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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가을이면 생각나는 초기 인상파 여성화가 ‘수잔 발라동’

빠르게 아침 온도가 변하고 있습니다. 찬바람을 들이키면 서둘러 가방을 꾸려 도착하지 않는 기차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가을이 떠 오릅니다. 그리고 이 무렵이면 늘 수잔 발라동이 떠 오릅니다. 몇 안 되는 초기 인상파 여성 화가였던 그녀의 삶은 붉고 노란 단풍처럼 화려했던 젊은 시간을 지나 잿빛의 시간 속으로 흘렀거든요.

부지발에서 춤 Dance at Bougival 1883 onc 181.9x98.1
부지발에서 춤 Dance at Bougival 1883 onc 181.9x98.1ⓒMuseum of Fine Arts

파리에서 15km 정도 떨어진 부지말이라는 마을에서 열린 댄스 파티의 한 장면을 그린 르누아르의 ‘부지발에서 춤’이라는 작품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이 수잔 발라동입니다. 보일 듯 말 듯 입가에 걸린 그녀의 웃음이 아주 매력적인 작품이지요.

발라동이라는 성은 재봉사였던 그의 어머니 것인데,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출생부터 평탄하지 않았던 그의 인생은 그 후로도 계속됩니다. 수녀원에 속한 학교에 입학해서 몇 년간 공부를 한 발라동은 열 한 살이 되던 해부터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몽마르뜨의 젊은 화가들을 알게 된 발라동은 그들의 소개로 열다섯 나이에 몰리에 서커스단의 곡예사로 일하게 됩니다. 곡예사로 활동하던 발라동을 인상파 여성 화가 베르뜨 모리조가 작품에 담은 적도 있었지요. 발라동은 그네 위에서 곡예 연습을 하다가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허리를 다친 그는 몇 주 후에 회복되었지만, 그 후 다시 곡예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겨우 열 다섯 살이었습니다. 사람의 인생은 이렇게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 때문에 방향을 바꾸게 됩니다.

푸른 방 The blue room 1923 onc 90x116
푸른 방 The blue room 1923 onc 90x116ⓒGeorges Pompidou Center

‘푸른 방’이라는 작품은 발라동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고갱이나 마티스를 연상시키는 색과 마네의 ‘올랭피아’에서 볼 수 있는 비스듬히 누운 여인의 자세를 가져온 이 작품은 다소 향락적인 인텔리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대에 놓여 있는 책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지요.

허리 부상에서 회복한 발라동을 화가 피에르 샤반느가 눈여겨보았고 발라동은 그의 모델이 됩니다. 이후 발라동은 인상파 화가들의 모델이 되었는데, 그를 모델로 세운 화가는 르누아르와 로트렉이 대표적이었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발라동은 몽마르뜨에서 활동하는 젊은 화가 집단의 멤버가 됩니다.

열여섯의 발라동은 스페인 화가 미구엘 위틀리로를 만나 육체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열여덟이 되던 해, 발라동은 사내아이를 낳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의 아빠가 누구인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었지요. 샤반느와 르누아르 그리고 부아시도 아버지 후보 명단에 들어갔지만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8년 뒤, 미구엘은 자신이 그 아이의 아버지라고 인정하면서 발라동의 아들은 위틀리로는 성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그의 아들이었는지는 신만 아실 겁니다.

모델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화가들의 기법을 보았던 발라동은 직접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합니다. 1890년 발라동은 드가와 친구가 됩니다. 그의 작품을 본 드가는 화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하는 한편, 작품 몇 점을 구입해줍니다. 화가로서 첫발을 디딜 수 있게 해 준 것이지요. 드가의 격려 속에 1894년 발라동은 살롱 냐쇼날에 여성 화가로서는 처음으로 작품을 전시합니다. 모델에서 화가로 다시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버려진 인형 The abandoned doll 1921 onc 129x81
버려진 인형 The abandoned doll 1921 onc 129x81ⓒNational Museum of Women in the Arts

‘버려진 인형’은 여성 화가가 아니면 묘사하기 힘든 장면입니다. 성숙한 몸을 아직 정신이 따라가지 못하는 소녀의 심리를 묘사한 이 작품은 사춘기 소녀의 혼란스러운 심리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가지고 놀았던 인형을 바닥에 던져 놓고 새로 얻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거든요.

1893년부터 유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발라동의 첫 작품은 작곡가 에릭 사티의 초상화였습니다. 6개월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티는 발라동과 동거를 합니다. 사티는 발라동에게 청혼을 했지만, 그는 일언지하로 거절합니다. 그 후 사티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발라동의 인생 전체를 보면 이 순간은 그에게 가장 아까운 순간이었습니다. 그에 대해 책을 쓴 작가는 ‘햇빛처럼 이 순간이 그녀를 지나쳤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상처들을 서로 핥고 사는 것이 사랑 아닌가요?

사티와 헤어진 발라동은 주식거래인이었던 폴 무시와 1896년에 결혼합니다. 그의 나이 서른한 살이었습니다. 남편으로 인해 경제적인 안정을 찾게 되자 그녀는 모델 일을 그만두고 그림 그리는 일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1906년, 마흔 한 살이 되던 해 발라동은 아들의 친구이자 화가인 앙드레 우터를 만나게 됩니다.

아담과 이브 Adam and Eve 1909 onc 131x162
아담과 이브 Adam and Eve 1909 onc 131x162ⓒGeorges Pompidou Center

사과를 따려는 이브의 손을 아담이 말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모습에서는 어떤 친밀한 관계도 느낄 수 없습니다. 얼굴은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발라동은 자신과 아들의 친구이자 남편이 되는 우터를 모델로 이 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작품으로 남녀 누드를 한 작품에 그린 최초의 여성 화가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아들의 친구는 발라동의 호기심을 끌었고 3년 뒤 두 사람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가 마흔 넷, 우터가 스물 셋이었습니다. 발라동은 우터와 관계를 남편에게 숨겼지만 결국 남편이 알게 되었고 처음부터 문제가 있던 이 결혼은 1910년 공식적으로 이혼 절차를 밟아 끝이 납니다. 이후 발라동은 아들과 우터와 함께 몽마르뜨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됩니다. 1915년 비록 작품이 팔리지 않았지만, 발라동은 여성 작가로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합니다.

그러나 아들과 우터 그리고 발라동 사이의 긴장은 계속되었고 1920년대 말, 우터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합니다. 아울러 여성 편력도 뒤따르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에 접어들면서 발라동의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했습니다. 1935년에는 당뇨와 신장 문제로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는데, 이 해 아들 위틀리로가 결혼을 해서 집을 떠납니다. 그리고 남편인 우터도 집을 나갑니다.

1938년 4월 7일,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발라동에게 갑자기 심장 발작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그는 세상을 떠납니다. 일흔 둘의 나이였습니다. 화가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발라동이 받아야 할 평가는 그 폭이 너무 넓습니다. 다만 발라동의 삶이 치열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핏빛 가을을 보면 늘 그가 떠오릅니다.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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