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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삼진그룹’ 고아성 “존재에 이유가 있는 여성 캐릭터 원해요”
배우 고아성.
배우 고아성.ⓒ롯데엔터테인먼트

“여성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할 때, 존재에 이유가 있는 캐릭터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꼭 비중이 크거나 선두에 나서지 않더라도, 영화 속에 의미 있게 녹아 있는 그런 역할을 맡을 때 행복을 느껴요.”

23년 차 배우 고아성이 1995년 대 말단 사원으로 돌아왔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입사 8년차 동기인 말단 여직원 세 명이 회사의 비리를 파헤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고아성은 세 친구 중 한 명인 ‘자영’을 연기했다.

자영은 최초로 회사의 비리를 목격하고 이를 고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친구들로부터 오지랖이 넓다는 핀잔도 듣고, 이로 인해 피해도 보지만 결국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비리에 한 발자국씩 가까워져간다.

“자영이는 내부 고발을 할 수 있을 만큼 내면이 충분히 갖춰진 사람 같아요. 하지만 유나, 보람이, 그리고 토익반 친구들이 조력해줬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마 저라도 그런 친구들이 있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페놀 방류 사건, 회사 내 고졸 여성에 대한 차별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담아냈지만, 러닝타임 내내 명랑하고 상냥한 톤을 유지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토익반’ 여성들은 잘 웃고 잘 울지만, 결코 자책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밝은 영화를 만나고 싶었어요. 이 영화가 사실 마냥 밝기만 한 건 아니잖아요. 내부 고발, 환경 문제, 차별 등등… 되게 많은 요소가 있지만, 이 주제들을 너무 무겁지 않게, 적절한 톤으로 만들어 낸 것 같아서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큰 것 같아요.”

영화는 한국의 1995년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금융위기 전,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서울의 대기업에서는 지금 보기엔 생소한 광경들이 많다. 실내 흡연으로 인해 연기로 자욱한 사무실, 출근 후 다같이 모여 다같이 단체 체조를 하는 것, 그리고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다. 이 유니폼은 ‘상고 출신 여성’이라는 차별의 표식이다.

“시대 고증보다 중요한 게, 지금 시대에 이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애티튜드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영화는 초반부터 여성의 차별이 제시가 되죠. 자영이 출근해서 하는 일이 쓰레기 치우고, 담배 심부름 하고, 구두 닦아서 놓고… 이 장면만 나왔더라면 단순 고증이었겠지만, 거기에 과장님의 대사가 딱 겹치면서, 애티튜드가 드러나요. 저는 이런 점에서 우리 영화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롯데엔터테인먼트

다소 촌스럽고 인위적인 대사도 배우들의 진심이 녹아들어 적절하게 표현됐다. 자영이 지하철 역에서 고맙다고 소리치는 장면을 비롯해 감정이 치고 올라오는 순간도 많았다고 고아성은 털어놨다.

“지하철 역 신은 촬영이 끝나고 펑펑 울었어요. 전체적으로 울컥 울컥 올라올 때가 많았어요. 출근할 때 백 명이 다같이 행진하며 걷는 것도 그렇고… 영화 곳곳에 차별이 있고, 또 자영이가 이 사건을 해결하면서 좌절하는 순간도 많잖아요. 그 과정을 다 지나고 결과에 다달았을 때의 그 통쾌함이 연기를 하면서도 느껴지더라고요.”

자영이 주축이 되어 두 친구들과 토익반 친구들을 이끌긴 하지만, 영화의 중요한 감정선은 세 친구들과 토익반 친구들의 결속력과 연대감이다. 고아성은 ‘보람’ 역의 박혜수, ‘유나’ 역의 이솜 배우와는 영화 속 세 친구들처럼 끈끈한 우정을 쌓았다. 외모부터 성격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세 사람이지만, 오히려 그 다른 점을 부각시켜 새로운 케미를 완성했다.

“처음 박혜수 배우와 이솜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개개인 캐릭터로서는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 조합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처음 만나서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참 재밌더라고요. 보통은 이렇게 배우들의 개성이 다르면 신발로 키를 맞추거나 하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차라리 개성을 더 부각시키자 해서 키가 큰 유나는 더 높은 힐을 신고, 키가 작은 보람이는 더 낮은 신발을 신었어요. 실제 성격과 스타일이 다른데, 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배우 고아성.
배우 고아성.ⓒ롯데엔터테인먼트

6살, 광고 모델로 데뷔한 고아성은 어느새 23년 차 배우가 됐고, 30살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영화 ‘괴물’로 최연소 청룡영화상 신인상 타이틀을 갖고 있는 그는 홍상수, 봉준호 등의 거장과도 함께 작업하는 등 동년배 배우 중에서는 탑 커리어를 자랑한다.

그는 최근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개봉을 앞두고 열린 언론배급시사 및 기자간담회에서 “주체적인 역할이 아니면 심심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그만큼 강단 있는 역할을 많이 해온 것도 사실이다. 요즘 여성이 주체적으로 나서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시대의 흐름에도 반가움을 표했다.

“여성 캐릭터가 영화에 등장할 때, 존재에 이유가 있는 캐릭터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꼭 비중이 크거나 선두에 나서지 않더라도, 영화 속에 의미 있게 녹아 있는 그런 역할을 맡을 때 행복을 느껴요. 최근에 재밌게 본 작품은 ‘남매의 여름밤’인데요. 거기 등장하는 고모 캐릭터가 너무 좋은 역할이더라고요.”

배우 고아성.
배우 고아성.ⓒ롯데엔터테인먼트

30대를 맞이하며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다고 했다. 오랫동안 일을 해오며 배우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고. 그가 지향점은 가까운 사람에서부터 좋은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저도 너무 어렸을 때부터, 가치관이 형성되기 전부터 일을 했으니까요. 배울 점이 아직도 많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선후배가 경력순으로 이뤄지는 것 같은데, 존경하는 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거든요. 선후배 가리지 않고, 주변 배우 뿐 아니라 영화인, 스태프들에게까지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오는 21일 개봉한다. 12세 이상 관람가.

허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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