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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추수하는 사람들

곳에 따라 시기가 다르겠지만 제가 일하는 농장 바로 건너편에 있는 논은 추수가 끝났습니다. 긴 장마와 태풍을 이겨낸 결실을 거두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더구나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황금’색이거든요. 그림들은 추수하는 모습을 어떻게 담았을까요?

다 여문 밀밭  Jules Bastien-Lepage  The Ripened Wheat 1880 oil on canvas 50.5cm x 105cm
다 여문 밀밭 Jules Bastien-Lepage The Ripened Wheat 1880 oil on canvas 50.5cm x 105cmⓒMusee de Guezireh

혼자서 밀을 베고 있는 남자의 어깨 너머로 펼쳐진 밀밭은 산을 넘어 끝없이 뻗어 있습니다. 가쁜 숨결과 밀이 넘어지는 소리에 놀란 새들이 하늘로 날아 오르는데, 수확의 기쁨 보다는 노동의 고단함과 쓸쓸함이 먼저 다가옵니다. 밀을 베고 지나간 자리는 마치 아득한 삶의 끝을 향해 길을 만드는 몸부림 같습니다. 몸부림은 살아 있다는 징표지요. 고운 천을 깔아 놓은 듯한 황금빛 벌판과 구부정한 사내의 등이 그래서 더 눈물겹습니다. 거대한 화면 속에 달랑 한 사람을 그려 넣은 화가는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상류계급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고관대작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이 많았고 그들에 대한 연민을 화폭에 담은 프랑스의 쥘 바스티앙 레파주는 야외에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외광파 기법의 선두주자였습니다. 거대한 캔버스를 놓고 야외에서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끝을 내는 그의 작업 방법을 지켜본 동료들이나 비평가들 그리고 관객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곧이어 많은 화가가 레파주의 방법을 따르기 시작하면서 더욱 생동감 있고 신선한 야외의 색상들이 화면에 등장하게 되었지요.

낮잠    Van Gogh   Noon -Rest from work  1890  oil on canvas  73cm x 91cm
낮잠 Van Gogh Noon -Rest from work 1890 oil on canvas 73cm x 91cmⓒ오르세 미술관

추수하다가 잠시 쉰다고 낟가리에 몸을 기댔는데 그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벗어 놓은 신발과 가지런히 놓여 있는 낫 두 자루를 보니 부부의 성정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그늘도 없는 밀밭이지만 지금 두 사람에게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편한 자리가 아닐까요? 팔베개를 하고 누운 남자와 그 옆에 비스듬하게 누운 여자의 자세에서 두 사람 사이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친 몸에 잠깐의 낮잠만큼 달콤한 것도 많지 않겠지요. 노란색과 파란색이 대비되면서 사물들이 아주 선명하게 다가 옵니다. 마치 우리에게 ‘당신도 잠시 쉬면 어떨까요?’라고 권유하는 것 같습니다.

1889년 5월 8일, 아를에 있던 고흐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생레미에 있는 생폴 드 무솔 요양원에 자발적으로 들어갑니다. 정신착란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출을 금지당한 고흐는 모델을 구할 수 없었고 이로 인해 또 다른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그는 그가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30점 이상 자신의 표현 방법으로 다시 그리는데, 그 가운대 21점이 밀레의 작품이었습니다. ‘낮잠’은 화가 아드리앙 라비에유가 밀레의 ‘낮잠’이라는 작품을 판화로 제작한 것을 보고 그린 것이었고 지금은 고흐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추수 철    Harvest time  1887  oil on canvas
추수 철 Harvest time 1887 oil on canvasⓒRussian Museum

누런 밀밭을 수확하는 날입니다. 일년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날이니까 집안일을 제쳐두고 모든 식구가 들로 나왔습니다. 새들이 낮게 날고 하늘 한쪽으로 구름이 모이는 것을 보니 서둘러 작업을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나이 든 노인이 앞장을 섰는데, 뒤쪽의 아이들이나 여인과 달리 앞의 두 남자는 피곤함에 절은 모습입니다. 이 것이 일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수확한 것이 모두 내 것이 될 수 없다라는 답답함 때문일까요? 황금빛 들판과 검게 탄 얼굴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삶의 노곤함이 더욱 짙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 농민의 전통과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를 그림에 담는데 치중했던 그리고리 마소예도프는 이동파 멤버로 러시아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화가였지만 작가에 대한 열정도 있었습니다. 신문과 잡지에 짧은 글을 게재하기도 했고 시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서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음악에 대한 재능도 있어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비올라를 연주할 줄 알았고 하니까 예술적인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었지요.

순탄치 않았던 지난 계절의 날씨 탓에 수확이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데 가을은 빠르게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해를 마감하는 일은 경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이 언제는 넉넉했던가요?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혹시라도 마음으로 거두지 못한 것이 있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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