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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준의 경제비평] 정부의 재정 준칙, 이래서는 안된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와 하버드 대학의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는 국가 채무(정부의 빚이며, 대개 정부가 자금을 빌려 쓰기 위해 발행한 국채가 이에 해당함)가 국내총생산(GDP)의 90%를 넘어서면 경제성장이 뚜렷이 둔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상을 한때 떠들썩하게 했다. 국가가 부담할 수 있는 빚의 규모에 어떤 마법과도 같은 상한선이 있다는 주장이었다. 보수 정치인들과 재계, 보수 매체들은 이 연구 결과를 적극 활용했다. 정부에게 복지지출을 줄이고 빚을 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정부의 살림살이인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곧 영국의 전 수상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가 남긴 유명한 비유를 떠올렸다. 국가의 재정과 가계의 살림살이가 다를 게 없다는 비유 말이다.

국가 채무 비율에는 매직 넘버가 없다

그러나 라인하트와 로고프의 연구 결과가 계산 오류와 잘못된 해석에 기인한 엉터리였음이 탄로 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국가 채무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만국 공통의 고정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럽 연합(EU)의 마스트리히트 조약이 강제하는 60% 기준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11년 보고서에서 국가 채무 비율(국가 채무를 GDP로 나눈 것) 60%는 국가 채무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국가 채무 비율에 어떤 고정된 상한선이 있어서 그것을 초과하면 경제가 망가지는 그런 마법 따위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수상ⓒ뉴시스/AP

가계의 살림살이와 국가의 재정이 다르지 않다는 거짓말

대처 수상의 비유도 거짓말이다. 정부의 살림살이는 가계의 그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보통 가계한테는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이 일정한 크기로 주어지지만 정부는 자신의 벌이인 세입의 크기를 스스로 조절할 여지가 있다. 또한 국가는 영구히 지속되는 속성이 있어서 시민들의 신뢰를 상실하지 않는 한 정부 채무의 상환을 미래로 얼마든지 미룰 수 있다. 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대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미국이나 일본,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정부는 자국만의 법정 화폐(미국의 달러, 일본의 엔화, 한국의 원화 등)를 독점적으로 발행해 자국 경제 내에 통용되도록 한다. 정부가 자국의 법정 화폐로 갚기로 한 빚을 못 갚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현대 국가는 시민들의 경제생활 거의 전 영역에 걸쳐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해 있다. 국가는 사회 기반 시설과 교육, 주거, 의료 서비스의 공급에 관여한다. 국가는 산업과 금융을 지원해 경제가 어떤 모습으로 성장할지도 결정한다. 특히 20세기 들어 국가의 활동 범위는 대폭 확대되었는데 그것은 복지와 고용의 안전망으로 시민들에게 최소 수준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현대 국가의 역할 확대는 간고하고도 장구한, 민중의 의식적인 노력이 성취한 결실이기도 했다. 그것은 되돌릴 수 없는 역사적 진화였다. 그런데 현대 국가가 맡게 된 그 포괄적 역할은 정부의 재정 활동이 뒷받침하지 않는다면 실행이 불가능하다. 재정은 그렇게 국민 경제의 전체적인 모습을 담게 되었다. 국가의 재정을 가계의 살림살이로 비유할 일이 아닌 것이다.

재정은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옳다

재정은 또한 국민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재정의 총량과 구성의 차이에 따라 경제성과가 달라진다. 이처럼 경제와 재정은 영향을 주고받기에 따로 떼어놓고 볼 수 없다. 재정의 현 상태가 지속가능한지를 따질 때에도 그렇다. 재정이 국민 경제 전체에 대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경제가 엉망이라면 재정이 국가 채무 비율이나 재정 적자 비율(정부의 지출이 수입을 얼마나 초과하는지 GDP로 나누어 계산한 비율)의 잣대에 비추어 아무리 건전해도 그런 재정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경제 사정과 무관하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바보야, 문제는 재정 건전성이 아니고 경제의 건강한 발전이라고!

경제와 재정 사이의 이와 같은 내재적 관계를 무시한 선택은 그 결과가 참혹했다. 유럽 연합 회원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가 충분히 회복되기도 전에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른 재정 건전화에 열을 올렸다. 국가 채무 비율과 재정 적자 비율의 상한을 ‘재정 준칙’(국가 채무와 재정 적자를 고정된 비율 밑으로 제한하는 등의 재정 운영 규칙)으로 스스로에게 강제했다. 수출 증가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독일 등 일부 나라를 제외하면, 강요된 긴축은 여러 나라의 경제 활력을 저하시켰다. 빚을 줄이려고 허리띠를 졸라매었더니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국가 채무 비율은 오히려 더 올랐다. 국가 채무 비율은 분자가 국가 채무이고 분모가 GDP인데, 분자를 줄이려고 노력했더니 분자보다 분모가 더 빠르게 줄어든 결과였다.

이와 관련해 세계적인 경제 연구 기관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경제학자 우고 파니짜(Ugo Panizza)는 2013년과 2014년에 발표한 연구에서 국가가 빚을 더 쓴다고 경제 상황이 나빠지는 일은 없지만, 반대로 일단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나면 그로 인해 재정 건전성도 나빠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유럽 연합의 경험이 증명하듯 정부가 부적절한 재정 준칙을 밀어붙이면 경제도 재정도 몽땅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재부 조세정책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2020.10.08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기재부 조세정책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2020.10.08ⓒ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30년 전 유럽 기준만 맹신하는 한국 정부, 지금 도대체 무엇이 중한가?

정부가 이 달 초 제안한 재정 준칙의 내용은 국가 채무 비율을 60% 이내로 그리고 재정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따지면 2025년부터는 이 두 기준 가운데 하나는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나머지 하나는 상한선을 조금 초과해도 된다. 하지만 많이 초과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준칙은 중요한 문제가 있다. 당장 60%와 3%라는 기준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근거가 없다. 이 숫자들은 단지 1990년대 초 당시 유럽 통합을 준비하던 나라들이 각국의 차이를 좁혀가기 위해 합의한 타협의 산물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1992년에 탄생한 숫자 두 개가, 응당 화석이 되어 박물관에 갈 줄 알았던 그 숫자 두 개가, 경제 실정이 달라도 너무 다른 30년 후 위기 속 한국경제에서 국제표준으로 둔갑할 줄을.

시기 선택도 잘못되었다. 2025년에 국가 채무 비율 60%를 지키려면 늦어도 2022년 예산안부터는 본격적인 지출 관리가 시작되어야 한다. 그럼 정부가 맹신하는 유럽 연합의 오늘은 어떤가? 이들은 지난 3월 이후 재정 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면책 조항을 발동했다. 21개 회원국 의회는 재정 준칙의 적용을 미룰 것을 승인했다. 미국도 기존의 준칙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만 지금 정반대로 간다. 경제 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우리만 손발을 스스로 묶어 재정 대응의 여지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재정 준칙의 요건

재정 준칙은 결국 재정을 잘 쓰자는 취지이다. 하지만 제도를 잘못 계획하면 재정의 역할 자체를 훼손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재정 준칙은 어떠해야 하는가? 지금 정부의 방안은 이미 실패한 과거 방식이므로 폐기해야 한다. 어떤 숫자를 고를 지부터 고민해서는 안 된다. 접근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재정 준칙이 굳이 필요하다면, 필자는 그것이 갖춰야 할 요건으로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 번째, 재정 준칙은 경제가 좋지 않을 때 지출을 늘리고 경제가 좋아지면 지출을 줄이도록 설계해야 한다. 정부 재정 준칙의 한 가지 위험성은 경제가 침체되어 국가 채무 비율이 오르면 지출을 줄여야 하므로 경제가 더 침체되는 데에 있다. 어떤 조건 하에서 지출이 반자동적으로 확대되거나 축소되도록 할 것인지 그 조건을 우리 경제의 실정에 맞게 정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요건은 경제성장률과 국채 이자율의 차이에 따라 상황별로 재정 준칙을 달리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추세적으로 국채 이자율보다 높은 경우에는 지출 확대를 준칙이 보장해야 한다.

바람직한 재정 준칙은 또한 한국판 뉴딜을 지원하고 저출산 고령화에 대응하는 등 우리 사회의 중장기 전략 과제에 이바지해야 한다. 며칠 전에 발표된 IMF의 10월 재정 동향 보고서만 봐도 경제 내 불확실성이 크면 공공투자가 미래 경제 성장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한층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공투자의 혜택은 미래 세대가 향유한다. 그렇다면 오늘 정부가 빚을 내어 전략 과제에 투자하고 미래의 수혜 세대가 이자를 부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재정 준칙은 그와 같은 목적으로 정부가 빚을 내는 것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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