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보기
댓글보기
[단독] ‘효순·미선 비극’ 이후 한미가 합의한 후속대책, 18년째 유명무실
지난 8월 30일 밤 9시 27분께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 영로대교에서 미군 장갑차와 SUV 차량 추돌사고가 발생해 경찰들이 현장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 8월 30일 밤 9시 27분께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 영로대교에서 미군 장갑차와 SUV 차량 추돌사고가 발생해 경찰들이 현장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뉴시스

'효순·미선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지난 2003년 한미 양측이 후속 안전 조치에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사건 당시 국민적 공분을 잠재우기 위해 떠밀리듯 내놨던 최소한의 대책마저 유명무실해진 가운데 결국 다시 사고가 발생했다.

민중의소리가 1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미 양측이 체결한 '훈련안전조치 합의서'에 명시된 후속조치 가운데 '미군의 궤도차량 이동 시 지역 주민들에게 사전 통보' 부분이 이제껏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훈련안전조치 합의서는 지난 2002년 6월 13일 당시 중학생이었던 심효순·심미선 양이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하는 사건이 벌어진 후, 한국과 미국이 주한미군 측이 취해야 할 안전 조치들을 담아 체결한 것이다.

당초 주한미군 측은 효순·미선 사건을 단순한 교통사고로 처리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더욱이 우리 국민이 피해자였음에도 불평등한 주한미군지휘협정(SOFA) 탓에 우리나라 재판이 아닌 미군 재판으로 진행됐으며, 당시 운전했던 가해자들은 모두 '무죄' 평결을 받았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전국적인 항의 집회를 이어갔고, 여론이 악화되자 이듬해인 2003년 5월 우리 측 외교통상부(현 외교부)와 주한미군은 훈련안전조치 합의서를 체결해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지난 2003년 5월 20일 한-미 양측은 2002년 6월 13일 여중생 사망사고를 계기로 주한미군 훈련시 사고발생 방지를 위한 차량이동 계획 사전통보, 안전시설 확충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종합적인 ‘훈련안전조치 합의서’에 서명한 바 있다.
지난 2003년 5월 20일 한-미 양측은 2002년 6월 13일 여중생 사망사고를 계기로 주한미군 훈련시 사고발생 방지를 위한 차량이동 계획 사전통보, 안전시설 확충 등을 주내용으로 하는 종합적인 ‘훈련안전조치 합의서’에 서명한 바 있다.ⓒ외교통상부

해당 합의서에서는 장갑차 등 미군의 궤도차량 이동 시 72시간 전 한국군에 사전 통보해야 하고, 통보된 사항은 한국군과 해당 지자체를 통해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합의서가 체결된 2003년부터 지금까지 주한미군 부대들이 주둔해 있는 경기도 내 기초자치단체들은 미군 장갑차 이동 사항을 단 한번도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도 측은 '2003년 한미 양측이 체결한 훈련안전조치 합의서에 따라 미군 장갑차 이동 시 통보받은 사례가 있냐'는 취지의 질문에 "도내 지자체로 통보된 사항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지자체가 (미군 장갑차 이동 시) 주민들에게 통보한 사항도 없다"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미군이나 한국군으로부터 미군 궤도차량 이동과 관련해 통보받은 사항이 없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이 우리 군에 통보한 사항이 해당 지자체에까지 전달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주한미군을 통해서든 우리 군을 통해서든, 미군 장갑차 이동 관련 사항을 전달받지 못한 지자체는 지역 주민들에게 미리 주의를 당부할 수 없었던 상황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는 한미가 서명한 훈련안전조치 합의서 내용과도 전적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미군장갑차 추돌사건 진상규명단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1대 국회에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0.10.13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미군장갑차 추돌사건 진상규명단이 지난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21대 국회에 미군장갑차 추돌사망사건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0.10.13ⓒ김철수 기자

지난 8월 경기도 포천에서 발생한 SUV 차량이 미군 장갑차와 추돌한 사고 역시 미군 측이 의무 사항을 준수하지 않았던 '예견된 사고' 중 하나였다. 당시에도 지자체 및 지역주민들에게 미군 장갑차 이동과 관련된 사항은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실제 경기도는 훈련안전조치 합의서 사항이 이행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 주한미군사령부에 "합의서가 준수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달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미군 측 역시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내부 징계를 위한 법적 검토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지자체 역시 합의서 준수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합의서를 체결한 주체도 아닌 데다가 별도 처벌 규정도 없어 관리·감독할 수 없다는 게 경기도 측 설명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해당 합의서는) 지자체가 함께 한 게 아니라 외교부와 주한미군 측이 합의한 것"이라며 "안타까운 것은 처벌 규정이 있었으면 우리 군이나 지자체도 더 철저하게 따질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강제 규정이 없기 때문에 지자체가 (나서서) '왜 합의한 내용을 어기느냐'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남소연 기자

기자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작은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시각 주요기사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카카오스토리2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