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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천의 일과 법] 시간의 독재, 죽어가는 택배노동자들

중세 말기와 르네상스 시대 초기에 즈음하여 유럽에서 기계식 시계가 발명됨에 따라 시간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되자 개인이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고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자율성의 확보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이전까지 개인을 지배했던 교회 권력이나 봉건 영주에 맞서 급부상한 도시들이 법을 정해 시간을 직접 다스리고자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397년 독일 쾰른에서는 각종 길드에 허용되는 노동시간을 규정한 법을 시행하여 옷감을 짜는 직조공은 새벽 5시 이전에는 일을 할 수 없고 늦어도 저녁 9시에는 일을 마치게 했다고 한다. 독일의 과학자이자 인문과학 전문기자인 울리히 슈나벨은 “우리는 흔히 시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 시간은 사회적 관습에 기반을 둔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사회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 시간 리듬은 그만큼 더 정확해지고 단위가 촘촘해진다.”라고 한다(울리히 슈나벨(저)・김희상(역), 『행복의 중심 휴식』, 걷는나무, 2011).

숨진 택배노동자가 숨지 기 전 보낸 메시지<br
숨진 택배노동자가 숨지 기 전 보낸 메시지ⓒ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제공

지난 수백 년 간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은 시간을 더욱 정교하게 돈으로 평가하도록 만들어 왔고, 노동자들은 더 복잡하고 촘촘하게 정해진 시간의 박자에 맞춰 삶과 노동을 지배당하게 되었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돈으로 환산된 시간의 지배로부터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의 시간, 최소한의 자유를 확보하고자 피 흘리고 목숨까지 바쳐야 했다. 오늘날 노동절의 유래가 된 1886년 5월 1일 미국의 총파업 당시 노동자들이 경찰의 발포에 맞서며 목숨 걸고 요구했던 것이 1일 8시간 노동제였고, 다수 국가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해 시작되었으며, ILO의 첫 번째 협약 역시 1일 8시간 노동제에 관한 것이었다,


기계식 시계 발명 후 개인의 시간적 자율성 확보 가능해졌지만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은 시간을 돈으로 평가해 지배해왔고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을 줄이고 인간다움의 시간을 얻기 위해 싸웠다


우리나라 장시간 노동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긴 국가 1, 2등을 차지했던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이에, 2018년에는 최소한 법이 장시간노동을 방치 또는 조장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하에 1주일의 노동시간은 연장근로 및 휴일근로를 포함하여 52시간을 넘지 않도록 하고 기존에는 제한 없는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했던 근로시간 특례업종의 개수를 대폭 줄이는 것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이 이루어져 2018년 7월부터 사업장 규모별로 적용되고 있다. 주 52시간 노동제는 300인 이상 기업에서는 어느 정도 정착되어 가고 있지만 50~299인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계도기간 연장 등을 통해 계속 시행이 유예되고 있어 대다수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아직까지 그림의 떡과 같은 상황이다.

그나마 주 52시간 노동제나 휴게, 휴일, 휴가 등의 제도는 근로기준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근로자’, 즉, 소위 ‘종속노동관계’인 근로계약관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만 적용되는 제도이다. 판례는 “종속적인 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업무내용을 사용자가 정하는지, 취업규칙 또는 복무규정등의 적용을 받는지,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등 여러 세부기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는 입장을 제시해 왔는데, 이러한 기준은 오늘날 다양한 고용형태로 일하는 사람들을 노동법의 사각지대로 몰아내고 있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20kg이 넘는 물품들을 짊어지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자료사진)
CJ대한통운 택배기사가 20kg이 넘는 물품들을 짊어지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자료사진)ⓒ민중의소리

지난 10월 8일 사망한 택배노동자는 새벽 4시 28분경 마치 유언처럼 “저 너무 힘들어요.”라는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남겼고, 10월 29일에는 올해 들어서만 벌써 15번째 택배노동자가 야간노동 중 사망했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 무엇보다도 건강에 치명적인 야간노동에 시달리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는 이미 예견된 비극이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힘든 노동을 하며, 국민의 일상과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택배노동자들에게 정부는, 국회는, 법원은, 우리 사회는 법상 근로자인가 아닌가를 따지며 노동법적 보호에서 밀어내고 있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근로기준법에 따른 근로자에게 적용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다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대한 특례’ 규정을 두어 “계약의 형식과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는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 중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할 것”, “노무를 제공할 때 타인을 사용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갖춘 사람에게는 산재보험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는 산재보험법의 당연 적용대상이 아니고, 본인이 법의 적용제외를 신청하면 법 적용이 제외된다. 현재 대다수 택배노동자는 이러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속한다. 산재보험법의 적용제외신청제도는 수많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들을 사실상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방치되게 하고 있다. 최근에는 특정 회사의 택배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가 노동자 본인이 아닌 누군가의 대필로 작성되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중 사망한 택배 노동자에
개인 지병 때문에 과로사 아니라는 사측,
매일 12시간 넘는 육체노동, 야간노동 하면 누구라도 병이 날 것


게다가 회사 측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택배노동자가 평소 앓고 있던 지병이나 개인적인 생활 습관 등을 거론하며 과로사가 아니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 질병이나 기존 질병이 직무의 과중 등이 원인이 되어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때”에도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면서 “업무와 사망과의 인과관계의 유무는 보통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법원 2018. 6. 19. 선고 2017두35097 판결 등).

한진택배 협력업체인 Y 물류 소속 트레일러 운전사인 김 모(59) 씨는 27일 오후 11시 24분경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구급차가 도착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송되던 중에 사망했다.
한진택배 협력업체인 Y 물류 소속 트레일러 운전사인 김 모(59) 씨는 27일 오후 11시 24분경 한진택배 대전터미널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구급차가 도착해 급히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안타깝게도 이송되던 중에 사망했다.ⓒ유족

판례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매일 12시간 이상의 육체노동, 야간노동을 하면 지병이 없던 건강한 사람도 병을 얻게 될 것이다. 혹자는 택배노동자들이 돈을 더 벌려고 과로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총알같이 당일에, 새벽에 배송하기를 요구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시간의 지배를 개인의 힘으로 혼자 벗어나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김영선 박사는 그의 저서,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에서 “과로사는 과로사회의 일반화된 위험이다. 그런데 과로 위험을 특정 집단이나 개인만의 문제로 제한하는 자본의 언어들이 난무한다. 개인문제로 환원하고, 정신질환이나 가족갈등, 경제문제로 치부한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우리는 이렇게 비극적 현재를 은폐하는 논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라며 “시간의 민주화”를 이루어야 함을 피력한다. 이는 오랫동안 당연시 되어온 폭력적인 시간체계를 해체하고, “시간 단축의 맛, 쉼의 감각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하는 사회문화적 설계”라고 한다.

지난 수백 년간 돈으로 환산된 시간의 독재는 끊임없이 실적과 성과를 만들어내도록 강요하는 감옥을 만들어 왔고, 그 안에 갇힌 노동자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자발적으로 부지런한’ 노동자 내지 사회구성원이 되어 죽을 때까지 촘촘하게 짜인 시간리듬에 몸을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아니 죽어가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최근에는 거기에 고도의 과학기술의 힘이 보태져 분단위, 초단위, 나노 수준으로 노동자들을 압박하는 더욱 촘촘한 시간의 독재가 위력을 키워가고 있다. 우선 모든 사람의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하고, 모든 사람의 쉴 권리가 인간의 기본권임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일하는 과정에서 병들지 않고 죽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적 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하며, 시간의 민주화・인간화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더 많은 노동자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기 전에.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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