 보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연고가 없는 사람은 없다. 가족으로 법적 테두리 안에서 맺었던 인연이 아니더라도, 주변을 지켰던 사람이 있고, 친구들이 있고, 살아오면서 맺었던 이연이 있다. 여기 모인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라며 “그런데도, 법과 제도의 미비로 무연의 죽음으로 이들을 떠나보낼 수 없었던 가슴 아픈 일에 대해 다시 한 번 기억하고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 사무국장은 봉안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인 이곳 운영방식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그간 정부와 지자체는 무연고 사망자의 유골을 10년 동안 봉안해 왔는데, 지난해 말 무연고 사망자가 많아지고 있다는 이유로 5년으로 단축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곳에 와서 다시 한 번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아무리 이름을 찾아봐도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된 분들이 있다”라며 “아쉬움이 크게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겨우 딱 한 번 문을 여는 이곳의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무연고 추모의 집은 이렇게 있긴 하지만, 추모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들을 기억하고 살아생전 다시 한 번 찾아와서 이들을 추모할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라며 “그런 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무연고 추모의 집
무연고 추모의 집ⓒ민중의소리

한편, 무연고 사망자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2536명으로 3년 전인 2016년(1820명)에 비해 40% 가까이 늘었다. 연도별로 보면 2016년 1820명, 2017년 2008명, 2018년 2447명, 2019년 2536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무연고 사망자 중에는 시신안치비용, 장례비용 등의 부담으로 어렵게 찾은 연고자들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건수도 매년 늘고 있다. 이런 경우, 유골은 시설에 봉안되지 않고 곧바로 화장터에 뿌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공영장례조차 운영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서울시가 2018년 9월부터 공영장례를 시작했는데, 이는 연고가 없다는 이유로 간소한 장례조차 없이 화장되고 뿌려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나눔과나눔과 시민사회가 싸워서 얻어낸 결과물이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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