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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노동이야기] ‘과로사’에 대한 왜곡과 잘못된 변명

#. 50대 노동자가 철야도 마다하지 않고 장시간 노동한 끝에, 회사에서 일하다 쓰러졌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사체를 검안한 의사가 ‘급성심근경색’이 의심된다고 하자, 가족들은 ‘과로사가 분명한데, 왜 급성심근경색이냐’고 울며 따졌다. 이들은 과로사가 진단명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이후 유가족의 긴 노력 끝에 그 ‘급성심근경색’의 원인이 과로임이 밝혀졌고, 결국 이 노동자의 죽음은 과로사로 인정돼 산재 승인되었다

어떤 노동자의 ‘과로사’ 여부는 사망 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망의 원인이 드러나야 결정된다. 그래서 과로사는 ‘의학적’이라기보다 ‘사회적’이고 ‘법적’인 개념이다. 2019년 한 해에만 과로로 인한 뇌심혈관질환 사망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사람이 503 명이었다. 이제는 과로사의 이런 점이 잘 알려질 때도 된 것 같은데,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때 아닌 ‘과로사와 지병’ 논란이 한창이다. 한진택배는 지난 10월 12일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36세 택배노동자 사망 사건에 대해 “김씨가 평소 지병이 있었고 배송량도 200개 내외로 적은 편이었다”라고 해명하며 업무 관련성을 부인하였다. 이 업체는 약 2주 뒤인 10월 27일, 협력업체 트레일러 운전 노동자가 심야노동 중 사망했을때도, 다시 그의 지병을 거론하며 과로사가 아닐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국과수 부검 결과를 인용해, 택배노동자의 사망 원인이 과로사가 아닐 것에 무게를 두며 보도한 언론들
국과수 부검 결과를 인용해, 택배노동자의 사망 원인이 과로사가 아닐 것에 무게를 두며 보도한 언론들ⓒ사진 = 포털사이트 네이버 '택배기사 과로사' 기사 검색 화면

이런 논란을 부추긴 것은 일부 언론이다. 복수의 보수언론은 10월 29일자 기사에서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 기사 사망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이들의 사인을 과로사로 보기 어렵다는 국과수의 1차 부검 소견이 나왔다”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뒤늦게 경찰청은 “경찰과 국과수는 과로사를 판단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사실 관계를 바로잡았다. 지난 2일 송민헌 경찰청 차장은 정례기자간담회에서 최근 잇따른 택배노동자의 죽음 관련 언론보도에 대해 “과로사 판단은 근로복지공단이 업무강도, 부검결과 등을 종합해서 유권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청 차장의 말이 맞다. ‘전문가’로서 강조하자면, 과로사는 의학적인 개념이 아니다. 부검을 해 과로사 여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과로사라는 진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망 원인 특히 뇌심혈관질환이나 극단적 선택 같은 사망 원인이 과로, 과중한 업무, 업무상의 부담 때문이라면 그 죽음에 ‘과로사’ 혹은 ‘과로 자살’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다. 사망 시 진단은 급성심근경색, 뇌경색, 뇌출혈, 급성심부전 등 다양할 수 있고, 간혹은 부검까지 한 뒤에도 사인 미상인 경우도 있다. 사망 시 진단은 과로사의 절반을 구성할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과로’가 사망의 원인이었는지에 달려 있다.

이때, 사망의 원인이라는 것은 100% 직업적 원인에 의해 발병한다는 뜻도 아니다. 거의 대부분 직업적 요인으로만 발생하는 병을 ‘직업병’이라고 한다. 이와 다른 ‘업무관련성 질환’이라는 개념이 있다. 직업적인 요인과 직업 이외의 요인이 함께 작용하여 질병을 일으키는 경우다. 진폐증은 대표적인 직업병이다. 탄광에서 일하거나, 돌을 가공하는 일을 하는 등 직업적으로 분진에 노출됐을 때 진폐증이 발생한다. 하지만 근골격계질환이나 뇌심혈관질환, 정신질환은 다르다. 직업적 원인과 비직업적 요인이 함께 질병의 원인이 된다. 직업적인 요인과 비직업적인 요인이 상호작용을 일으켜 위험성이 훨씬 높아지기도 한다.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마트산업노동조합 택배기사님들을 응원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故김원종·故장덕준·故김동휘님 추모 및 대기업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0.19
19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마트산업노동조합 택배기사님들을 응원하는 시민모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故김원종·故장덕준·故김동휘님 추모 및 대기업택배사 규탄과 택배노동자 과로사 예방 호소 택배 소비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0.19ⓒ김철수 기자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점은, 고인에게 지병이 있었는지 여부와 과로사 여부는 별개라는 점이다. 지병이 있었다는 것이 과로사가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일반적인 위험 요인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직업적 요인이 질병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고혈압 같은 기초질환이나 기존에 심장질환이 있었던 경우에는, 똑같은 과로를 해도 더 위험할 수 있다. 그래서 현재 뇌심혈관 질환의 업무관련성 판정 과정 즉 과로사 여부 판단에서는, 기초질환이나 기저질환 여부보다, 과로가 있었는지 여부를 더 먼저, 중요하게 평가한다.

이 과로에는 꼭 만성적인 장시간 노동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단기간에 업무량이나 시간, 강도가 급격히 증가한 경우도 급성 과로다. 3개월 평균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 이상이라는 장시간 노동을 중심으로 한 만성 과로 기준도 있지만, 평균 노동시간이 이보다 짧더라도 휴일이 부족했거나, 교대근무를 한 경우, 육체적 노동강도가 컸던 경우라면 과로사로 볼 수 있다.

직업병이나 업무관련성 질환에 걸린 노동자의 기존 질병, 가족력, 생활습관 등을 탓하며, 질병의 직업적 원인을 희석시키려는 시도는 기업과 자본의 매우 고전적인 수법이다. 과로사에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암과 희소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에게 회사가 사과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1차 대전 때 군인용 시계 야광판을 칠하다 방사선이 나오는 라듐에 노출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법정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둔 것은 20년이 지난 뒤였다. 그 사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얻은 질병으로 사망했다. 거대 택배회사들이 지금 할 일은 ‘과로사인지 아닌지’라는 질문으로 발목 잡는 대신,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줄이는 것이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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